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2 10:53최종 업데이트 22.08.13 14:07
  • 본문듣기

분수와 화단 중심으로 새로 꾸민 광화문 광장 ⓒ 최준화


8월 6일 새로 열린 광화문 광장은 한쪽 길을 없애고 넓힌 덕에 시민들의 새로운 휴식 공간으로 돌아왔다. 기자 일터가 근처에 있어 수시로 둘러보고 있고, 11일에도 간간이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았다. 이곳은 세종대왕 동상이 있고 서울시가 2013년에 꾸민 <한글 가온길>이 있는 곳이기도 해서 세종대왕과 한글 관련 기록이나 조각품을 집중적으로 살펴 보았다.

<한글 가온길>은 경복궁 앞 세종대로를 비롯하여 한글학회가 있는 새문안로 등, 한글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역사를 간직한 길이라는 뜻에서 '가운데'의 옛말 '가온'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한글 가온길>에는 한글 관련 전시물이나 조각품을 18개를 설치해 놓았는데 이번 광화문 광장 사업으로 두 개가 사라졌고 한 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라진 한글 조형물
 

한글 가온길의 명품 조형물(왼쪽)을 아예 없애고 들어선 세종문화회관 홍보물 ⓒ 김슬옹


광화문 광장 바로 옆은 세종문화회관이다. 세종문화회관 바로 앞에 설치되어 있던 한글조각품은 아예 없어지고 대신 영어로 도배질한 세종문화회관 홍보물이 들어섰다. 이곳에 있던 한글 조형물은 박금준 작가의 '그대를 기다림'이라는 한글 조형물로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정지용의 시 '별'을 보며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 그 옆에는 기다림에 지쳐 녹슨 마음을 표현한 '그대를 기다림'이란 작품이 있었다.

광화문 광장 위쪽에는 세종로공원으로 여기에 있었던 '생각 채우기'라는 조현 작가의 한글 숨바꼭질 작품도 없어지고 대신 대형 화분이 놓여 있다. 이곳은 서울시 중부녹지사업소가 관리하는 곳으로 담당자도 이 조형물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있었다.
 

‘생각채우기’라는 한글 조형물(왼쪽)을 없애고 놓은 대형 화분 ⓒ 김슬옹, 최준화

 

‘몰레뀰레 비’라는 한글 조형물(왼쪽)을 가린 대형 화분 ⓒ 김슬옹, 최준화

 
세종로 공원에는 암호에 최적화된 문자로 평가받는 한글의 우수성을 표현한 이충호 작가의 <몰레뀰레 비>라는 한글 조형물이 성인 남자 둘이 옮기기도 어려운 대형 화분으로 가려져 제대로 볼 수 없었다.
  
9년간 바로잡지 않은 '한글 이야기' 오타와 오류

한글학회 맞은편에는 10개의 한글 이야기가 벽화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곳도 오타와 오류가 9년간 방치되어 있다. 조선 중종 임금 때 중국 역관으로 갔다가 중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었다는 이야기 영문 안내문은 '중종(Jungjong)'임금을 '정종(Jeongjong)'으로 표기해 놓았다.

내용을 잘못 기술한 곳도 있다. 최만리 등 7인의 한글(언문) 반대 상소는 한글 창제(1443년 12월) 후에 올린 것인데, "한글을 창제하려 하자"라고 표현해 마치 창제 전에 올린 것으로 오해를 주고 있다.
 

영문 안내문에서 ‘중종(Jungjong)’임금을 ‘정종(Jeongjong)’으로 표기한 한글 이야기 벽화 ⓒ 최준화

 

최만리 등 7인의 한글 반대 상소(1444.2.20.) 이야기를 다룬 한글 이야기 벽화 ⓒ 최준화


'서울발견'이라는 한글 벽보 알림 제목은 아예 글자가 떨어져 마치 폐허 건물 일부처럼 보인다. 세종문화회관 뒤 세종예술의 정원에 있는 '음양오행 한글'이라는 조형물은 고물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고, 서울시에 기자가 직접 여러 번 개선을 요구했으나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폐허처럼 방치된 ‘서울발견’ 알림판 ⓒ 최준화


한글 가온길의 한글 숨바꼭질 조형물 제작을 총괄했던 컬처앤로드 문화유산활용연구소의 이동범 대표는 한글 가온길 유지 보수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이유를 말했다. <한글 가온길> 사업은 서울시의 지속사업이 아닌 특별사업으로 되어 있어 유지 보수 관리가 쉽지 않다고 한다. 기자도 그런 점을 광화문 광장 담당 부서에 여러 번 확인한 바 있다. 그렇다면 관리하지 못할 조형물을 왜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

현재 <한글 가온길>은 서울시가 서울관광 재단(visitseoul.net)에 내맡겨 운영하고 있는데 일관된 관리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 담당 부서는 서울관광 재단 위탁 운영을 이유로 유지 보수에 대한 책임을 서울관광 재단에 미루고 있고, 서울관광재단은 한글 가온길의 이런 심각한 훼손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광화문 광장은 대한민국의 자중감 그 자체인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곳이고 한글 가온길이 품고 있는 광장이기도 하다. 한글 가온길 설계를 자문했던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는 "<한글 가온길>은 이렇게 훼손되고 방치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와 정신을 상징하는 위대한 길이다. 이렇게 홀대받아야 하는 만만한 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더 이상의 방치는 안 된다. 서울시는 당장 유지 보수에 나서야 하고 한글 가온길이 있는 종로구도 서울시에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한글 가온길 지키기와 가꾸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고물로 전락한 한글 조형물(세종예술정원) ⓒ 최준화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