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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을 할퀴고 지나간 코로나19라는 재난이자 참상, 그 2년의 이야기를 여기 증빙한다. 국가와 행정, 방역의 시야 말고 '사람의 시선'으로 지역이 겪은 아픔을 올곧게 들춰본다. 사회적 거리두기(이하 거리두기)가 닫아버린 이웃의 대문을 비집고 들어가 안부를 살피고, 방역의 대의 앞에 밝히기 어려웠던 마을의 '옥고'를 되묻는다. 그리하여 옥천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증언을 새긴다.

'염병'보다 무서운 '혼자 겪는 삶'
 
충북 옥천을 할퀴고 지나간 코로나19라는 재난이자 참상.
 충북 옥천을 할퀴고 지나간 코로나19라는 재난이자 참상.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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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 대문을 연 적이 없다. 날이 얼음장 같아도 마당에 나와 찬 바람이나마 쐬지 않으면 답답함에 가슴이 미어진다. 담장 너머로 말소리가 새어들면, 마음이 순간 적요해진다. 잔뜩 들뜬 방송인의 목소리가 안방을 맴도는 것이 거북해 텔레비전 전원을 끄면, 죽음 같은 침묵만 마루를 휘감는다. '걸리면 죽는다'는 바이러스의 공포를 이기고 불편한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해 경로당에 가보지만, 불을 끄고 문을 잠근 건물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이윽고 눈물 한 방울이 겹주름에 매달린다.

이 잔혹한 풍경은 2년 중 겨우 하루를, 그것도 한 토막만 잘라낸 것이다. 매일매일 치러낸 지옥, 코로나19가 강타한 농촌 지역의 '평범한 하루' 말이다. 이원면 주민인 이순자(76)씨는 코로나19를 '웬수'라고 부른다. 사람 죽인다는 무서운 병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을 무너트려서다.

범유행 전에는 마을 사람끼리 경로당에 모여 전도 부쳐 먹고, 간식도 나눠주며 이야깃거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농번기에는 참여자가 줄긴 했어도, 대한노인회가 주관하는 9988 행복나누미 프로그램(이하 9988 프로그램) 등 마을 대상 복지 사업을 통해 체조와 운동을 즐기며 건강 관리에 도움을 받은 주민이 많았다.

"거리두기 풀리기 전에는 경로당이 죄다 폐쇄돼서 우리가 갈 데가 없었지. 동네 사람들까정 멀리 떨어져서 다녀야 하고, 서로 인사하기도 쉬운 일이 아녔어. 오죽하면 닫힌 줄 알고도 경로당 앞에 와서 한소금 앉아있다가 가곤 혔어. 그렇게라도 혀야 답답시런 마음이 풀리는 겨."

그렇게 2020년, 세상이 바뀌었다. 고령자에게 더욱 위험하다는 코로나19의 공포는 온 마을을 들쑤셨다. 아픈 어깨를 치료받으러 병원에 가는 날을 제외하면, 이순자씨는 거의 매일 티브이만 보며 거리두기를 버텨냈다. 어쩌다 '산보' 한 번 나와 마주친 이웃들과 멀찌감치 인사만 교환하는 삶이 2년간 지속됐다. 혹여 감염에 노출될까 봐 자녀와 손주들까지 "절대 사람들 만나지 마세요"라며 '고립'을 '당부'했다.

"한날은 경로당 앞에를 지나는데,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띄엄띄엄 마당에 앉아서 하늘만 보고 있어. 서로 가까이는 못 가고... 집에만 있기 싫어서 나와는 봤는데 갈 데가 읍써. 그러니 마당만 차지하고 멍하니 있지. 내가 그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

현리마을에서 제일 고령인 은준한(91)씨는 범유행 이후 말수가 줄었지만, '죽음'에 대한 언급은 늘었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연신 쓸어 넘기며 담담한 어조로 끝을 읊는 어조가 공허하다. 아니, 정확히는 죽는 것보다 무서운 '혼자 겪는 삶'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고독과 격리로 칠해진 삶은 곧 죽음의 이음동의어로 전락했다.

"혼자 사는 게 염병보다 무서워. 마당에서 상추나 키움서 소일거리 했어. 답답한 거야 말로 다 할 수가 없어. 밥 안치고 밖에 나와서 어귀만 한바쿠 돌고 들어가. 집에 와서 한숨만 폭폭 쉬다가 그냥 마스크 벗고 속 시원히 숨이나 쉬다 죽으면 좋겄다 그래. 차라리 철창이라도 있으면 포기라도 허지, 철창도 없는 감옥살이여. 어쩔 땐 사람 말소리 들리면 지팡이 짚고 따라가기도 했어. 사람 사는 꼴이 아녀."

은준한씨와 50년 넘게 언니 동생 하며 지기로 지낸 강진구(90)씨도 한숨을 감추지 못했다. 21세에 시집와 일평생을 이원 사람으로 살았지만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고. 그는 "죽을 때는 사람 얼굴 들이봄서 가야 마무리가 좋은 거여"라고 짧은 소회만 밝히고는 '염병'에 대한 기억을 차마 더 말하지 못했다. 이런 애달픈 사연들은 코로나19가 얼마나 지역의 삶을 파괴했는지 알 수 있는 또렷한 지표다.

명맥 끊길 뻔한 농촌의 공동체 역량
 
코로나19 시기, 마을의 사랑방인 경로당의 문은 굳게 닫혔다.
 코로나19 시기, 마을의 사랑방인 경로당의 문은 굳게 닫혔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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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축적한 마을의 '공동체 역량'도 초기화 직전까지 몰리고 말았다. 농촌 지역은 농사철이 오면 주민끼리 작물별 특성과 토질 정보, 파종 시기와 병충해 예방법 등 농사 비결을 공유하고 보완하는 정보망을 형성하는데, 거리두기로 인해 경로당 등 마을의 '사랑방'이 닫히고 모임을 제한당하면서 모든 교류가 단절된 것이다.

노동력 부족도 큰 문제였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농촌 속에서 모내기 품앗이도 불가능하고, 작목에 대한 조언, 구인 정보도 나누지 못하니 농사 규모를 줄이거나 포기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매일 인사하던 이웃이 안 보이면 혹시나 돌아가신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불쑥 솟구쳤지. 누가 아프거나 위독하다고 해도 병문안도 못 가. 말 그대로 마을이 집집마다 격리된 거여. 농번기에는 서로 농기계를 빌려 쓰고 인력 정보도 교환했는데, 코로나 터지면서는 아예 다 멈춰버렸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혼자 다 해결하려고 하니 어디 쉬운가."

이원면에서 지역노인봉사대 봉사대장으로 오래 활동한 곽상헌(84)씨의 증언이다. 관광버스를 빌려 단체 소풍을 다닌 추억도, 농기구 빌려준 값으로 막걸리 한 상 거하게 대접하는 마음 씀씀이도 사치가 됐다. 고향 사람끼리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해 마을을 지키고 돌보며 공동체를 유지해왔지만, 코로나19는 대를 이어 집적한 그 명맥을 단 2년 만에 끊을 뻔했다.

"거리두기 해제 후로 지금 지역노인봉사대 활동을 3번째 나왔는데, '하루하루 무탈하셨소!' 하고 안부를 묻게 돼. 맨날 보던 얼굴 또 보는데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사람은 이렇게 서로 얽혀서 살아야 하는데, 그동안은 각자 살아남아야 했어. 우리 마을은 선배 주민들이 지역노인봉사대를 오래전에 시작해서 애향심이 남다르거든. 그래서 이렇게 다시 뭉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지난 1998년 각 마을 노인회장들이 뭉쳐 처음 결성한 이원면 지역노인봉사대는 무려 24년간 쓰레기 줍기 같은 환경 정비는 물론 묘목축제 등 지역의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봉사해왔다. 육노수(82)씨는 이토록 강인한 뿌리를 지닌 공동체가 아니었다면 2년간의 단절을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말한다.
 
"거리두기 해제 후로 지금 지역노인봉사대 활동을 3번째 나왔는데, '하루하루 무탈하셨소!' 하고 안부를 묻게 돼. 맨날 보던 얼굴 또 보는데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거리두기 해제 후로 지금 지역노인봉사대 활동을 3번째 나왔는데, "하루하루 무탈하셨소!" 하고 안부를 묻게 돼. 맨날 보던 얼굴 또 보는데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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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마을 사정은 어떨까. 청성면 주민인 박희순(93)씨는 '비상벨(마을 무선 방송 시스템)'에 대한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농촌 마을 방송 편의를 위해 각 가정에 설치된 무선 방송 시스템에는 '비상벨' 기능도 있는데, 주민이 뇌출혈 등 의료 응급 상황이나 주거 침입 등 방범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 신속히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두고 "기냥 눌러버릴겨"라며 소리친 이웃을 봤다는 것. 벨을 누르기만 하면 '사람'이 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고립을 견디다 못한 주민이 '저것만 누르면...' 하는 마음까지 품었단 말이다.

단순히 사람이 그리워서, 외로워서가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들은 경로당에서 해결하던 식사와 목욕마저 차단되는 바람에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였다. 다행히 이웃들이 반찬을 놓고 가거나, 대문 밖에서라도 안부를 묻고 필요한 것을 나눠줬기에 고령 주민들이 견딜 수 있었다. 그물망처럼 복지 제도를 깔아도 결국 마을 공동체만큼 이웃을 온전히 돌보고 지킬 방법은 없음을 증명한 셈이다.

올 초에는 오미크론 변이가 급속히 확산해 마을 공동체의 돌봄 기능마저 한계에 내몰렸다. 감염 위험이 커지니 외부 활동 자체를 꺼리게 되고, 확진자·자가 격리자에 대한 관리 자원이 한계에 이르러 마을 공동체의 자발적 돌봄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발생해서다. 만약 거리두기를 해제하지 않았다면 과연 얼마나 큰 피해를 마주해야 했을지 두려운 대목이다.

꽉 닫힌 세상에 다시 웃음의 물꼬를 트다
 
충북 옥천군은 '찾아가는 노인대학'을 다시 운영하고 있으며, 노인장애인복지관이 진행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역시 방역 걱정을 한시름 놓고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충북 옥천군은 "찾아가는 노인대학"을 다시 운영하고 있으며, 노인장애인복지관이 진행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역시 방역 걱정을 한시름 놓고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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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해제에 따라 마을의 구심점인 경로당과 마을회관 등 공공시설이 재개방되며 지역의 '감옥살이'도 마침내 끝이 났다. 9988 프로그램을 비롯해 여러 복지·문화 서비스도 재개됐다. 옥천군은 '찾아가는 노인대학'을 다시 운영하고 있으며, 노인장애인복지관이 진행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역시 방역 걱정을 한시름 놓고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17일, 이원면 현리경로당에서 열린 9988 프로그램 현장. 삼삼오오 모여든 마을 주민들은 함박웃음을 머금고 강사가 진행하는 체조에 푹 빠져있었다. 이동식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트로트에 몸을 맡기고 들썩들썩 율동을 풀어내는 모습이 제법 익숙한 모양새다. 큰 소리로 강사가 구령을 제창하면, 합창하듯 '얼씨구'를 소리치는 주민들 표정 속에서 구김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실로 오랜만에 경로당으로 돌아온 웃음소리가 청명했다.

"방역 상황에 따라서 9988 프로그램이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니까 마음이 심란했어요. 저는 10년 넘게 강사 활동을 하면서 얼굴을 익힌 주민들이 많은데, 정이 깊으신 분들이라 거리두기 기간 동안 정말 보고 싶고 그리웠죠. 이렇게 프로그램을 다시 열고 만남을 이어가니까 어르신들도 저도 마음을 치유하는 것 같아 좋아요."

이날 강사로 참여한 이미선씨는 범유행 동안 농촌 지역의 고립을 '세상을 닫아버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고령자일수록 고립감과 우울감 악화를 길고 짙게 겪어야 했다고. 그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지역적 편차보다는, '관계의 격차'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한다.

교통편과 공공시설이 부족한 지역이라도 친인척이 많고 이웃을 많이 사귄 주민은 소외감이 덜하고, 비교적 도시화가 진행된 읍 지역이라도 자녀가 없거나 홀로 사는 경우 사회적 접점이 부족해 '온 세상을 혼자' 견뎌내야 했다는 뜻이다. 또 주민도 주민이지만, 강사들조차 전파자가 될 수 있어 외출을 줄이고 외식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해 우울감에 시달려야 했단다.
 
이미선씨는 범유행 동안 농촌 지역의 고립을 '세상을 닫아버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미선씨는 범유행 동안 농촌 지역의 고립을 "세상을 닫아버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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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5월 18일 청성면 만명경로당에서 만난 9988 프로그램 레크리에이션(놀이나 오락을 통해 여가를 함양하는 활동) 강사 김민주씨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놨다. 그는 관계의 격차에 더해 '정보의 격차'가 상황을 악화하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스마트폰 등 IT(아이티)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주민과 그렇지 못한 주민 간의 고립감 정도가 눈에 띄게 다르다는 것. 하다못해 인터넷 모임에 참여하거나, 가족과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난다.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저희 강사들이 감염되면 여러 어르신을 전염시킬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홀로 지내는 외로움을 감당해야 했죠. 무엇보다 사람과 만날 수 없고 대화가 단절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저희도 이러니 주민들은 어땠겠어요. 이렇게 강사로 다시 나설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앞으로 주민들이 웃음을 돌려받아 행복하게 지내는 게 제 소원이에요."

범유행 동안 지역과 주민은 마치 '닫힌계'처럼 세상을 차단당하고 각자도생에 내몰렸다. 감염 예방을 위해 집합시설인 경로당과 마을회관을 닫아버린 것을 이해하면서도, 주민들은 자신들이 '방치'당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등 행정이 비대면 복지 활동을 펼치며 대안을 모색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실태는 지역에 고립과 우울의 흉터를 남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흉이 사라질지 예상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누군가는 이들의 속마음을 듣고, 공감하고, 기록해 남겨야 한다는 것. 미래에 범유행이나 기후 재난 등 위기가 또 찾아온다면, 지역은 이를 버텨낼 체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기록한 생생한 아픔들이 중요하다. 이 '실패담'이야말로 우리가 올바른 처방전을 만들어내도록 돕는 임상 기록이며, 내일을 대비하는 오답 노트이기 때문이다.
 
월간 옥이네 통권 60호 (2022년 6월호)
글·사진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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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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