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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는 광복 77주년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후손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참석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국적증서를 전달했다.
 11일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는 광복 77주년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후손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참석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국적증서를 전달했다.
ⓒ 법무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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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장관이 된 이후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11일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기념 독립유공자 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 참석한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환영사를 이어가던 중 한 말이다. 

한동훈 장관은 행사장에 앉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향해 "여러분 선조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존재한다"며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전 세계 곳곳에서 모셔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함께 모시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이 나라로 돌아와 대한민국 국민이 돼줘서, 대한민국에서 미래를 준비해줘서 고맙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이날 법무부는 광복 77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 11명의 후손 20명에 대해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다. 나라별로 카자흐스탄 9명, 중국 9명, 우즈베키스탄 1명, 러시아 1명이다. 

국적법과 국적법 시행령 상 '(독립유공 등)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은 본인이나 그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경우 특별귀화 대상자에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무부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 기존의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우리 국적을 함께 보유할 수 있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독립유공자의 후손은 1280명에 이른다. 

"할아버지 정신 이어받아 부끄럽지 않은 후손 되겠다"
 
11일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는 광복 77주년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후손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참석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국적증서를 전달했다.
 11일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는 광복 77주년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후손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참석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국적증서를 전달했다.
ⓒ 법무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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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받은 후손 중에는 독립운동가 포석(抱石) 조명희 선생의 현손(증손자의 자녀) 김나탈리아씨도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20대 청년인 김씨는 다소 어눌한 우리말로 증조할아버지인 조명희 선생을 기억하며 "할아버지 정신을 이어받아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겠다"라고 말했다.

"저의 할아버지는 조명희입니다. 증조할아버지는 한편의 영화처럼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체포돼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고려인 문학의 아버지'이자 '민족 문학의 선구자'이시며 후학양성에 크게 기여한 위대한 분이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법무부장관께 국정증서를 받고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당히 살아가겠습니다."

조명희 선생은 1894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1938년 스탈린 정부의 대대적인 반정권 인사 숙청 당시 '일본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돼 소비에트 연방 하바롭스크에서 마흔여섯의 나이로 총살됐다. 스탈린 사후인 1956년에야 복권돼 '고려인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다.

생전에 조 선생은 1919년 3.1운동 후 일본 도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징계하고 처단할 목적으로 조직된 의권단에 참여해 활동했지만 감시가 심해지자 1921년 고국에 돌아왔다. 일본 유학 후 발표한 희곡집 '김영일의 사(死)'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23년 발표된 두 번째 작품 '파사(婆娑)' 역시 '민족해방'과 '인습타파'의 주제 의식을 동시에 표현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큰 주목을 받았다.

1927년 '조선지광'에 발표한 소설 '낙동강' 또한 사회주의 계급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제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1928년 소련으로 몸을 피했고, 이후 동포 신문 '선봉'의 편집자로, 조선사범학교 교수로, 잡지 '노력자의 조국' 주필 등으로 활동하면서 항일의식을 일깨우고 인재를 길러내는데 전력을 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인 문학의 아버지'로 불린 조명희 선생
 "고려인 문학의 아버지"로 불린 조명희 선생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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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국적증서 수여 행사에서 한동훈 장관에 의해 거명된 독립유공자는 조명희 선생을 비롯해 계봉우, 김남극, 조근백, 이여일, 이여락, 강연상, 장영석, 강상진, 박노순, 한이군 등 11명이다. 대부분이 국내에서 활동하다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해외로 이주,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죽임을 당하거나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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