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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월 8일 도쿄 총리공관에서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월 8일 도쿄 총리공관에서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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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피격으로 촉발된 '통일교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안정적인 지지율을 누려온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이 때문에 지지율 부진에 빠져 있다.

기시다 총리는 피격 사건 이후의 혼란을 가라앉히고자 지난 10일 내각 각료진과 자민당 간부진을 대폭 교체했다. 하지만 효과가 미미하다. 12일 보도된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각 지지율은 되레 더 떨어졌다(51%). 나흘 전 조사 때보다 6%p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10월 내각 출범 이후로도 가장 낮은 수치다.

통일교 논란이 혐한론으로 이어지다

그런데 통일교 논란이 기시다 지지율뿐 아니라 엉뚱하게 '혐한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통일교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한국이나 재일한국인에 대한 혐오로 연결되는 분위기다. 일례로, 최대 민영방송인 TBS가 지난 7월 30일 보도한 특집 프로그램도 여기에 일조했다.

이 방송은 통일교 회계 자료를 근거로 일본 통일교가 1999년부터 2008년 사이에 해마다 약 600억 엔(원화 약 6000억 원)의 헌금을 거둬들였다고 보도했다. 그런 뒤, 또 다른 자료를 근거로 2009년에 230억 엔, 2010년에 255억엔, 2011년에 295억엔이 한국 본부로 송금됐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걷히는 헌금 상당 부분이 한국으로 송금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기사다.

과거에 한국에서도 많이 회자된 것처럼, 지금 일본에서는 통일교가 헌금을 거두는 방식이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영계 조상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후손들이 잘되려면 영험한 책도 사고 헌금도 내야 한다며 신도들을 격려한다는 '영감상법(靈感商法)'이 부각되고 있다. 통일교 경전 1권을 3000만 엔에 떠넘기거나 신자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도록 한 뒤 대출금을 챙겨가는 방식들이 보도되고 있다.

심지어는 통일교가 '속죄헌금'을 거뒀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한 것에 대한 속죄금 성격의 헌금을 거둬갔다는 것이다. 위안부 및 강제징용(노동자 강제동원) 배상 문제로 한일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인들의 민족감정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부동산과 보험금을 통일교에 헌납해 집안이 파산했다는 이유로 야마가미 데쓰야가 아베 신조를 저격했고 아베 신조와 그 동지들이 통일교 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은, 자민당이 일본 국민의 이익을 올바로 대변하지 못하고 정치헌금 제공자의 이익을 옹호해온 부조리한 정치현실을 폭로하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통일교가 한국에서 출발했다는 이유로 이번 논란을 한국과 연결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통일교 커넥션으로 총체적 위기에 빠진 일본 정치권을 보호하고자 혐한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준다.

통일교 커넥션이 혐한으로 이어지는 실태는 국경을 초월한 초(超)국가적 실체가 동아시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현실과 괴리된다. 일본 대중이 그런 실체에 주목하기보다는 국경의 벽에 막혀 극우·보수가 조장하는 혐한론에 넘어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7월 8일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아베 전 일본 총리 피격사건이 발생한 뒤 40대 남성 용의자가 현장에서 검거되고 있다.
 지난 7월 8일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아베 전 일본 총리 피격사건이 발생한 뒤 40대 남성 용의자가 현장에서 검거되고 있다.
ⓒ 교도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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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초월한 초국가적 실체, 동아시아를 지배하다

1945년에 미군이 동아시아에 들어온 이래로 정치·경제·군사·종교 등을 이끄는 각국 지배층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에 가담했으며, 이 네트워크가 냉전질서를 주도해왔다는 건 사실이다. 개별 국가의 보수 정치권, 재벌 기업, 군부 수뇌부, 종교지도자 등이 초국가적 연대를 형성해 미국 주도의 냉전질서를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지배권을 공고히 해왔다는 점 역시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통일교가 일본에서 활동한 것은 그런 차원의 일이었다. 한류를 일본에 전파하기 위해서, 속죄헌금을 받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아시아 반공 네트워크에 참여해 영향력을 확장시킬 목적에서였다(관련 기사 :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베 가문과 통일교 http://omn.kr/1zqqj ).

이는 자민당과 통일교의 커넥션이 부각되는 지금, 일본인들이 분노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국경을 초월한 반공 네트워크가 그 분노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한국인들에게 분노의 눈길을 돌리는 것은 상당히 엉뚱한 일이다. 대중의 시야를 국경에 가두려는 일본 지배층의 의도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 진영을 제외한 동아시아 전역에 사실상 하나의 '초국가'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 초국가를 지배하는 세력이 동아시아 민중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동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 실질적 국경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동아시아 미군이 한국·일본·타이완 등의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현실은 동아시아 민중들이 국적을 이유로 상호 적대하는 현상이 얼마나 서글픈가를 보여준다.

인디언과의 전쟁을 대략적으로 정리한 뒤인 19세기 후반에 태평양 주요 섬들을 점령한 미국은 1903년부터 필리핀에서 군사기지를 운영했다. 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빅만 해군기지가 그것이다.

이 같은 동아시아 기지 운용이 한국전쟁 이후에는 보다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대됐다. 미국은 1955년 6월 9일 제251차 국가안보회의에서 한국에 육군기지, 일본에 해·공군 기지, 오키나와에 해병대 기지를 배치하고 이를 필리핀 기지와 결합시키는 방안을 채택했다. 이런 기지들이 괌과 하와이 기지의 지원을 받도록 했다.

동아시아가 포함된 서태평양 곳곳에 미군 기지가 분업적으로 배치됐다는 사실은 한국·일본·타이완·필리핀 등의 국경이 미국의 이익 앞에서는 실질적으로 무의미함을 시사한다. 이는 미국을 추종해 국제적 협력을 모색하는 각국 지배층에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대중 앞에서는 민족주의적 모습을 보여주지만 반공 네트워크 내부에서는 초민족적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동아시아 내의 국경들이 무의미하다는 점은, 미군 기지가 분업적으로 설치됐을 뿐 아니라 미군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지금도 자주 나오는 미군의 동아시아 내부 이동에 관한 보도, 정확히 표현하면 각국 정부의 동의 없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미군의 동아시아 이동에 관한 보도들은 일본 민중이 통일교 때문에 한국 민중을 혐오하는 이유를 무색케 만든다.

1991년 11월 5일자 <한겨레> 6면 좌중단 기사는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미 공군 특수전 부대가 기지 폐쇄 이후 한국과 일본에 일시적으로 이주하고 있다고 일본 <지지통신>이 3일 일본 외교 소식통의 말을 빌려 워싱턴발로 보도했다"고 전했다.

필리핀에 있던 미군이 한국과 일본에 이미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한일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론보도를 통해 새어나왔다. 한국과 필리핀·일본 사이에 견고한 경계선이 있었다면 미국이 이렇게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1990년 1월 29일자 <경향신문> 1면 상단은 "미국은 주한미군을 삭감, 그 일부를 일본에 이동시키고 일본 이와쿠니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대 일부를 철수시키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28일 미 소식통을 인용, 보도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가 각국 정부의 동의나 승인 없이 군대 이동을 결정하고 필요하면 언론에 흘리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보도다.

1971년 8월 18일자 <경향신문> 1면 좌중단은 "미국 정부는 미군이 오끼나와에 보유하고 있는 일부 전술 핵무기들을 한국·자유중국·필리핀 및 괌 등지로 이동시킬 것을 고려 중에 있으며"라고 보도했다. 미군과 그 무기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런 사례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네트워크가 동아시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통일교는 그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일본에서 활동을 해왔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민당과 통일교의 커넥션에 대한 분노는 그 네트워크를 향해 분출되는 게 합당하다. 통일교 커넥션이 혐한론 확대로 이어지고 재일한국인들이 신변을 걱정하게 되는 것은 상당히 모순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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