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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광주 교육감 당선인
 이정선 광주 교육감 당선인
ⓒ 이정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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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 지금의 상황을 이보다 더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단어는 없을 듯하다. 전임자의 대표적인 정책을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한 후임자의 호기로운 결단이 놀랍기만 하다. 오해할까 싶어 덧붙이는데,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이정선 광주광역시 교육감 당선자 이야기다.

지난 23일 교육감직 인수위원회에서 관내 고등학교에서 실시해온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하교 지침(수요일 지침)'을 폐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학교마다 하교 시간을 학교장의 재량에 맡긴다는 뜻이다. 인수위는 전가의 보도처럼 학력 신장을 위한 조치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전임 교육감은 지난 2017년부터 관내 모든 고등학교에 매주 수요일에는 방과 후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야자)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학업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나름의 공교육 혁신 방안이었다. 그 의미를 담아 '광주교육 공동체의 날'로 명명했다.

이를 위반하는 학교에 행정, 재정적 불이익을 주겠다며 엄포까지 놨으니, 사실상 강제 지침이었다. 수능을 앞둔 고3의 방과 후 수업 등은 공공연히 행해지긴 했어도 시나브로 정착되어 매주 수요일은 '반공일'로 여겨졌다. 이제 학사일정에서 주중이란 수요일이 빠진 '월화목금'이다.

안타깝게도, 교사들에게 '반공일'로 여겨졌을지언정 아이들에게 그 혜택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저 학습 공간이 학교에서 학원으로, 교실에서 독서실로 옮겨졌을 뿐이다. 학벌 구조와 대입 경쟁이 온존한 상황에서 교육청이 쉬란다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아이는 없다.

오죽하면, 길거리에 '월화목금은 학교에서, 수토일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날'이라는 현수막이 공공연히 나붙었을까. 학교에서 일찍 파하면 그만큼 쉬게 될 것이라는 인식부터가 패착이었다. 대입 전형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쥐고 흔드는 현실에 눈감은 순진한 발상이었다.

대입 전형은 갈수록 복잡해졌고, 명문대를 향한 경쟁은 나날이 살벌해졌다. 이 와중에 매주 수요일 하루는 쉬라는 지침은 아이들에게조차 세상 물정 모르는 한가한 소리로 치부됐다. 교육감의 권능으로 학벌 구조와 맞서 싸우지는 못할망정 고작 고생한다며 어깨 토닥이는 게 전부냐며 조롱하기도 했다.

어느덧 매주 수요일은 '학교만 빨리 끝나는 날'로 각인됐다. 지금 수요일에 학원이나 독서실을 다니지 않는 아이는 거의 없다. 학원의 대목 날, 교사들만 노난 날 등 온갖 비난이 넘쳐나고, 심지어 사교육 시장을 배려한 '공교육의 빅픽처'라는 조롱마저 나오는 형국이 됐다.

'수요일 지침'의 철학
 
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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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지침'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이렇듯 팽배하니, 인수위의 결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시행 취지에 걸맞도록 어떻게든 지침을 점검하고 보완할 필요는 있었다. 사교육의 창궐을 막기 위해 당장 학교 안팎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계할 방안부터 꼼꼼하게 마련됐어야 옳다.

그간 드러난 문제점을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이야 박수받을 일이다. 다만,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는 걸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수위는 학력 신장을 위해서 '수요일 지침'을 폐기한다고 했지만, 애초 학생들의 선택권과 학업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로 시행한 것이다.

'수요일 지침'은 이른바 '별 보기 운동'식의 맹목적인 학습을 통해 향상된 학력이 과연 진짜 실력이냐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정책이다. 또한, 학력보다 아이들의 자발성과 건강권이 우선이라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모든 걸 대학 진학 이후로 유예하는 우리 교육의 적폐를 해소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모름지기 교육자라면 '수요일 지침'의 실효성을 질타할 수는 있어도 결코 취지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하물며 지역사회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이라면, 올곧고 미래지향적인 교육 철학을 정책으로 구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철 지난 학력 신장 타령만 되뇌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학력 신장, 곧, 관내 고등학교의 수능 성적만 올릴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걸까. 인수위 관계자의 설명을 듣노라니, 30여 년 전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야자는 자정을 넘겨서까지 '자발적으로' 이뤄졌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업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수요일 저녁에도 학교에서 자율학습이든 방과 후 수업이든 어떤 형태로든 학생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의견이 있어 매주 수요일 하교 시간을 학교장 재량에 맡기는 방안으로 의견이 모였다."
 

말뜻 그대로 해석해보자. 우선, 수요일에 일찍 하교해서 학업 리듬이 끊긴다는 걸 문제 삼았다. 그런 논리라면, 학업 리듬이 계속 이어지도록 '월화수목금금금' 공부시키는 게 맞다. 하긴 아이들 대다수가 주말을 학원과 독서실에서 보내고 있으니 리듬이 끊긴다는 건 그의 기우다.

'어떤 형태로든'이라는 조건절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반강제적'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까닭이다. '학교장 재량에 맡긴다'는 건, 교육청의 지침을 따르되 책임은 학교에서 지라는 뜻이다. 각 학교장의 판단 기준은 늘 인근 다른 학교장의 판단이다. 같은 목소리를 내고 함께 묻어가는 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전국 고등학교의 야자 시간이 밤 10시까지인 것도 그래서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광주광역시 관내 모든 고등학교의 '월화목금' 시스템은 5년 전 '월화수목금'으로 환원된다. 일부 학교에서 퇴행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겠지만, 학력 신장이라는 '대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교육은 사라지고 학력만 남은 씁쓸한 세태

우리 사회에서 학력 신장이라는 네 글자는 학교 교육의 모든 걸 판단하고 결정하는 '도깨비방망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 나온 후보들 모두 앞다퉈 '실력 광주'를 공약으로 내건 이유다. 인수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기숙사 활용도 학교장 재량이며, 학교마다 스터디 카페 형식의 자습실을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기숙사는 원거리 통학 학생을 배려하기 위한 시설이라기보다 학교마다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특별반'처럼 활용돼왔다.

아울러 스터디 카페의 확충은 아이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공공기관으로서 학교 공간의 활용도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몽니 부릴 일은 분명 아니다. 다만, 학교에서의 일과가 길어지는 만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교육청은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고쳐 부르기도 했다. 학교의 역할 못지않게 가정에서의 교육도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려는 취지였다. 이 또한 허사가 됐지만, '수요일 지침'이 폐기되면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는 셈이다.

인수위의 마지막 일성은 교사들의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었다. 학력 신장에 '올인'하겠다고 밝힌 마당이니 교사들의 역량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수능 성적 향상을 위한 수업 능력, 그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수능 성적을 올리려면 기출문제의 반복 풀이 외엔 다른 묘책은 없다.

언론에서 광주는 연임 제한으로 진보 교육감이 물러나고 다른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며 호들갑 떨었지만, 학교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교육은 사라지고 학력만 남은' 세태 속에서 진보 교육감도 무릎을 꿇었다는 좌절감이 팽배해있다.

'역사가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반복된다'는데, 학력 신장에 '올인'하겠다는 지금은 희극의 시대일까, 비극의 시대일까.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테지만, 자꾸만 10여 년 전인 이명박 정부 때의 모습이 겹쳐진다. '퇴행' 말고 다른 단어가 당최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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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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