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4일(현지 시각),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조니 미첼

지난 7월 24일(현지 시각),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조니 미첼 ⓒ New Port Folk Festival


올해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션 헤이더 감독의 <코다>였다. '코다'란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일컫는다. 영화의 주인공 루비(에밀리아 존스 분)는 농인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이다. 음성 언어와 수화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바이링구얼'인 그는 가족과 세상을 연결하는 건널목의 역할을 한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루비가 버클리 음대 진학을 꿈꾼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루비는 통역사의 역할에 큰 부담을 느끼고 가족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종반부에는 노래를 듣지 못하는 가족들을 위해, 노랫말을 수화로 통역해서 함께 부른다. 이 아름다운 화해의 순간에 울려 퍼진 곡이 바로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다. 삶의 복잡성을 관통한 이 곡은 수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명곡이다. 국내에서는 양희은이 '구름, 사랑 그리고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캐나다 출신의 조니 미첼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하나다. 히피, 우드스탁 시대의 아이콘인 그는 자기 고백적이며 성찰적인 노래들을 불러 왔다. 그는 9개의 그래미 상을 수상했고, 1997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대표작 < Blue >는 2020년 롤링스톤 매거진이 개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3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음악사에 남긴 업적에 비해 조니 미첼의 국내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그의 노래보다는, 오히려 담배를 피는 모습의 자화상을 담은 < Both Sides Now > 앨범 재킷이 더 유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현 세대 최고의 팝스타인 테일러 스위프트, 'As It Was'를 빌보드 핫 100 차트 10주 1위에 올린 해리 스타일스도 모두 조니 미첼의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1943년생인 조니 미첼은 올해로 78세다. 역시 1940년대생인 폴 매카트니, 롤링스톤즈, 밥 딜런 등의 거장들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조니 미첼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건강 문제가 컸다. 2015년에는 뇌동맥류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고, 시상식에 참석할 만큼 건강을 회복했지만 음악 활동은 별개의 문제였다.

변하지 않는 음악의 힘
 
 지난 7월 24일(현지 시각),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오른 조니 미첼(왼쪽)과 브랜디 칼라일(오른쪽)

지난 7월 24일(현지 시각),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오른 조니 미첼(왼쪽)과 브랜디 칼라일(오른쪽) ⓒ New Port Folk Festival

 
그리고 지난 7월 24일(현지 시간), 조니 미첼이 미국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 깜짝 등장했다. 모두가 놀랐다. 전날 이 페스티벌에 깜짝 출연한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폴 사이먼에 이어,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전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은 과거 밥 딜런이 포크 뮤지션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렉 기타를 잡고 연주를 펼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니 미첼은 1969년 이후 53년 만에 이 페스티벌 무대로 돌아왔다. 포크록 뮤지션 브랜디 칼라일의 소개와 함께 등장한 조니 미첼은 'A Case Of You', 'Both Sides Now', 'Big Yellow Taxi' 등 무려 열세 곡의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을 불렀다. 건강 문제가 무색하게, 조니 미첼은 저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 

조니 미첼은 브랜디 칼라일, 밴드 멈포드 앤 선즈의 보컬 마커스 멈포드, 테일러 골드 스미스 등 젊은 뮤지션들과 콜라보를 펼쳤고, 잼(즉흥 합주)에 나섰다. 'Just Like This Train'을 부를 때는 의자에서 일어나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조니 미첼이 무대에서 10곡 이상의 노래를 공연한 것은 2000년 이후 22년 만이었다. 역사적인 장면에 현장의 관객들은 물론, 대중음악 팬들이 열광했다. 싱어송라이터 벡(Beck)은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부러워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무대에 선 거장은, 전세계 음악 팬들에게 뜻밖의 따스함을 선사했다.

"I've looked at clouds From both sides now
From up and down, and still somehow
It's cloud's illusions I recall I really don't know clouds at all"

나는 이제 구름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위와 아래에서,
하지만 기억에 남은 건 구름의 환상일 뿐. 정말 구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

- 'Both Sides Now' 중


한편 조니 미첼의 노래 못지 않게 감동을 선사한 장면이 한 가지 더 있다. 조니 미첼의 목소리에 화음을 맞추다가, 후배 뮤지션 브랜디 칼라일이 가슴을 부여잡고 울먹이는 모습이었다. 브랜디 칼라일은 여러 차례 조니 미첼에 대한 존경심을 고백해온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에게 이 공연은 과거와 오늘,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공연을 마친 브랜디 칼라일은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조니 미첼이 이 세계를 멈추는 동안, 그 옆에 앉아 있었던 것을 잊지 못할 것이다"라며 존경심을 표했다.

조니 미첼은 53년 전에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Both Sides Now'를 불렀다. 물론 그 시절의 조니 미첼과 지금의 목소리는 같지 않다. 그러나 히피 시대의 아이콘은 세월의 흐름 앞에 노쇠해졌음에도, 음악의 힘이 변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조니 미첼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BOTH SIDES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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