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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밤 폭우로 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에 살던 모녀(47, 13)와 발달장애인(48) 세 식구가 숨졌다. 9일 반지하 집 앞에 널브러져있던 토끼 인형.
 8일 밤 폭우로 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에 살던 모녀(47, 13)와 발달장애인(48) 세 식구가 숨졌다. 9일 반지하 집 앞에 널브러져있던 토끼 인형.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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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폭우가 내렸다. 과연 이 비를 뚫고 퇴근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폭우였다. 온몸이 젖은 채로 퇴근하게 됐지만, 그나마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운 좋게 직장이 종로구에 있었고, 운 좋게 집이 지대가 높은 은평구에 있었으니까.

그 즈음 폭우 때마다 배수시설 문제로 진통을 겪는 강남 지역 거주자들의 아우성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차는 물에 잠겼고, 누군가는 멘홀 구멍에 빠져 죽다 살아났고, 차오른 물에 뜬 자동차 위에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얼굴로 비스듬히 앉아있는 사람의 사진이 '현자'라는 이름으로 타임라인에 떠돌았다.

그러다가 사람이 죽었다. 반지하에 살던 가족 세 명이 폭우로 생을 마감했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여전히 비가 내리는 오전에 출근을 하다가 그 기사를 봤다. 발달장애인 언니와 그를 돌보던 노동조합 상근자 동생 그리고 그의 딸이 폭우가 내리던 밤 세상을 떠났다.

울리히 벡이 책 <위험사회>에서 말한 것처럼 이번에도 위험은 가장 아래쪽으로 축적되었다. 기사를 본 이후에는 지인들이 남긴 소셜미디어 글을 읽었다. 
 
"집 같지도 않은 집을 집이라며 버젓이 매물로 내놓은 곳을 나와 내 가난한 친구들은 2년 마다 생존을 위해 기웃거리곤 했다. (...) 보일러실이 아닐까 싶었던 아주 작은 집, 창문이 지상으로 3센치가량 틔여있다고 반지하라 우기는 집, 이층 침대 갖다놓은 고시원급의 좁은 공간을 복층이라고 부르는 집. (...) 국제 인권법에 따르면 고시원 거주자는 비주택 거주자로 노숙자, 즉 거주 난민으로 분류된다. (...) 2011년 최고은 작가의 죽음, 2015년 시리아 난민 어린이의 죽음, 2022년 한국 폭우로 인한 반지하 주거민 사망은 결코 다른 사건들이 아니다. 이는 비슷한 성격의 사회적 타살로 이어져 있다."

- 지인인 서상도씨가 9일 남긴 인스타그램 게시물

자연재해인가...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폭우를 뚫고 퇴근하던 사람들, 그러다 다친 사람들, 그 다음날도 비를 뚫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이 일들이 그저 불가항적인 자연재해로 발생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먹고사니즘, 분노밖에 남지 않은 시대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런 것쯤은 알고 있었을 테다.

폭우 때문에 도시가 잠기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은, 갑작스럽지만 그러나 예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 관악구에서 생을 마감한 가족이 반지하에 살지 않았다면, 매번 폭우 때마다 문제가 되는 배수 시설이 폭우 전에 잘 정비돼 있었다면, 2022년 수방 및 치수 분야 예산이 깎이지 않았다면, 서울물재생시설공단 노동자들의 처우가 조금 더 나았다면... 그랬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 사건이 비극인 이유는, 이게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9일 대통령이 보인 행보는 보기 좋게 일반 사람들 예상을 벗어났다. 8일 폭우가 쏟아지던 시각, 집으로 퇴근해버린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는지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오전 참사가 발생한 반지하를 직접 찾았다. 윤 대통령은 "모녀 중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셨냐"라고 관계자에게 질문했다. 이후에 윤 대통령은 "아, 주무시다 그랬구나"라는 말로 일가족이 대피 못한 이유를 추측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10대 학생을 비롯해 세 가족이 8일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10대 학생을 비롯해 세 가족이 8일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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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하지 않았는데도 왜 대피를 하지 못했는지 궁금해하고, 나아가 그가 자다가 대피하지 못했을 것이라 추측하는 대통령. 이는 국민이 비극적인 사고로 사망한 현장에서 운운할 말은 아니었다고 본다. 물이 들이차고, 문이 열리지 않자 살기 위해 발버둥쳤을 망자들의 마지막 시간을, 너무도 간단하게 "주무셨다"고 단순 축약해버리는 일은 무례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난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그에게 있었다면, "(고인들이) 주무시다 그랬다"라는 말을 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상황 보고를 들은 윤 대통령은 이후 "제가 사는 서초동 아파트가 언덕에 있는데도 1층에 지금 물이 들어와서 침수될 정도니,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더) 침수가 되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누군가가 사망한 지옥 같은 현실 앞에 나타나, 자기 고급 아파트 이야기를 한 것은 심각하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고 본다. 반지하라는 가난의 형태가 없었으면, 반지하가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 수 있는 일 앞에서 본인의 고급 아파트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모욕'에 가깝지 않나.

홍보자료로 사용된 참사 현장 사진... 이런 사회에서 안전할 국민은 없다
  
폭우로 인해 일가족이 사망한 관악구 반지하 집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
 폭우로 인해 일가족이 사망한 관악구 반지하 집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
ⓒ 제20대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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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대통령이 해당 반지하 집을 방문한 사진은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라는 코멘트와 함께 20대 대통령실 홍보 자료로 사용됐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일말의 미안함과 후회가 있었다면, 그 사진은 그렇게 사용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건 국민의 고통과 불행을 전시하는 일에 불과하다. 국가의 지도자로서 윤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사과였다.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먹고사니즘에 분노밖에 남지 않은 이들을 이해하며, 생을 마감한 사람들에 대한 추모를 하는 것. 이것은 그가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양심을 지닌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폭우 피해가 이어진지 사흘이 되는 오늘(10일)에야 사과가 나온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 죽음을 '불가항적인 자연재해로 인한 우연한 사망' 정도로 조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도자가 국민의 죽음을 '어쩔 수 없음'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사회적 타살'은 제대로 발견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사회 속에선 안전할 수 있는 국민도 없다. 가난이 가져오는 지루하고 피곤한 생활을 상상할 수 있고, 생을 마감한 망자들을 숫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생각하며, 그 가난과 가난으로 인한 참사들을 멈추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일. 그 일은 지금과 같은 윤 대통령의 유체이탈식 화법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반지하 계단으로 들이닥친 물... 세 여성은 문을 열 수 없었다 http://omn.kr/2078z
'반지하 사망'이 남긴 질문... 이용우 "국가는 무엇인가" http://omn.kr/207ir 

태그:#윤석열, #폭우, #대통령, #관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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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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