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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8월, 여름방학이다. 전국의 산과 바다, 계곡은 휴가 나들이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시기에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 학기 수업 장면을 같이 들여다보고, 어려움을 대화로 탐구하고, 아이들이 잘 배우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서다. '광주 배움의공동체 연구회' 여름방학 '수업디자인 연수', 올해로 4년째다. 전국 배움의공동체 지역 연구회들도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 올해 광주에서는 60명의 초중고 교사가 참여하여 분과별로 진행했다. '광주 배움의공동체 초등연구회'의 연수 후기를 공유한다.

첫날, 수업디자인 인트로 연수를 시작한다. 선생님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AI 교육, 초개인화 러닝, 미래 교육, IB 교육과정 등 춘추전국시대 교육 현장에서 배움의 본질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중심을 어떻게 다시 잡을 것인가. 놓치면 안 되는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

'수업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단순히 학습지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배움이 가지고 있는 그 본연의 본질을 수업 안으로 들여와서 담아내는 것, 아이들 각각이 배움의 도구를 장착하도록 돕는 것, 종국에는 학생도 교사도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힘을 가지는 것,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 나는 수업디자인을 왜 한다고 생각하는가?
- 나는 수업디자인을 어떻게 해 왔는가?
- 나는 수업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 1학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나의 수업디자인은?

이 질문들로 연수생 선생님들은 성찰의 첫 단추를 만지작거린다. 
 
 배움중심수업의 철학을 공유하는 수업디자인 연수 인트로 강의
▲ 수업디자인 연수 인트로 강의  배움중심수업의 철학을 공유하는 수업디자인 연수 인트로 강의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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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연수에서 선생님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하면 이렇다.

- 수업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관념에 의지한 수업 연구는 제아무리 이론에 근접하다 해도 진실이 아니어서 공허하다. 수업을 열자, 수업을 보자, 대화하자, 탐구하자, 협력하자. 같이 공부하자.

- 용어가 아닌 뜻에 집중하자. 수많은 에듀테크가 화려한 옷을 수시로 갈아입으면서 교사들과 아이들을 21세기 교육 유목민으로 내몰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본질은 단순하다. 복잡하면 본질이 아니다. 용어와 테크닉에 휘둘리기 전에 본연의 뜻을 천착하자.

- 획일, 효율, 결과 중심의 수단에 의지하던 사고에서 사람, 의미, 과정 중심 사고로 대전환을 감행하자. 과정 자체가 목적이고 결과이다. 수단이 목적과 일치할 때, 일은 놀이가 된다. 선생 놀이, 수업 놀이, 수업디자인 놀이….

- 유연한 수업 상상력을 장착하자. 상상력의 도구는 무엇인가? 첫째,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다. 수업에서 나는 앵무새인가, 주인공인가. 주인공은 당당하다. 교사가 주인공일 때 아이들도 주인공이 된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질문할 수 있는 주인공을 길러내자. 둘째, 정직하자. 수업을 그 어떤 목적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심을 버리자. 수업의 존재 가치는 오직 아이들과 교사의 배움, 그것으로 인한 사회의 긍정적 변화이다. 셋째, 상상력은 대화와 협력으로 증폭된다. 아이들에게 함께 배우기를 강요하면서 정작 교사가 혼자 방에 갇혀서는 안 된다.

- 자신의 탐구 루틴을 장착하자. 탐구는 과제를 흘려보내지 않는 통찰이다. <사실을 잘 들여다보기. 왜 그럴까? 어떻게 해볼까? 한 번 해볼까?> 의 과정에서 '실천의 지(知)' 역량을 공동체에서 함께 기르자. 답은 수업 현장에 있다. 이론, 지식, 말의 관념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교사가 건강한 탐구 루틴을 장착하면 아이들은 분명 탐구하는 재미를 아는 아이들로 자란다.

- 자신만의 '배움중심수업' 정의를 세우자.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배움중심수업은 '교사가 어떻게 잘 가르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배움의 도구를 온전히 장착하도록 돕는 것'이다. 배움의 도구는 <대화 = 듣기 = 질문 = 협력 = 탐구> 등이다.' 이 도구들은 모두 동의어다. 교사는 수업디자인을 하여 돌보면 된다. 이것은 나의 탐구 루틴에서 나온 나의 정의이다. 선생님들도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정의를 만들어보시길….

- 교사의 업(業)이 바뀌고 있다. 잘 가르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아이들이 잘 배우도록 수업을 디자인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60여 년 전, 초등학교 교사였던 나의 아버지가 가르치던 방식과 지금 2022년 학교 교실 수업이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교사는 배움의 공동체 안에서 대화하고 협력하며 함께 배우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우리 교사들의 업(業)이고 역량이다. 
 
선생님, 1학기 수업 어땠나요?
▲ 선생님들의 1학기 수업 이야기 나눔 선생님, 1학기 수업 어땠나요?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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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업디자인 실습이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처럼 모둠을 만들고, 아이들의 탐구 과정을 그대로 실습한다.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교과를 어우르고, 주제를 찾는다.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아이들의 배움을 상상하면서 차시 활동을 구성한다. 활동이 성취기준에 부합하는지, 질 높은 배움을 제공하는지, 협력적 의사소통을 보장하는지, 질문을 품은 활동인지…, 대화하고 또 대화하고 또 대화한다.
 
6학년 선생님들이 한 모둠이 되어서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 수업디자인 실습 모둠 활동 ? 주제: 불편한 에너지 생활 6학년 선생님들이 한 모둠이 되어서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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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2학년 선생님들이 한 모둠이 되어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 수업디자인 실습 모둠 활동 ? 주제: 우리 동네 사람들 1학년, 2학년 선생님들이 한 모둠이 되어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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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4학년 선생님들이 한 모둠이 되어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 수업디자인 실습 모둠 활동 ? 주제: 함께 사는 촌락과 도시 3학년, 4학년 선생님들이 한 모둠이 되어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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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선생님들이 한 모둠이 되어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 수업디자인 실습 모둠 활동 ? 주제: 위기 극복의 열쇠 5학년 선생님들이 한 모둠이 되어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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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로 연수생 선생님들의 연수 후기를 나눈다.

- 수업은 늘 힘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의 어려움을 나눌 동료는 없었습니다. 상호 불간섭주의가 팽배한 학교 현장에서 수업 대화를 나누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교실 문을 닫고 교사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 수업이고, 그것이 '교직의 전문성'이라고 오해했습니다. 연수를 통해서 교사의 업(業)이 바뀌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합니다. 교실을 열고, 수업의 어려움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생겨서 좋습니다.

- 수업디자인 실습에서 막히고 또 막혔습니다. 첫날은 답답해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탐구하고 또 탐구하고'의 끈질긴 집요함이 통찰을 이끌어낸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됩니다. 안갯속 같은 모호함이 서서히 걷히는 이 느낌이 좋습니다. 선생님들과 같이 만든 프로젝트가 너무 좋습니다. 첫날 강의에서 들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습 과정에서 이해됩니다. 그동안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늘 관념적으로, 내 방식대로 판단하면서 그것이 또 다른 관념을 만들면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그동안 혼자서 수업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수업에 들어가면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배움의 도구를 장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에서 불이 반짝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아이들이 잘 배우는 고민은 없었습니다. 수업을 상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디자인이 막힐 때, 수업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면 다시 유연해집니다. 어서 개학해서 이 프로젝트를 아이들과 실행해보고 싶습니다.
 
모둠 협력 프로젝트는 전체 공유로 심화된다.
▲ 선생님들이 모둠에서 협력하여 만든 프로젝트를 공유하다 모둠 협력 프로젝트는 전체 공유로 심화된다.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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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 강의 테마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주인공으로 세우는 일', 이 말이 연수 내내 계속 맴돌았습니다. 나는 수업에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는가. 나는 내 수업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가. 우리는 각자 강한 개인으로서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 과정을 디자인하고 있는가. '탐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가 이해되고, 전 과정을 제대로 실습한 것 같습니다. 부족한 나를 따뜻하게 도와주신 수업 친구 선생님들이 고맙습니다.

- 그동안 내가 얼마나 테크닉만 쫓아다녔는지 느꼈습니다. 새로운 것은 계속 쏟아지는데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렸습니다. 그 와중에 제 수업은 중심을 잃고 전전긍긍하며, 아이들에게 획일과 효율을 강요했습니다. 교사의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낍니다. 2학기 수업에서는 주인공으로 당당히 서겠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저의 이런 변화를 좋아할 것 같습니다.

- 첫날 강의에서 하신 '수업디자인은 학습지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배움의 본질을 수업으로 끌어 들여와서 아이들이 개인의 배움으로 챙겨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신기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어려웠습니다. 이틀 동안 모둠 선생님들과 협력적 의사소통을 실습하면서 완벽하게 이해합니다. 혼자서 책을 쌓아놓고 하면 이뤄낼 수 없는 것을 선생님들과 대화하고 질문하면서 수월하게 했습니다. 이 기분 좋은 따뜻함을 우리 반 아이들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의 수업디자인 배움의 열정이 뜨겁다.
▲ 선생님들이 모둠에서 협력하여 만든 프로젝트를 공유하다 선생님들의 수업디자인 배움의 열정이 뜨겁다.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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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디자인? 그게 뭐지? 수업도 디자인을 해?' 이런 의문을 갖고 연수에 왔습니다. 배움의 선택 권한을 아이들에게 더 많이 주는 유연한 상상력을 장착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형식적인 협력, 형식적인 대화, 형식적인 질문, 형식적인 탐구를 강요했습니다. 내 수업이 보여주기 식 수업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수업에서 주인공으로 자신의 배움을 구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합니다.

- '자신의 탐구 루틴을 장착한다.'는 말을 이해합니다. 그동안 저는 잘 안 되는 지점에서 '원래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탐구가 무엇인지, 성찰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업디자인 실습 과정이 제게는 질문에 답을 주는 현장이었습니다. 2학기 수업은 제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 어린아이들을 남편, 부모님, 친척들에게 교대로 맡기면서 연수에 왔습니다. '한 명의 좋은 교사를 키우려면 온 가족이 필요하다.'고 남편이 말했습니다. 온 가족이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줄 정도로 제게는 이번 연수가 소중합니다. 내가 갇힌 단단한 틀에서 이제 막 나온 기분입니다. '선생님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어린아이가 질문하는 것처럼 모둠 선생님들께 계속 여쭤보면서 참여했습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질문하면서 배우는 것이 이렇게 즐겁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 '이왕 교사를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 이왕 배움중심수업을 할 거면 제대로 해 보자.'는 연수의 성취기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단과 목적이 같아지면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그 놀이라는 단어가 매력적입니다. '선생 놀이', '수업 놀이', 저에게는 이번 연수가 수업디자인 연수'가 아니라 '수업디자인 놀이'입니다. 이렇게 즐겁게 놀아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는 수업디자인이 앞으로 '즐거운 놀잇감'이 될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듭니다.
 
선생님들이 학년별로 모둠을 구성하여 실습한 프로젝트 수업디자인
▲ 선생님들이 만든 프로젝트 선생님들이 학년별로 모둠을 구성하여 실습한 프로젝트 수업디자인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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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과 함께 배운 수업디자인 연수 1박 2일, 배움의 철학이 단단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 수업디자인 연수 마무리 소감 나눔 선생님들과 함께 배운 수업디자인 연수 1박 2일, 배움의 철학이 단단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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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들이 이틀 동안 경험한 프로젝트가 추진력을 받아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고 싶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것이 배움과 삶이 연결되는 질 높은 배움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자신들의 프로젝트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전이력을 경험하도록 우리가 돌봐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수업디자인의 방향이고 배움의 방향입니다.

통찰력, 안목은 어떻게 생길까요? '사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보고 또 보고, 하고 또 하고'의 과정을 통해 생깁니다. 수업 현장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자신의 탐구 루틴을 가동합시다. 선생님들이 이번 연수에서 경험한 소중한 가치인 '협력적 의사소통능력' 역량을 잃지 않고, 다정한 교사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배우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2학기, 자신의 필드에서 제대로 된 '선생 놀이, 수업 놀이, 수업디자인 놀이'를 만끽하시길. 

* '배움의공동체 연구회'는 전국 시도별로 69개가 있다.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됨이 없는 질 높은 배움'을 지향하면서 수업 임상으로 배움중심수업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교사들의 자발적 연구회이다.

태그:#배움의공동체연구회, #광주배움의공동체초등연구회, #수업디자인연수, #배움중심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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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초등수석교사, <가르침을 멈추니 배움이 왔다>, '배움의공동체 연구회' 회원으로 아이들, 선생님들과 즐겁게 배우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다양한 실력이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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