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0 05:01최종 업데이트 22.08.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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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2일 오후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관을 실은 장의차를 향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21세기 일본 정치의 핵심이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대신이 피습 사망한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한 달간 일본정치의 흐름을 보면, 아베의 죽음은 그다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서는 '상왕' 아베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의욕마저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기시다 총리는 애초 9월로 예정돼 있던 제3차 내각 구성 및 자민당 주요 당직인사를 8월 중순으로 앞당겼다. 각료임명권과 당3역을 비롯한 당내 주요 인사권은 총리(총재)만 가질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이다. 이번 인사에서 과연 기시다 총리가 누굴 새롭게 등용하고, 또 내치는가에 따라 그의 색깔이 비로소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데 온갖 매스컴을 장식하던 아베 전 총리의 죽음 관련 뉴스는 왜 갑자기 그 빈도가 확 줄어들었을까. 이유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일본사회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죽음의 미학'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여타 국민들과 매우 다른 측면이 있다. 아무리 위대한, 혹은 친근한 사람이 죽더라도 좀처럼 겉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즉 망자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이는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와 '혼네'(속마음)라는 또 다른 일본문화와도 연결되며, 결국 아무리 속마음이 괴롭더라도 겉으로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문화로 정착됐다. 
 

일본 참의원 선거 투표일인 10일 오후 야마구치현 야마구치시에 있는 에지마 기요시 자민당 후보의 진영에서 관계자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진이 담긴 자민당 홍보물을 벽에 붙이고 있다. 야마구치현은 8일 유세 중 총격을 당해 목숨을 잃은 아베 전 총리의 선거구(지역구)였다. 2022.7.10 ⓒ 연합뉴스

 
나아가 '죽으면 끝(死んだらお終い)'이라는 습속도 존재한다. 이 습속은 선인/악인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제아무리 훌륭한, 혹은 악랄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끝'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사람의 공과를 논하지 않는 풍조가 있다. 망자에 대한 평가는 훗날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식이다. 이 법칙은 현존 자민당 세력의 가장 큰 권력자, 그것도 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아베 전 총리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두 번째로 그의 죽음에 세계평화통일가정평화(통일교)라는 종교가 깊숙이 결부되었다는 점이다. 추후 밝혀진 보도들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 가문은 그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대부터 통일교와 긴밀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아베 전 총리가 수장을 맡고 있던 자민당 최대 파벌 세이와정책연구회(중/참의원 95명) 소속 의원들이 각종 선거 때마다 통일교의 지원을 받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아베와 통일교의 연결고리
 
FNN 보도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공개적으로 "통일교와 교류를 하고 있으며 선거 때마다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선거운동원이란 형태는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투표를 해달라는) 전화 선거운동에는 참여했다고 생각하며, 자원봉사자 형태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또한 호소다 히로유키 현 중의원 의장은 아베가 총리대신으로 재직하던 2019년 통일교가 주최한 국제지도자회의 2019 포럼에 세이와정책연구회의 수장 자격으로 직접 참석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국제지도자회의 2019가 성황리에 개최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학자 총재의 제의로 인해 실현된 이번 국제지도자회의는 매우 큰 의의를 품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에게도 이번 행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놨고, 오늘 이 모임이 끝나자마자 바로 행사 내용을 아베 총리에게 보고드릴 생각입니다."(니혼TV '반키샤', 2022년 7월 24일 보도)
   

다나카 도미히로 통일교 일본 지부장(앞)이 지난 7월 11일 도쿄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 피습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통일교 일본 지부는 아베 전 총리 암살범의 어머니가 교단 회원인 것은 맞지만 그 누구에게도 거액의 헌금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이외에도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 비서관 출신으로 올해 참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된 이노우에 요시유키 의원의 경우, 통일교의 조직적 개입이 확인된 케이스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신자들은 교단의 상층부 간부로부터 "(우리 교인들은) 무조건 이노우에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고 지시대로 이노우에 후보에게 투표했다.
 
이 덕분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지만, 2019년 참의원 비례대표로 나가 8만 8천표를 얻어 낙선했던 이노우에는 올해 선거에선 16만 5천표로 당선됐다. 이노우에와 비슷한 케이스로는 2016년 미야지마 요시후미 후보, 2019년 기타무라 쓰네오 후보가 있으며 이들 역시 여유 있게 당선됐다. 이들은 물론 세이와정책연구회 소속이며, 아베 전 총리와 친교가 매우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해자 심리에 더 동조, 국장 반대 여론 높아
 
문제는 통일교를 바라보는 일본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통일교는 일본사회에서 '사이비종교' 취급을 받고 있다. 통일교의 영감(霊感) 상법 등 세뇌 마케팅으로 인해 경제적 파산선고를 받은 피해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아베 전 총리를 피격한 야마가미 데쓰야 역시 통일교 때문에 집안이 파탄 났다.
 
초기 1-2주간 계속되었던 일본 언론의 집요한 보도 덕분에 오히려 가해자의 범행심리가 이해간다며 동조하는 사람들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처음엔 아베 전 총리를 애도하던 이들도, 그와 그 측근들이 통일교와 밀접한 관계를 오랜 세월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무작정 아베를 옹호하기가 힘들게 돼 버린 것이다. 그를 옹호하는 순간 통일교과 아베의 밀접한 관계를 거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겠다(국장예정일 9월 27일)는 각의결정 이후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로 표출됐다. TBS가 전국 18세 이상 남녀 2452명(고정전화 949명, 핸드폰 15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장 반대가 45%로 집계돼 국장 찬성 42%보다 3%포인트 더 높았다. (유효응답율 47.4%)
  

지난 7월 22일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 앞에 모인 시위대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國葬)을 치르기로 한 각의의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각의에서 지난 7월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중 피격 사망한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9월 27일 도쿄 일본 무도관에서 치르기로 결정했다. ⓒ 연합뉴스

 
특히 자민당 지지층에서도 찬성 60% 반대 30%로 나와 국장에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결국 아베 전 총리의 공과와 상관없이 약 37억 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장비용을 국가가 세금으로 전액 보전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리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지막 이유, 최근 늘어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재창궐과 결부된다. 지금 일본은 1일 확진자 수를 연일 갱신하고 있다. 하루 15만에서 20만 명대 확진자가 일상적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이번 코로나 변이종 피크 아웃 시기에 코로나를 제5종 인플루엔자 급으로 낮추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비췄다. 이는 곧 더 이상 코로나 관련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7월 25일 일본 도쿄 시내에서 마스크를 쓴 행인들이 횡단 보도 앞에 모여 있다. 이날 일본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2만 명을 넘으면서 월요일 기준으로 최다인 12만 6575명을 기록했다. ⓒ 연합뉴스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이 약해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코로나로 인해 경제상황이 어렵다. 제국데이터뱅크가 발표한 2022년 5월의 기업도산건수는 22개월 만에 전년도 동월 대비 12.1%포인트가 증가한 517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3년간 각종 금융구제, 지원금 정책으로 기업 도산은 막아왔지만 올해 회계 연도(4월)부터 코로나 지원금 규모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이후 지원금 제도가 아예 사라진다면 자영업자들의 도산은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금 37억 엔이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쓰인다는 것에 불만을 품는 것도 당연한 심리가 아닐까 한다.
 
아베에 휘둘리던 기시다 후미오는 어디로
 
한편 '상왕'이 사라진 지금 기시다 총리의 내각 및 당 인사 의중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사실 지금까지 기시다 총리는 온건중도보수파의 대표인사로 유명했다. 총리로 취임하면서 실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상왕' 아베에 휘둘리는 모습이 여러 차례 비쳐졌다. 한국 언론에는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사도광산'의 세계근대문화유산 등재를 둘러싼 대립은 꽤 유명하다.
 
원래 기시다 내각은 사도광산을 문화유산에 등재할 생각이 없었지만, 아베 전 총리와 다카이치 사나에 정조회장, 그리고 세이와정책연구회의 집단반발로 뒤늦게 사도광산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최근 이 사도광산 신청서가 접수 단계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민당 내 아베파들은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일각에선 기시다 총리가 소소한 반항을 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때는 아베 전 총리가 살아 있을 때니까 대립을 계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일부러 서류미비라는 기상천외한 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위비 증액 문제도 그렇다. 아베파는 GDP의 2% 규모로 방위비를 증액해야 한다고 줄곧 요구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방위비 증액의 필요성에는 동조하면서도 구체적인 금액은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지금도 "증액의 필요성과 예산, 그리고 그 재원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비치고 있다.
  

지난 7월 19일 오후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일본 총리관저에서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면담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에서 총리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이번 인사를 보자. 아베의 최측근이자 복심이었던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 현직에서 사임한다. NHK의 보도에 따르면 세이와정책연구회 소속의 하기우다 경제산업성 대신이 정무조사회장으로 기용되며, 헤이세이연구회의 수장 모테기 간사장과 시코우카이의 아소 부총재는 유임될 전망이다. 내각 인사를 보면 기시다파의 하야시 외무상과 아소파의 스즈키 재무상, 그리고 세이와정책연구회의 마쓰노 관방장관이 유임되며,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해진 것은 이 정도인데 어떤 면에선 매우 흥미롭다.
 
당내 파벌을 두루 아우른 탕평책인듯 보이면서도 이유야 어찌되었건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 핵심인사인 다카이치 사나에 정조회장, 그리고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이 물러난다. 현대정치에서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이 둘의 퇴임이 주는 상징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마치 '금상' 기시다 총리가 '상왕' 아베의 색채를 지워 버리고 자신의 정치를 하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아무튼 이렇게 아베 전 총리는 자연스레 잊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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