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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며 임신중단권리 폐기해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같은 퇴보를 막기 위해, 한국에서도 '낙태죄' 폐지 후속 조치를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정 이후 3년, 길었던 공백의 시간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보장 판례 폐기 결정 다음 날인 6월25일(현지시간)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대법원(scotus)은 수치다'라고 적힌 피켓 등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전날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2022.6.26
 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보장 판례 폐기 결정 다음 날인 6월25일(현지시간)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대법원(scotus)은 수치다"라고 적힌 피켓 등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전날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2022.6.26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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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영향으로 줄줄이 취소되었던 음악 축제들이 올해 다시 돌아왔다. 영국의 유서 깊은 음악 축제인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6월 22일~26일)도 마찬가지다. 2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관객들이 모인 이 음악 축제는 그야말로 환희의 장이었지만, 동시에 분노한 뮤지션들의 성토대회이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바로 지난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 중단권을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고 낙태죄를 사실상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축제 무대에 오른 가수 빌리 아일리시와 피비 브리저스는 직접적으로 연방대법원을 난타했으며, 팝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 또한 이번 판결을 통해 여성들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며 두려움을 표했다. 켄드릭 라마는 무대에 면류관을 쓰고 등장했으며 공연의 마지막에 '여성의 권리에 신의 축복을, 그들은 당신을 재단하고 신을 재단한다'(Godspeed for women's rights, They judge you, they judge Christ)라고 외친 다음 퇴장했다.

뮤지션들 뿐이 아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마그델리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그리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각국의 정상들과 정치인들도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에서는 정춘숙·권인숙 의원, 박지현 전 위원장 등이 임신중단 관련 입법을 촉구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정춘숙, 권인숙, 박지현까지... 민주당 '낙태죄 대체입법' 속도 내나).

그야말로 전 세계가 들썩인 사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연방대법원이 뒤집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내용은 무엇이며 지금에 와서 판결을 뒤집은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판결이 미국과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우려되는 지점은 무엇일까. 이를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역사적 판결, '로 대 웨이드'... 1973년 여성 임신중단권을 인정했던 대법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과 낙태권 보호를 위해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2022.7.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과 낙태권 보호를 위해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2022.7.1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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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으로 더 익숙한 노마 맥코비(Norma McCorvey)는 자신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녀가 거주하던 텍사스 주는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단은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때 맥코비는 미국에서 낙태죄 폐지 운동을 벌이던 변호사 사라 워딩턴(Sarah Weddington)과 린다 커피(Linda Coffee)를 만나게 되고, 이들은 낙태죄 위헌 여부를 확인받기 위해 연방 법원으로 사건을 가져간다. 이 사건의 피고는 댈라스 카운티의 지방 검사였던 헨리 웨이드(Henry Wade)였고, 미국은 원고-피고의 이름으로 사건명을 지어 이 사건이 '로 대 웨이드' 사건으로 불리게 된다.

이는 텍사스 북부 지방 법원을 거쳐 결국 연방대법원에 다다랐고, 1973년 1월 22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다수 의견으로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인정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연방대법원 판결은 주 전역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임신중단을 금지한 텍사스의 법은 무력화 되었다. 근거가 무엇일까. 당시 연방대법원은 임신중단을 제한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원치 않았던 아이가 당사자에게 괴로운 삶과 미래를 강요할 수 있고,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부담을 주며 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고통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판결에는 이러한 사생활의 권리가 절대적이지 않으며, 국민의 건강과 '태아를 보호'하려는 주 정부의 의도와도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한계로 비판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당시 미국에서 자율적으로 임신중단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임신 뒤 3개월까지로 규정되었다(이후 3개월은 제한적 가능, 마지막 3개월은 금지).

사실상 다시 부활한 '낙태죄'... 대법원 다수 결정의 근거 살펴보니

그러나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로도, 미국의 여러 보수적인 주들은 임신중단 권리를 제한, 사실상 낙태죄를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었다. 2018년 미시시피 주는 임신 15주 이후 대부분의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고 해당 주의 유일한 임신중단 클리닉인 잭슨 여성 건강 기구는 이 법의 위헌성을 따지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사건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 이후, 이번에 정반대의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정반대의 판결에서 이들이 제시한 근거는 그야말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총체적으로 부정한 것이었다. 우선 현 대법원은, 헌법이 임신중단권을 언급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그 권리를 보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헌법에 언급되지 않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있는 건 맞지만, 그 권리란 미국의 역사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것이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또 다수 의견은 미국 수정헌법 14조가 제정된 당시, 대다수의 미국의 주들이 임신중단을 처벌하고 있었음을 덧붙였다.

이번 결정은 '과거에 누가 권리를 행사했는지에 따라 권리가 정의된다면, 내려오는 관행은 계속해서 정당화될 수 있고 새로운 집단은 한번 거부된 권리를 다시는 주장할 수 없게 된다'는 동성결혼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 사유와도 어긋나게 된다. 이 표리부동한 판결 자체만으로 미국이 들썩거렸지만, 불똥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도 튀는 모양새다.

이번 판결에서 다수 의견, 즉 임신중단시 처벌에 뜻을 함께했던 보수 성향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이 개별 의견을 통해 "피임, 성소수자, 동성결혼 등에 관한 기존 대법원 판례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이 판결들 역시 로 대 웨이드 판결과 같이 미국 수정헌법 14조를 주된 근거로 하여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하원이 토마스 대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이 등장했고, 여기에 동의한 이는 11일 기준 118만명을 넘어섰다. 

미국의 상황에 절망감과 두려움이 드는 이유

지금까지 우리는 로 대 웨이드 판결로 미국에서 임신중단권이 헌법적 권리로 인정된 과정과 2022년 돕스 대 잭슨 여성 건강 기구 판결로 이 권리가 뒤집어진 과정을 살펴보았다. 미국 가족계획연맹에 따르면, 이번 판결로 3600만 명의 미국 국민이 영향을 받고 임신중단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 예견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판결과 동시에 법적 효력이 발생하도록 임신중단을 처벌하는 법을 이미 통과시켜 놓은 주도 여럿이다(이들은 일명 '방아쇠 법'으로 불린다).

이미 오하이오 주에서는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을 중단하고자 했던 여성이 임신 6주가 지났다는 이유로 거부 당하고, 결국 다른 주로 옮겨서 시술을 진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크리스티 노엠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는 CNN 인터뷰에서 '성폭력은 비극적인 사건이긴 하지만, 모든 생명은 소중하므로 또다른 비극인 임신중단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는 이 발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얘기인지 소개하고자 그의 발언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 바로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미국 주의 수장 자리에 앉아, 거기에 사는 수천만 명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게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심각한 현실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한편,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보수 대 진보 대법관 수가 6 대 3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직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원 판사들을 세 명이나 임명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보수 우위로 완전히 기울게 됐는데,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인지라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잡는가와 무관하게 지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국은 어떤가. 비슷한 맥락에서 현재 한국 대통령은 보수 국민의힘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며, 그의 임기동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또한 대거 교체될 예정이다. 일단 윤석열 정부가 임명하게 될 첫 대법관 후보를 위한 후보추천위원회는 당장 오는 14일 열린다.

비록 이들의 임기가 미국처럼 종신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이전 보수 정권에서 재판관들의 임기가 사회에 어떤 식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미 겪어온 바 있다. 미국의 상황을 보면서, 절망감과 동시에 두려움이 다가오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오전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오전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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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로 대 웨이드, #낙태죄, #임신중단, #여성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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