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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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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갱이 영웅 만드냐' 비난에도... 김명시 장군 서훈 이끈 이 사람(8월 13일자)
- 재심 끝에... '백마 탄 여장군'김명시 독립유공 서훈(8월 12일 보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여성인데도 말을 타고 무장항일투쟁에 나섰던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金命時, 1907~1949) 선생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자, 시민들이 함께 기뻐하고 있다.

광복절을 전후해 창원 시내 곳곳에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독립유공자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라고 쓴 펼침막이 내걸리고 있다. 15일까지 50여 개 펼침막이 달렸고, 앞으로 더 내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광복절을 맞아 김명시 장군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창원마산 출신인 김명시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은 열린사회희망연대(대표 백남해)가 오래전부터 명예회복 사업을 해오면서 가능해졌다.

2019년 1월 처음 서훈을 신청했을 때 국가보훈처는 '사망 경위 및 광복 후 행적 불분명'을 사유로 보류했다. 이후 열린사회희망연대가 두 차례 재심 신청한 끝에 이번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김명시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환영 펼침막'을 내걸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환영 펼침막을 달자는 제안이 있었고,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개인이 적게는 1만 원부터 많게는 20만 원까지 성금을 보내오고 있다"고 밝혔다.

15일 오후 현재 모인 기금은 186만 원. 이 단체는 보내온 기금으로 김명시 장군의 생가가 있던 창원마산 오동동문화광장 주변을 비롯해 육교 등 곳곳에 펼침막을 내걸고 있다.

김명시 장군 서훈, 독립운동사 전체에 큰 의미
   
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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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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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도 환영 펼침막 달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안승구씨는 페이스북에 "동참한다. 간만에 신나는 일이 생겨 너무 좋다"고 말했고, 유수근씨는 "가슴이 뭉클하다", 이율씨는 "더 크게 기뻐하며 축하할 일이다"고 적었다.

김명시 장군의 명예회복 작업을 도운 이춘 작가는 "시민들의 후원으로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장군의 독립애국장 서훈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창원 시내 곳곳에 펄럭이고 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작가는 "1925년 고향을 떠난 이래 100년 만에 영광스럽게 장군이 귀향했다"며 "당당하게 독립유공자 추서를 축하하고자 한다. 민족 해방과 하나 된 조국 건설을 위해 분투하다 무덤 하나, 조화 하나 없이 돌아가신 김명시 장군이 드디어 고향의 품으로 귀환했다"고 감격했다.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는 "정말 기쁜 일이다.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사 전체에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에 서훈 신청을 했을 때 되지 않았다.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끈질기게 김명시 장군의 자료를 찾아내고 알려낸 열린사회희망연대도 대단하고, 그 헌신적인 노력이 결국 이런 큰 감동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며 "시민들이 함께 기뻐할 일이다"고 설명했다.

백남해 대표는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한테 감사 전화를 드리기도 했다. 백 대표는 "오늘 황 전 처장한테 감사 전화를 했다. 황 전 처장이 아니었다면 이번 서훈까지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국가보훈처도 고맙고 황 전 처장한테도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김명시 장군의 서훈에 지역 시민사회가 함께 기뻐해 주니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시민운동이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데 김명시 장군처럼 성과를 내니까 더 힘이 난다"며 "특히 김영만 고문께서 자료를 찾고 정리하느라 몇 년 동안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회상했다.
 
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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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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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서훈 결정되고 나서 언론 인터뷰를 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 했는데, 시민들이 나서서 환영 펼침막을 제안했다. 고맙게 생각한다"며 "우리 고장 사람이기에 당연히 명예회복 작업을 해야 하고, 그 결과를 시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시 장군은 마산성호초등학교(옛 공립보통학교) 출신이다. 김영만 고문은 "선생은 1924년에 성호초교를 졸업했다. 연휴가 끼어 있어 학교에 연락을 못 했는데, 학교에도 이같은 사실을 알려 후배들이 자랑스러운 선배로 여기도록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마산기독교청년회는 이날 환영 성명을 통해 "김명시 장군의 공로가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된 77주년 광복절은 우리 지역사회민들에게 더욱 뜻깊은 날이 될 것"이라며 "그동안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예우를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으니, 김명시 장군을 알리기 위한 활동에 정부가 앞장서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필두(85, 마산)씨를 비롯한 김명시 장군의 친인척들은 "서훈을 받기까지는 개인이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열린사회희망연대, 특히 김영만 상임고문의 노력 덕분에 가능했기에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조선의 잔다르크, 김명시 장군
 
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창원 시가지에 걸린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환영" 펼침막.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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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잔다르크'로도 불리었던 김명시 장군은 1930년 하얼빈 일본영사관 공격을 주도했고, 신의주에서 일경에 체포돼 7년간 복역했으며, 1939년 출옥한 뒤 중국으로 탈출해 '팔로군'에 들어가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선생은 7년간 옥고를 치렀고, 21년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다해 싸웠다.

광복 후 선생은 1945년 12월 조선부녀총동맹 선전부 위원,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과 4월 서울지부 의장단에 이어 1947년 6월 29일 민주여성동맹 대표로 군정청을 방문해 하지 중장에게 '반탁시위 항의서'를 제출했으며, 1949년 10월 10일 부천경찰서에서 사망했다.

한편 '환영 펼침말 달기'에는 민주노총 경남본부,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진보당 경남도당, 마산기독교청년회, 전교조 경남지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 유월항쟁정신계승경남사업회, 경남여성단체연합, 3‧15기념사업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창원시민촛불연대, 푸른내서주민회, 김명시장군학교길기획단 등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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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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