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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뜨겁다. 경복궁역에서 나와 청운동사무소 방향으로 가는 길은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자 나오는 보도블록은 중간에 지하철 환기구가 떡하니 자리차지를 하고 있어 더 좁게 느껴진다. 오늘따라 그 길을 따라 걸으려니 도착지까지 길이 더 멀게만 보인다.

지난 3일 갤러리 류가헌으로 향하는 길, 여권법 개선을 위한 '세계 분쟁지역' 사진전 <금지된 현장> 심포지엄을 찾았다. 시작 시간을 넘겨 도착하니 토론이 한창이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분쟁지역을 사진에 담아 온 작가, 기자가 모여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취재제한을 비롯해 그간 '여권법'이 규정하는 취재허가절차가 실질적으로 언론자유를 통제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나눴다. 성명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여권 사용 허가 제도를 개정하여 여행금지 국가의 취재 및 보도를 보장하라!'는 제목 아래 "여권법 제17조로 인한 지나친 제한과 절차가 사실상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므로 여행금지 국가에 대한 언론의 취재와 보도를 보장해야한다."

이에 대한 반응인지 며칠 후 외교부가 취재 목적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한 기존 방침을 변경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취재지역을 확대하고 방문기간과 인원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변화라고 보기에는 허용 범위를 약간 늘린 수준이었다. 또 복잡한 서류와 허가절차를 거쳐야하는 문제 등은 여전히 남아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내내 전장(戰場)에 가지 못하는 문제가 전쟁보도의 총체적 원인인 것처럼 비쳐지는 모습이 다소 불편했다. 그것이 해결해야하는 과제임은 분명하나 현재 한국 언론의 부실하고 무능한 전쟁보도는 단지 거기에서만 이유를 찾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전반적으로 우리 언론이 갖고 있는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취재보도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포함해 저널리즘의 실종을 목격하는 일은 분초 단위로 뉴스를 보는 시대에 시시때때로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정처 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을 볼 땐 심지어 이것이 종이에 찍혀 나오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전쟁보도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뉴스를 생산하는 이들 사이에 적어도 책임을 통감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평화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전쟁 보도에 관심이 많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의 현장들, 그곳의 상황을 주시하고 평화의 눈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연대할 것인지 고민한다. 그래서 전쟁 보도를 주의 깊게 본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전쟁 보도는 이러한 관심과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보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외신이나 현지 SNS를 받아쓰는 상황에서 팩트 체크,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 사례는 부지기수고, 현장에서 취재할 수 없는 다양한 분석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제시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알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우리 언론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전쟁보도라는 것이 누군가를 편드는 일에만 매몰되어선 안 될 텐데, 전적으로 서방 언론을 받아쓰기하며 우리의 관점은 실종되고 없다. 전쟁의 이면을 살피는 일에 대해서도 게으르다. 1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할 때의 보도는 그저 긴박했던 철수장면을 보여주기에 바빴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오사마빈라덴과 대량인명살상무기를 찾으러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미국, 전쟁은 끝났지만 20여 년 동안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깊이 있게 살피는 기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한국으로 온 아프간 사람들을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로 부르는 것에 대해 질문할 줄도 몰랐다. 한국 언론은 그들을 '특별기여자'로 부름으로써 '난민'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재생산했다. 한국 언론은 파괴되고 무너져 내린 전장(戰場) 넘어 종합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을 제시하지 못했고, 전쟁이 낳은 비극에는 관심 갖지 않았다.

한국이 최초로 해외에 특파원을 보낸 것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다. 1965년 비둘기부대와 함께 종군기자 13명이 전쟁취재를 위해 월남에 간 것이 시작이다. 국가와 군의 주도아래 월남으로 간 기자들은 파병을 홍보하는 전쟁 나팔수로 역할 했다. 당시 열악한 취재환경과 보도지침이라는 통제 속에 소영웅주의, 전과중심의 보도, 정부의 조치나 발표 등이 보도의 주를 이루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미군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 500여명이 희생된 밀라이 학살은 미국의 종군기자 세이모어 허쉬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촬영해 공개한 사진들은 지금도 밀라이박물관과 호치민시전쟁증적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한 기자의 빛나는 특종은 그의 노력과 더불어 그것을 가능케 한 여러 조건들의 창조물이다. 비록 정부의 보도통제 아래 한국의 전쟁보도가 시작되었지만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적어도 '보도지침'과 같은 것들은 없어졌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언론에 세이모어 허쉬와 같은 이의 활약이나 보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나아간 것일까? 혹은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한국 언론이 지금처럼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고 기존의 전쟁 보도 관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50년 후에도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지 않을까?

[참고자료]
<베트남전쟁과 평화교육>, 한베평화재단 창립 5주년 기념 웨비나, 2021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로 드러난 외신 기사의 문제점, 임영호, 신문과방송 2022년 4월호https://www.kpf.or.kr/front/news/articleDetail/592562.do

<우크라이나 전쟁과 언론보도> 세미나, 한국언론진흥재단, 2022.4.27.
'우크라 2박3일 취재' 제한 변경… 2주간 11개주 취재 가능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4222

우크라이나-러시아 상반된 전쟁범죄 주장에 대한 언론의 고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3306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석미화님은 평화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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