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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본적으로 인간을 믿지 않는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유명한 책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은 DNA 속에 이기적 유전자를 지니고 있고, 본인의 생존과 욕망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인간을 믿지 않는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더더욱 말이다.

의심이 많은 나는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심한 편인데, 국내에 여행을 다닐 때도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만나면 나만의 '낯선 이 경계 주의보'를 발령한다. 국내 여행도 이러니 해외를 나가면 오감에 촉이라는 부를 수 있는 육감까지, 온몸의 감각은 날을 세우고 있다.

길을 물어보면 친절히 답을 해주는 것,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친절한 마음씨'의 수준이다. 딱히 수상하지 않더라도, 과도하게 친절하거나 호의를 베푸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게 나만의 불문율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영화에서나 보던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의 로맨스나 우정 따위는 인생을 건 도박이라 생각하며, 안전이 제일인 여행을 추구했다. 이런 나에게 최근 알고리즘이 인도한 어느 여행자의 영상은 꽤나 흥미로웠다.
 
러시아의 호숫가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서로에게 호의를 베풀고 마음을 나누었다.
 러시아의 호숫가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서로에게 호의를 베풀고 마음을 나누었다.
ⓒ 곽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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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썸네일은 우즈베키스탄 사람에게 누군가가 소파를 사주는 한 장면이었다. 삶이 풍족하지 않은 나라를 여행하다 힘들게 살아가는 현지인에게 도움을 주는 다른 사람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어서 '그래도 인류애는 잊지 말고 살아가라'는 깨달음을 주는 영상인가 싶어 동영상을 클릭했다.

한국인 여행자와 우즈베키스탄의 남자는 러시아의 한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다 우연히 말을 섞으며 인연이 시작됐다. '어몽'이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으로 가서 일을 하고 싶지만 비자나 서류 문제로 한국행은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어몽이 사준 맥주를 마시며 한동안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마음이 잘 맞았는지, 여행자는 그를 좋은 레스토랑으로 데려가 소고기를 대접했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홀로 여행을 다니는 여행자의 외로움과 낯선 곳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이방인의 고단함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짧은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 후 그 여행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 어몽을 다시 만났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시간, 완벽한 비포장도로를 달려 여행자를 데리러 온 어몽도 대단하고, 잠시 대화를 나누었던 인연으로 낯선 이를 쫓아 칠흑 같은 어둠 속 오지마을로 일말의 의심없이 따라 들어간 그 여행자도 정말 대단했다. 둘 다 인간에 믿음이 없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선의와 마음을 믿고 있었다.

집에 물도 나오지 않는 외딴 마을, 어몽의 집에서 여행자는 한 달을 머물렀다. 우즈베키스탄 하면 떠오르는 건 '밭매는 여성들조차 김태희처럼 예쁘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던 나에게 그가 찍은 영상은 우즈베키스탄의 사람들이 몹시도 친절하다는 것,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을 하다 돌아간 사람들이 많아 한국어 능력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한 달간 어몽의 집에서 신세를 진 여행자는, 이렇다 할 가구를 아직 마련하지 못한 어몽에게 소파를 선물했다. 돈을 쓰지 말라며 사양하던 어몽도 소파가 집에 배달되어 거실을 가득 채우자 너무나도 행복해했다. 어몽은 '소파를 볼 때마다 너를 기억하겠다'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환한 미소에 담아 전했다. 그걸 보고 있는 나마저도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여행 동영상 중에서도 특히나 이 여행과 만남이 감동적이었던 건, 여행자와 어몽 둘 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를 베풀고, 그 선의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며 보답할 줄 아는 마음씨를 지니고 있었다.

상황, 조건, 나이, 인종을 뛰어넘어 온전히 사람만을 믿고 저렇게 마음을 나누는 게 가능하다니, 한편으로는 부럽고 놀라웠다. 인간이 꼭 이기적인 유전자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이런 게 어쩌면 인류애가 아닐까 싶었다. '아직 세상에는 선한 마음을 가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이 러시아의 호수에서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미 돈독함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은 그들의 우정이 오랜 동안 이어지기 바란다. 이미 나와는 내적친밀감이 형성되어 버린 어몽과 그의 친구들이 일할 기회를 얻어 한국에 오게 된다면, 우연히 길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라도 한번 나누고 싶다. 삶이 풍족하진 않지만 마음이 넉넉한 우즈베키스탄 아저씨들의 꽃길을 응원한다.

태그:#여행, #우즈베키스탄, #어쩌면 인류애, #곽튜브, #홍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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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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