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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로 십 년 넘게 일하면서 학부모께 가장 많이 받은 부탁은 공부가 아니다. 인성 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세요, 주변 사람과 잘 지내게 해주세요. 이 두 가지였다. 뉴스에서 대학 입시를 주요 교육 이슈로 다루니 잘 부각되지는 않지만, 마음이 바른 사람으로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다.

나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이를 돌보기 위해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냈다. 부모 역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셈인데, 나 역시 덕성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휴직자는 시간이 많으니 학습지를 같이 풀어 주거나, 도서관과 미술관에 함께 가줄 수 있다. 공원에서 나란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근처 수목원에서 숲을 거니는 체육 활동은 어렵지 않다. 원래부터 직업적으로 해오던 일의 연장선상에 가깝다. 그러나 인성, 덕성을 가르치는 영역은 조금 난감했다. 

어찌 보면 덕성 교육은 연기 냄새가 몸에 배듯 생활 속에서 부모가 바른 행동, 바른말을 하면 된다. 그러나 나는 휴직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이용해서 그런 간접적인 교육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훌륭한 인격은 고3 대상 족집게 과외처럼 단기간에 갖출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전히 부모로서의 욕심이겠지만,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도덕적인 삶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층 이웃에게 초당옥수수를 선물했다

아내도 찬성 의사를 비쳤다. 하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우선, 우리가 민폐를 끼치고 있는 부분을 찾아 그것에 대해 사과하기로 했다. 계기는 엘리베이터 안에 붙은 어떤 쪽지였다. 반대편 라인에 사는 어떤 분이 안방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지, 냄새가 올라오니 제발 좀 자제해 달라는 익명의 호소문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다른 사유로 뜨끔했다. 우리 집에는 8세, 6세의 건강한 두 여아가 산다. 항시 주의를 주고, 교육을 시키지만 때때로 쾅쾅거리는 발 망치를 피할 수 없다. 아파트에 살면서 층간소음은 기본값으로 가지고 가는 민폐다. 

환경적으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백만 원가량을 들여 안방과 거실, 작은 방 주요 활동 영역을 매트로 덮었다. 그럼에도 완벽한 방음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이와 외부 손님을 로봇처럼 통제하지 않는 한 소음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최대한 경각심을 지니고 노력하며 살아야만 했다.

우리는 아랫집에 그저 죄송해서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맛보시라고 드리곤 했다. 올봄에는 강릉시 옥계면 시골 밭에서 직접 딴 개두릅(엄나무 새순)을 들고 갔는데, 아내와 나만 갔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는 아이들을 대동하기로 했다.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안부 겸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기로 한 것이다. 성인군자는 못 되더라도, 염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작은 시도는 해볼 만하지 않은가. 

"우리 집은 개미 소리, 아랫집은 천둥소리."

아랫집에 내려가기 전, 우리는 표어를 함께 읽으며 어떤 인사를 건넬지 연습했다. 인사는 아이들이 먼저 하되, 당황하거나 말문이 막히면 어른이 도와주기로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려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웃분께서는 언제나 그렇듯 온화한 미소로 반겨주셨다. 아이들도 두려움이 가시는지 얼굴이 풀렸다. 

"자꾸 뛰어다녀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우리는 생긴 것은 옥수수이지만, 맛과 식감은 과일 같은 '초당옥수수' 봉지를 이웃께 안겨드렸다. 이웃분은 손사래를 치면서 민망해하셨다. 매번 이런 거 안 챙기셔도 된다고 하면서도, 아이가 예쁘다며 덕담을 해주셨다. 나는 너무 미안하고 감사해서 머리를 공손하게 숙였다. 집에 올라와서 아이에게 물었다. 

"매번 혼나기만 하다가, 직접 사과드리니까 어때?"
"바람이 부는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어."


멋진 대답이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층간소음 교육을 하고 조심하겠지만, 아이가 고학년이 되어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랫집에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품에 꼭 안고 간 초당옥수수
 아이가 품에 꼭 안고 간 초당옥수수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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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옥수수 사과 이후 가슴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 우리 가족은 뭔가 다른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여기서 다르다는 의미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층간 소음은 어쨌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이웃 사이의 문제다. 미리 사과를 하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는 건 분명 괜찮은 행동이지만, 이웃과 원만하게 지낸다는 보상을 전제하고 있다. 

쓰레기줍기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대중 일반이나 사회 전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고 숙고하던 찰나 '플로깅'이 떠올랐다. 플로깅은 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 부부는 환경에 관심이 많아 각각 후원을 하는 단체가 있다. 아내는 그린피스에 매달 3만 원, 나는 서울환경연합에 1만 원을 보낸다. 

단체에서 보내주는 보고서를 꼼꼼히 읽다 보면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지구상의 다른 국가에 폐를 끼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선진국 시민의 소비적 생활양식은 값싼 노동력과 지하지원, 에너지를 보급해주는 개발도상국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자원과 에너지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소비 자체를 줄이게 되었다. 또한 생태적 관점에서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무한 성장의 신화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윤리적일 수 있다는 나름의 믿음도 생겼다. 

아이와 함께하는 플로깅은 단순히 산책길을 깨끗이 치운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본주의에서 자연은 종종 돈만 내면 마음대로 착취해도 되는 대상으로 치부된다. 그런 식으로 자연을 함부로 대한 결과, 여름만 되면 남부 유럽에서 산불이 나고, 비가 전혀 내리지 않던 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마을이 물에 잠긴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잠기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초대형 태풍으로 피해를 보는 개발도상국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쓰레기 줍기는 매우 단순한 행위이지만 습관으로 이어질 경우 큰 힘을 발휘한다. 여름에 땀 흘리며 집게질을 해본 아이들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 쓰레기를 다시 정리하고, 분리수거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아이 손 잡고 1시간만 돌면 20리터 종량제 봉투가 금세 찬다.
 아이 손 잡고 1시간만 돌면 20리터 종량제 봉투가 금세 찬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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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집과 차에 집게를 상비해 두고 틈틈이 아이와 쓰레기를 주웠다. 힘든 봉사활동 같이 보이겠지만, 오히려 하고 나면 운동도 되고 얻는 것도 많다. 쓰레기를 줍고 있으면 주변 분들의 격려를 많이 받는다. 사탕을 주시기도 하고, 아이들을 향해 엄지를 추켜세워 주시기도 한다. 

"아빠! 저기 쓰레기!"

아이들은 쓰레기 줍기에 자부심을 느끼고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 맑게 웃는 아이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꽤 좋은 교육적 경험을 한 것 같아 부모도 흐뭇해진다. 심지어 비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볼 때는 정말 값진 덕성 교육 프로그램인데 공짜다. 해 질 녘 하늘을 곱게 물들이는 노을이 무료인 것처럼 진짜로 좋은 것들은 대부분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이의 한 달짜리 여름 방학이 어느덧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랫집에 층간 소음 사과를 한 이후 아이들은 한결 덜 뛴다. 이제 아랫집에 어떤 분이 사는지 서로 얼굴도 알고 있어서, 생판 모르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정하신 이웃 아주머니가 힘들까 봐 뒤꿈치를 드는 아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옥수수를 들고 내려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원 벤치에서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바닥에 커피 컵이 보이면 내 쓰레기를 버릴 때 같이 주워 준다. 주변이 청결하면 나도 기분이 좋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손이 더러워지니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아이들이 옆에서 보고 배우므로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우리 집의 여름 방학 특강 덕성교육은 이상 두 가지다. 더 특별하고 멋진 걸 해보려 했지만 체력도 부치고,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아 기존에 하던 것이나 잘하기로 했다. 뭔가 색다르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덕성 교육 프로그램을 찾고 있다면 철물점이나 잡화점에서 저렴한 집게를 사서 밖으로 나가 쓰레기를 줍는 건 어떨까. 집게가 없다면, 두툼한 목장갑도 요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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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교육과 환경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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