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1 18:06최종 업데이트 22.08.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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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경우 일본에서는 <바이오하자드>라는 제목으로, 그 밖의 국가에서는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게임은 <바이오하자드>로 표기하고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원제목으로 표기하였고, 그 밖의 영화들은 개봉명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기자말]

지난 7월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바이오하자드: 더 시리즈> ⓒ 넷플릭스


여름철을 맞아 최근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호러 시리즈인 <바이오하자드: 더 시리즈>를 개봉했다. 아마도 요즘 관객들에게는 <바이오하자드: 더 시리즈>가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원작인 동명의 비디오 게임 <바이오하자드>(BIOHAZRD, 일본 외 국가에서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워낙 인기 많은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밀라 요보비치 주연의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이미 무려 여섯 편의 액션 블록버스터로 제작된 바 있다.


넷플릭스 <바이오하자드: 더 시리즈>에 관한 놀라운 사실은 이 드라마가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무려 12번째 영화화(애니메이션 포함) 시도라는 것이다. 2002년 영화화의 첫 시도였던 <레지던트 이블> 이후 지금까지 20년 동안 1년에 약 1.6편의 영화화가 끊임없이 이뤄졌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이걸 어떤 의미로는 '현상'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만들어진 <바이오하자드>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의 면면은 이 현상이 부정적이라는 것만 증명하고 있다. 게임 <바이오하자드>는 도대체 왜 영화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가. 또는 영화는 왜 <바이오하자드>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가.

서바이벌 호러 장르 개척한 <바이오하자드>
 

1996년 발매되어 큰 성공을 거두고 "서바이벌 호러"라는 서브 장르를 정립하며 거대 프랜차이즈의 시작을 알린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바이오하자드> ⓒ 캡콤


먼저 최초의 <바이오하자드>가 게임으로써 어떤 위상을 갖는지 그리고 영화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1996년 일본의 캡콤(Capcom)에서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바이오하자드>는 게임산업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게임이다.

게임산업 측면에서는 호러 영화에서나 익숙한 '좀비'를 가지고 와 어드벤처 게임에 호러의 요소들을 접목시켰고 이 시도는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하며 게임산업에서 '서바이벌 호러'라는 호러 장르의 서브 장르 개념을 거의 정립하다시피 했다.

<바이오하자드>에서 플레이어는 가상의 미국 도시 라쿤 시티 인근 산악 지역에 위치한 의문의 저택에 고립된 경찰 특수부대원이 된다. 수색 작전은 기이하게 변형된 들개들의 공격으로 실패하고 동료들이 실종되거나 죽어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부족한 무기와 물자로 생존하며 좀비를 비롯한 다양한 괴물들과 맞서야 한다. 또한 저택에 설치된 위험천만한 함정들을 지혜롭게 해체하며 살아서 저택을 탈출하고 라쿤 시티로 복귀해 좀비 사태의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바이오하자드>는 1996년 당시 기준에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그래픽과 B급 호러 영화의 정서가 가득한 과감하고 개성적인 연출(실제로 게임의 첫 인트로 시퀀스는 실사 영화로 제작되었다)로 긴장과 공포를 '체험'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즉 그때까지 '호러'라는 콘텐츠가 주로 보는 것에 머물렀다면 <바이오하자드>는 호러의 쾌감을 조이패드를 통해 플레이어의 손에 쥐여준 셈이다.

이와 같은 <바이오하자드>만의 독특한 특징은 게임을 폭넓게 향유하던 전 세계 청소년과 성인 게이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개발사인 캡콤마저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에 캡콤은 발 빠르게 계획에 없던 <바이오하자드>의 후속작들을 내놓았고 잇달아 출시된 후속작들도 연달아 큰 성공을 거뒀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1996년부터 2022년까지 26년 동안 정식 넘버링만 8편, 스핀오프와 리메이크까지 포함하면 28편의 게임을 발매하고 1억 1000만 장 이상 팔아치우며 대표적인 게임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호러나 좀비를 소재로 하는 마이너 장르가 주류 게임으로 진입한 것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거의 최초의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와 호러 영화의 독특한 상호 영향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어둠 속에 나홀로>와 같은 이전 세대 호러 게임의 영향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호러 영화 특히 좀비 영화의 강한 영향 아래 태어났다. 196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부터 시작된 조지 로메로의 시체 3부작과 스튜어트 고든, 브라이언 유즈나의 1985년작 <좀비오>(리애니메이터)를 거쳐 1992년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에 이르기까지 호러 마니아들이 환호했던 클래식 좀비 영화들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좀비와 크리처 설정에 영향을 미쳤다.

<데드 얼라이브> 이후 영화 속 느릿느릿한 좀비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식상해질 무렵인 1996년, 게임 <바이오하자드>가 호러 마니아와 게이머들에게 도착했다.

이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큰 성공을 거둔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영향을 받았던 영화에 역으로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게임 흥행과 인기에 힘입어 2002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첫 실사 영화 <레지던트 이블>이 제작되어 개봉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영화 <레지던트 이블>은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고 확산시킨 다국적 제약기업 엄브렐러와 좀비 및 크리처 등 극히 일부 설정만 게임에서 가져오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루는 사실상 제목만 같은 완전 별개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레지던트 이블>은 게임의 영향으로 총격전과 격투를 통해 좀비와 크리처들을 상대하는 액션 영화 좀비물이라는 콘셉트로로 나름 신선한 분위기의 오락 영화로 제작되었다.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첫 영화화로 2002년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 <레지던트 이블>시리즈는 총 6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 시네마서비스

 
계속해 신작이 만들어지던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와 함께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성공은 좀비 리바이벌 콘텐츠의 시작점이 되었다.

바이러스로써의 좀비와 극단적 팬데믹 상황에서 인간 군상을 다룬 대니 보일의 2002년작 <28일 후>,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한 잭 스나이더의 2004년작 <새벽의 저주>는 전력 질주하듯 폭주하는 좀비들을 처음 등장시켰다. 기존에 느릿느릿 배회하는 생기 없는 좀비의 이미지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이전에 없던 분노와 흉폭함을 덧입혔다.

첫 영화 <레지던트 이블>이 성공하고 좀비 리바이벌의 여파를 등에 업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영화화는 더욱 과감하게 추진되었다. 2004년에는 속편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 2007년에는 세 번째 영화 <레지던트 이블: 익스팅션>, 여섯 번째 영화이자 시리즈 마지막 편인 2016년작 <레지던트 이블: 파이널 챕터>까지 2~3년 주기로 밀라 요보비치를 앞세운 속편을 5편이나 양산해냈다.

영화화 계속될수록 실망하는 팬과 관객들

문제는 영화 흥행과 별개로 속편들이 점점 원작 게임과 멀어지면서 발생했다.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주로 좀비와 크리처들이 창궐한 특정 공간에서 탈출하거나 좀비 바이러스를 이용해 발생하는 생물학적 테러를 주인공이 수습해 나가는 것이 주된 줄거리다.

그러나 실사 영화의 경우 3편인 <레지던트 이블: 익스팅션>부터는 좀비 사태로 인류가 멸망해 주인공 앨리스와 소수 생존자들이 인류를 멸망시킨 주범 엄브렐러를 처단하고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를 찾아 인류를 구원한다는, 게임보다 더 개연성이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6편의 실사 영화 시리즈는 좀비와 크리처들,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제약기업 엄브렐러 정도의 설정만 빌려왔을 뿐 게임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어 굳이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올 이유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무려 14년 동안 이어진 영화화의 결과가 이렇다 보니 영화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게임 <바이오하자드> 팬들은 영화화에 대한 실망이 쌓여갔던 것은 당연하다. 2016년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막을 내리고 5년 뒤 2021년에 나온 영화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가 공개되었을 때에도 팬들은 영화화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역시나 공개된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이전 영화들에 비해 게임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엉성한 연출과 배우들의 부족한 연기는 전형적인 저예산 2차시장 영화 수준에 머물렀다. 결과적으로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너무 빨리 소리소문없이 잊혀 버렸다.
 

2021년 리부트한 영화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기대에 비해 조악한 만듦새로 팬과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 소니픽쳐스코리아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개봉이 반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8부작으로 구성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바이오하자드: 더 시리즈>가 개봉했다. 안타깝게도 넷플릭스의 <바이오하자드: 더 시리즈>는 앞선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와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의 단점만을 모아 놓은 듯한 드라마다.

<바이오하자드: 더 시리즈>는 원작으로부터 엄브렐러와 알버트 웨스커라는 캐릭터 설정 두 가지만 가져오면서 원작의 주요 악역이었던 웨스커를 선한 인물로 바꿔 등장시키고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 이후 소수 생존자들만 남아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어수선한 설정을 취했다.

<바이오하자드: 더 시리즈> 역시 이 이상 원작과는 아무 연관성 없는 드라마다. 결국 관객들은 이 드라마가 왜 "바이오하자드"라는 제목으로 제작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의 만듦새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생존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과 바이러스 확산에 얽힌 어린 시절 회상을 무성의하게 교차 배치하며 한 시즌 에피소드를 진행해 감정이입은커녕 뻔한 예측과 개연성 없는 전개로 지루함을 견디기 어렵게 만들어졌다. 원작 게임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관객들도 냉담한 반응을 쏟아내는 중이다.

무성의한 콘텐츠들만 난립하게 되면

왜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항상 이런 식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캡콤의 무성의한 프랜차이즈 관리와 영화 제작사와 창작자들의 게으른 상업적 욕구가 원인이다.

영화를 직접 제작하지 않는 캡콤의 입장에서는 판권 계약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수익 창구로만 여기기 때문에 영화화 작품에 질적 개입과 추가 비용 없이 판권 수익만 많이 얻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영화 제작사 입장에서는 인기 프랜차이즈인 <바이오하자드>를 활용할 경우 이미 많은 관객들이 시리즈의 특징, 좀비, 다국적제약 기업의 음모, 주인공의 액션과 활약 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각본의 생산과 비용이 비약적으로 단축되고 마케팅과 관객 동원에도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결국 양쪽 모두 보다 손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게임 <바이오하자드>는 영화를 포기하지 못하고 영화는 <바이오하자드>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두터운 팬층이 있어도 지속해서 무성의한 콘텐츠들만 난립하게 되면 팬들은 실망하고 떠나게 되어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좋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게이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영화화가 질적으로 좋은 결과를 맺는데 실패할 경우 프랜차이즈 전체에도 긍정적일 수 없다. 팬과 관객들은 자신들이 손쉬운 수익을 위해 동원하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을 깨달을 때 기꺼이 떠나고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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