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9 06:45최종 업데이트 22.08.09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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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대우조선해양(이후 대우조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이 7월 22일에 사내 하청업체 사측과의 교섭으로 종결됐다. 장장 51일간의 파업이었다. 대우조선 옥포조선소는 1973년 국영기업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가 착공을 시작했다가 멈추고 1978년 대우그룹이 인수해 1981년 준공된 이래 단 한 번도 진수(도크에 물을 주입해 선체를 띄워 바다로 내보내는 공정)를 멈춘 적이 없었는데, 유최안 노동자가 자신을 도크 바닥에 용접하고 옥쇄 투쟁을 시작하면서 40여 년 만에 처음 진수를 멈췄다.

이 초유의 사태에 대해 오래된 노동자들과 관리직, 즉 '중공업 가족'들은 물의 흐름이 막힌 이 순간을 혈이 막힌 느낌이라고 전했다. 공정이 전개되어야 매출을 일으키고 수익을 내 경영정상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뉴스에서는 매일 피해 액수를 산정하다가 최종적으로는 7000~8000억 원에 달하는 액수를 제시했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6월 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바닥에 가로세로 1미터 크기의 철판을 붙여 만든 공간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편 자신을 가둔 하청 노동자는 100여 명의 조합원을 믿고 불볕더위와 하루하루 싸우고 있었다. 더위 속에서 타죽더라도 물을 막아야 한다는 처연한 역설을 실천하면서, 파업을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내세웠다.

조선업의 불황기에 삭감된 '임금 30%' 회복이 노동조합의 핵심 주장이었고, 파업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회사가 진행한 손해배상 소송에서의 조합원 면책 문제, 파업 기간 중 폐업한 기업에 종사한 조합원의 고용 승계 문제, 노조 상근자에 대한 타임오프 등도 의제가 됐다. 최종적으로는 하청 노사 간에 임금 평균 4.5% 인상(업체별 차이 및 직무별 차이 있음), 명절 및 여름 휴가비 총 140만 원 지원, 조합원 고용 승계를 위한 노력 등에 대해서만 합의했다.


손배소는 여전히 협상 중이다.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노조 간부만 손배소 대상이 되고 조합원은 면책되는 사안은 여전히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노조 상근자 타임오프 역시도 인정되지 않았다.

파업 그 후

일단 마무리는 이렇게 되었지만 평가는 분분하다. 우선 교섭 조건 중 제대로 달성한 것이 별로 없으니 노동조합의 실패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합이 어쨌거나 원청과 산업은행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내하청업체 대표단'(이번 파업의 명목상 사측)을 앞에 두고 교섭의 주체로 인정받은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 평가하기는 어렵다. 만약 내년에도 지금의 조합원들이 유지된다면 이번에 한 차례 성사된 교섭은 향후로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설이나 공장 건설 현장 등에서 지금보다 더 높은 단가로 노동자들을 모신다면 현재의 조합원들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일당 기준 20만 원을 넘게 받는 수도권 공장과 위험하고 힘든데 15만 원을 받기가 힘든 거제도·울산의 조선소 근무 중 어디를 선호할지 묻는다면 갑갑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또 회사 관점에서 매출액을 영업일로 계상해 최대치로 7~8천억 원의 손실을 냈으니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해석이 있다. 산업은행과 기획재정부는 이미 극심한 손실을 보았고 추가 파업으로 손실을 볼 경우 지원을 할 수 없고 청산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손실은 날짜가 정해졌던 인도(배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일) 기일을 맞추지 못했던 선박에 대해서만 확정된 것에 불과하다. 야드(조선소 현장)에 적치(쌓여 있음)되어 있는 블록들과 자재들이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순환되고 공정이 정상화되느냐에 따라서 손실액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7월 22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가 임금협상을 타결지은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금속노조

 
당장 교섭이 타결되고 나서 원·하청 할 것 없이 노동자들이 공정 재개를 위해서 2주간의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근무를 시작했다. 물론 관행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을 '갈아 넣어' 공정 일정을 맞추는 것이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위험한 것은 기본이고, 효율성이나 비용 관점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 '긴급 작전'은 진짜로 긴급할 때만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긴급 작전'이 시행 중인데 7~8천억 원의 손실을 확정적인 것으로 기술하는 것도 공정한 일은 아니다. 실제 최종 손실은 추후 제3자인 회계 법인에서 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해결 과제들

좀 더 심층적으로 따져보자. 왜곡된 노동 시장의 구조가 문제의 뇌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제조업 노사관계 연구자들이 흔히 말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1차적으로 존재한다.

원청 노동자들은 기본급 외에 연공급 성격으로 호봉이 오를 때마다 임금이 오르고, 교섭력을 통해 달성한 다양한 형태의 복지와 성과급(교섭 타결금 포함)을 받는다. 같은 시점 같은 일을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호봉제의 영향을 별로 받지 못하고, 성과급을 받기 힘들며, 그나마 임금을 보전해 주었던 짝수달마다 100%씩 받아 550%를 받던 정기상여금의 경우 통상임금에 산입되면서 사라지게 됐다.

기본급 관점에서 원·하청 간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노동조합의 교섭력 유무에 따라 급여에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원청의 사측은 조선산업의 유연한 노동 수요 때문에도 사내하청을 쓰지만, 임금을 낮추기 위해서도 사내하청을 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유한 두 가지의 변수가 이번 파업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먼저 사내하청과 연결된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아웃소싱이다. 원래 원청이 특정 구역의 작업을 인원과 물량을 적정히 산정해 하도급을 주는 것이 사내하청이다. 일감이 폭증해 갑자기 인력이 부족하여 '임시협력사'나 '프로젝트 협력사' 등을 추가하여 다단계 방식으로 하도급을 줄 수는 있으나, 이것이 만성이 되어 불황인데도 다단계를 거치는 탓에 노동자들의 임금 몫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급기야 10년 넘게 일했는데 200만 원 남짓 수령한다는 사내하청 용접 노동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더불어 사내하청사가 인력공급업체에 아웃소싱을 주면서 숙련공 상용직(사내하청 업체의 정규직) 대신, 불안정한 일당벌이인 물량팀 위주의 노동시장 재편도 벌어졌다. 사내하청업체의 아웃소싱은 불법이나 현장에서 근절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특히 이 지점에서 원청이 알고서도 방조했다면 법이 개입해야 할 문제가 된다.

두 번째로 대우조선이 분식회계와 적자로 인해 구조조정을 매개로 공적자금을 받은 회사라는 점이다. 조선업의 위기로 인해 사내하청 업체들이 도산하고 노동자들이 해고당했지만, 같은 시점 원청 정규직들도 희망퇴직·임금 반납·무급휴직 등을 겪었다. 비정규직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원청 정규직들의 고통이라는 것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2019년 현대중공업 인수 과정에서 긴축 경영 기조를 바꾸지 않아 내부적인 문제들이 풀리지 않은 측면도 있다. 2022년 동종업계와 비교했을 때 사무직과 기술직들의 임금은 주니어(사원~과장) 기준으로 조선3사와 연봉으로 볼 때 2000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현직자들은 전한다(그나마 근속연수가 높은 생산직 노동자들은 동종사 대비 차이가 덜하다).

이런 불만 속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보다는 '노노갈등'의 측면이 외부에 더 많이 노출되기 쉬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양쪽 중 어느 쪽이든 가해자라고 볼 수는 없다.

외려 이 지점에서 대주주이자 경영관리단을 운영했던 산업은행의 역할과 비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노사자율 교섭을 원칙이라 이야기하면서도 수틀리면 공권력 투입을 언급한다. 십 수 년간 대우조선에 CFO를 파견했으면서 분식회계 문제는 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채권단과 함께 '긴축'을 말하는 것 외에 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문제 풀어갈 리더십

지금까지의 맥락을 살핀다면, 부실기업을 정상화 해 가장 좋은 인수자에게 매각한다는 애초 목표가 조선산업에서는 제대로 달성된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또 조선소의 선박-해양-특수선(군함 등 방산) 부문을 분리하여 매각하겠다는 뉘앙스만 흘리고 있는데, 조선소 부문들의 물리적 분할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산업은행이 과연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좀 더 많은 비판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산업은행 관리 하에서 경영진부터 노동자들까지 '공기업 체질'이 되었다면, 그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한동안 진보진영이 주장했던 '국민주 기업'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국민주 기업과 산업은행 관리 기업의 차이는 무엇일까? 연임을 위해 매출 실적을 쌓으려고 저가 수주를 단행해 시장을 교란하다가 결국 수감된 이들은 산업은행 관리 아래 임명된 대우조선의 경영진들이었다. 국민주 기업이 된다면 이런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까?
 

7월 23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진수가 중단된 지 5주만에 30만톤급 초대형원유운반선이 성공적으로 진수 되고 있다. ⓒ 대우조선해양

 

책임져야 할 대상이 '국민 일반'이라는 것과 정부-산업부-산업은행이라는 것은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1년에 10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조선산업의 빅3를 운영할 수 있는 주체에 대해서 좀 더 '현실감' 있으면서도 '책임감'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현대중공업의 인수합병이 유럽연합의 LNG운반선 독점에 대한 문제제기로 무산된 상황에서, 다른 대자본 중 누가 가장 적합한 인수주체가 될 것일까? 오래된 질문이지만 다시 되새김질을 해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우조선 사내하청노조 파업은 거버넌스, 노사관계, 원·하청 관계, 지역 문제가 얽혀서 만들어낸 모순을 한 번에 드러내 버린 트리거였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한 방'이면 되지만, 실제로 풀어내는 것은 지난한 숙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민주주의적 리더십의 문제가 된다.

저임금 구조를 바꿔야 하고, 이를 위해 생산의 불법 하도급 체제도 깨야 하며, 인력과 기술력 같은 조선산업의 핵심 경쟁력을 강화할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 정부의 조선산업과 부산·울산·경남 경제에 대한 관점과 거버넌스 실력을 묻는 것이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부정적인 신호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 필자 소개: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제조업과 엔지니어를 연구합니다. 동남권 산업벨트에서 산업 정책과 혁신 정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9년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산업을 다룬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출간했습니다. 2020년 한국출판문화상, 한국사회학회 학술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평소에는 삼삼오오 모여 맥주 마시며 야구를 보는 걸 좋아하는 LG 트윈스 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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