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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적용도 검토... 캐나다의 조력존엄사 시행 6년

2016년 첫 시행, 2021년에는 대상 확대... 뜨거운 논쟁의 결과

22.07.12 19:54최종 업데이트 22.07.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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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국회에서 말기 환자가 담당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력 존엄사법'이 발의되었습니다. 마땅한 자기 결정권이라는 환영 의견과 열악한 돌봄 시스템 속에서 취약계층이 조력존엄사로 내몰릴 것이란 우려가 엇갈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관한 여러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말]

2016년 조력존엄사를 처음 도입한 캐나다는 지난 2021년 이를 확대 시행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자료사진) ⓒ pixabay

 
TV를 통해 스위스에서 조력존엄사가 시행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거동이 힘들어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가족들과 함께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은 침대 곁을 둘러싸고 섰다. 아내는 할아버지를 껴안으며 잘 가라고, 꼭 다시 만나자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살아서 건물로 들어간 사람이 얼마 뒤 누운 채 실려 나오는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자신이 정한 시간에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인사를 한 뒤 삶을 마감하는 모습이 한편 숙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정한 시간에 떠난다

이런 모습이 캐나다에서도 가능해진 것은 2016년 6월이었다. 조력존엄사(Medical Assistance In Dying의 머릿글자를 따 MAID라 불린다)를 법으로 금하는 것이 캐나다 인권 자유 헌장에 반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캐나다 의회는 조력존엄사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로써 캐나다는 조력존엄사가 시행되는 소수의 국가들 중 하나가 됐다.
 
극심한 통증을 야기하는 치료 불가능한 질병이나 장애가 있고 가까운 미래에 사망하리라는 합리적 예측이 가능한 경우, 삶의 마지막을 맞을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캐나다 보건부에 따르면, 2016년에서 2019년 사이 조력존엄사로 생을 마감한 캐나다인들의 수는 1만 3946명이었다.
 
조력존엄사법이 시행된 지 약 5년 후인 지난 2021년 3월에는 이를 확대 시행하는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기존 법의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랐다. 우선, 조력존엄사를 요청할 수 있는 자격요건 중 '자연사할 것임이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할 것'이라는 조항이 제외됨으로써,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신청대상이 됐다.
 
또한 조력존엄사가 시행되기 직전 한번 더 이에 동의해야 한다는 조건도 철회 가능토록 변경됐다. 승인을 받은 사람이 이후 의사결정 능력을 잃었다는 이유로 조력존엄사 를 거절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조력존엄사를 받기 전 그에 동의할 수 있는 의사결정 능력을 잃을까 우려되어 원하는 날짜보다 더 일찍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오드리 파커의 사례가 관련 논의를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이후 자연사가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하고 병세의 악화로 의사결정 능력을 잃을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최종 동의 조항을 철회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조력존엄사 실행 과정에서 말이나 소리 혹은 몸짓으로 거절이나 저항의 뜻을 표하는 경우 그 합의서는 효력을 잃는다.
 
조력존엄사에 대한 승인이 난 뒤 실제로 약물을 주입하기까지 걸렸던 10일간의 대기기간도 없어지고, 동의서 작성시 필요한 증인의 수도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자연사가 예측 가능하지 않은 경우에는 의료진이 따라야 할 안전장치들이 더 많다. 무엇보다 조력존엄사 요청에 대한 평가기간이 최소 90일 이상이 되어야 한다. 환자에게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는 모든 대안들에 대해 충분히 인식시켜주어야 하며, 존엄사 시행 직전 반드시 최종 동의를 받아야 한다.
 
"더 많은 복지를" vs. "죽을 자유를"... 뜨거운 논쟁의 결과
 

3월 11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의 한 쇼핑몰 안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이렇게 조력존엄사법이 개정되어 확대 시행되기까지 많은 논의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법률이 개정되기 직전인 2020년 12월 <토론토스타>에 실린 찬반토론 기사 "캐나다는 조력존엄사가 너무 쉽게 이뤄지도록 하려 하는가?"(Is Canada trying to make medically assisted dying too easy?)에는 찬성과 반대입장이 잘 드러나 있었다.
 
법률 개정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말한다. 안정적인 주거와 고용안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장애시설, 통증 전문가, (말기 환자의) 고통 완화 의료 전문가, 정신건강 전문가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을 택했겠는가, 라고.
 
이들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살고자 하는 의지와 자살하고자 하는 마음은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조사결과와, 암 진단을 받은 뒤 가장 자살 충동이 크게 이는 기간은 첫 3개월 동안이라는 것(조력존엄사 요청에 대한 평가기간이 최소 90일로 정해지는 것에 대한 반론), 환자들에게 있어 자살 충동은 근본적인 신체적 제한보다는 사회적 지원과 고용, 관계형성 기회의 부족, 가난, 다른 이들에게 짐이 된다는 느낌 등과 더 관련이 많다는 것 등을 들어 조력존엄사법 개정안의 결함을 지적했다.
 
장애인 권리 단체 '인클루젼 캐나다' 부회장 크리스타 칼은 후에 < CBC >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조력존엄사를 선택하기보다는 수입과 주택 보조 같은 정부의 더 많은 지원을 원할 것이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죽음이 아닌 삶, 적절한 지원으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삶을 사는 것이다. 현재의 조력존엄사법은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
 
반대로, 법률 개정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기존의 조력존엄사법은 일부 사람들을 배제시켜왔으며, 법률 개정은 모든 캐나다인들의 자유와 안전 및 평등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IPSOS)에 따르면 캐나다인 85%가 법률개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찬성론자들은 조력존엄사에 대한 요청이 강압에 의한 성급한 결정이 아닌지를 철저히 판단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으며 의료진이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다른 선택지를 충분히 제공하기 때문에 이는 강압적 법률이 아닌 허용적인 법률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찬반 논의 끝에 결국 캐나다 대법원은 찬성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조력존엄사법 적용 문제가 그렇다. 법률 개정 당시, 다른 자격기준을 모두 만족시킨다 하더라도 신체질환 없이 정신질환만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2023년 3월 17일까지 조력존엄사법 실행 대상에서 제외됐다.
 
남은 논쟁, 정신질환자에게도 적용?

정신질환자에 대한 조력존엄사법 적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신질환의 결과(치료 불가능한지 아닌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며 많은 정신질환이 약물이나 치료요법, 가난이나 외로움 등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삶의 조건을 개선함으로써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또 죽고 싶은 마음은 정신질환의 증상인 경우가 많다고도 강조한다. 

가인드 토론토대학 정신의학과 부교수는 < CBC >와의 인터뷰에서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한 자율성을 가져본 적 없는 소외층 사람들이 고통을 해결하는 잠재적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찬성하는 사람들은 치료 불가능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은 그것이 신체적 질병에 의한 것이든 정신적 질병에 의한 것이든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신질환의 증상은 비정신질환의 증상과 구별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정신질환으로 야기되는 고통 역시 신체질환이나 장애에 의한 고통 못지 않다는 것이다.
  
조력존엄사를 '사전요청'하는 것에 대한 논의도 진행중이다. 앞서 말한 일명 '오드리 개정안'으로 (자연사가 예측 가능한 이들에 대해) 조력존엄사 시행 직전 한번 더 동의해야 한다는 조항은 철회할 수 있게 됐지만, 조력존엄사를 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돌이킬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조력존엄사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은 환자의 고통이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기 전에 조력존엄사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통이 극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을 조력존엄사로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한 여성은 인터뷰를 통해 '사전요청'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녀는 가족이 자신이 정한 때에 사랑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평온하게 떠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면서, 결정을 내리기 힘들 만큼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조력존엄사를 준비할 수 있다면 남아있는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성년자에게도?
 

2016년 조력존엄사를 처음 도입한 캐나다는 지난 2021년 이를 확대 시행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자료사진) ⓒ pixabay

 
또 한 가지 과제는 거의 성인이 된 미성년자에게도 조력존엄사법을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현재는 18세 이상 성인만 조력존엄사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2015년 지역 자문위원회는 나이가 아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에 기반한 조력존엄사 적용을 권고했다. 캐나다 의회 위원회 역시 도덕적, 윤리적, 법적 쟁점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후라면 의사결정 능력이 있고 18세에 가까운 미성년자에 대한 조력존엄사를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캐나다 소아과 협회'를 비롯해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극심한 고통이 이어지는 삶을 종결할 권한, 누군가는 그것을 '아름다운 작별'이라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약자에 대한 위협'이라 부른다. 조력존엄사에 대한 첫 논의를 시작한 한국에서도 모든 이들의 의사결정권과 동등권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사회 일부 계층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지가 되지 않도록 더 많은 논의와 안전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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