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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6월을 지나고 있을 뿐인데, 도시는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모습을 하고 이글거린다. 6월의 날씨라고 하기엔 상식의 수준을 넘어선 지도 오래고. 살고 있는 이곳 대구가 다른 도시에서 느껴지는 열기와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더위에 특화돼 있다고는 하나, 매년 다가오는 습한 기운의 더위는 한더위가 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도 미리 진을 빼기에 충분하다.

그동안에 쌓인 경험치로 인해 다가올 더위를 예측하는 일은 사실 공포에 가까운 수준이다. 혹자는 '에이, 뭐 그렇게까지!'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으나 여름이 이어지는 한 며칠 이곳을 생활 기반으로 삼는 모험을 해 본다면, 그런 말은 '쑥~' 입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짙어진 초록의 나뭇잎들이 보여주는 청량함과 가끔 그들을 흔들고 가는 고마운 새벽의 바람 한 줄기라도 없었으면 어쩔까 싶다.

이렇게 다시 더위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나는 입맛을 잃어버리곤 한다. 더위에 입맛이 도는 사람이 세상 어디 있겠냐 싶지마는 그중에서도 나는 조금 더 심한 축에 속한다. 남들은 더위를 이기기 위해 보양식이라도 챙겨 먹어가며 더위와 맞설 준비를 하지만 그마저도 귀찮거나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저 찬 물에 밥 한술 말아,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억지로 넘기는 게 다반사다. 요즘도 이럴 지경이니 가뜩이나 입이 짧고 병약했던 어린 시절은 말하지 않아도 여름이면 먹는 것과의 전쟁이었음이 분명하지 않았을까.

모시적삼에서 시작되는 여름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토박이로서 느끼는 체감 더위는 어린 시절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엔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조차 제대로 있는 집이 드물었다. 더위를 식혀준다는 냉감의 원단으로 지어진 옷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시절이었다. 그저 더위가 다가오면 더위를 안고, 또 반대로 추위가 다가오면 추위를 견뎌내며 매일을 보낼 뿐이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추위보다는 더위가 좀 더 낫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지역 나름 아닐까 싶다. 이글거리는 한낮의 태양이 분지를 한껏 달궈서 가둬버리는 이곳의 더위는, 한밤이 되어도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고스란히 남아 있곤 한다. 그래서 언제나 도시는 찜통더위란 바로 이런 것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매일 사람들을 끓는 가마솥으로 몰아넣곤 했었다. 사정이 이러니 애초에 입맛이란 게 살아날 리 만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내 엄마에겐 '사람은 먹는 힘으로 산다'라는 굳센 믿음이 있었다. 돌아가시기 두 해 전부터 마지막을 예감이라도 한 듯, 모든 음식이 쓰다며 먹을 것을 물리기 직전까지 엄마는 도대체 입맛이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진심 궁금해 하셨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것은 너무나 많기에 세상 끝나는 날까지 열심히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신념 아닌 신념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도 했고. 하여 아무리 가혹한 여름이라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우물물을 길어 올려 등목을 몇 번이고 하게 되거나, 엄마가 서랍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모시 적삼을 꺼내 입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진짜 여름은 시작된다. 여름을 이겨낸다거나 맞서 싸우기보다는 순응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이라는 걸 일찌감치 간파한 엄마에게 여름 메뉴는 몇 가지로 간추려져 있었다.

끼니는 그저 때우고 지나가기만 해도 고맙고 충분한 시절을 살면서도 먹거리를 절대 허투루 장만하지 않았던 엄마였다. 여름을 슬기롭게 받아들이면서도 최대한 훌훌 잘 넘어갈 수 있는 음식으로 '잔치국수'와 '상추 쌈밥', '오이 미역 냉국'을 정해 놓고 번갈아 가며 이 음식들을 상에 올리곤 하셨다.

"엄마, 점심에 또 건진국수(잔치국수)가? 나는 이제 이거 못 묵겠다. 국물에서 멸치 비린내 난다."
"아이고 야이야, 여름에는 이만한기 없다, 국물이 싫으마는 국수만 건지무라(건져 먹어라). 김치 볶았는 거 하고 해가... 훌훌 넘기라."


엄마가 잔치국수 만드는 법
 
잔치국수
 잔치국수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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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는 우리 지역에선 건진 국수(사실 오리지널은 콩가루가 섞인 칼국수 면으로 만든다)라 불리기도 한다. 서민음식의 대표주자라고만 알았던, 그래서 왠지 먹고 있으면 가난한 가족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꺼리게 됐던 음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국수가 실은 혼례를 치르고 잔치를 하게 되는 날 사람들을 귀히 대접하던 음식이어서 '잔치국수'라고 불린다는 건 고등학교 무렵에나 알게 됐다.

계란지단과 볶은 호박과 버섯, 그리고 가늘고 예쁘게 썬 오이 채에 화룡점정으로 구운 김가루까지 고명으로 올린 그야말로 잔치에 걸맞은 '고급진' 잔치국수와는 달리, 엄마의 잔치국수는 사실 없던 식욕을 불러올 만큼 그다지 볼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식 잔치국수는 양은솥에서 삶아 찬물에 헹궈 건져진 국수를 붉은 플라스틱 소쿠리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는 것이 첫 스텝이다. 시장 얼음집에서 사 온 큰 얼음이 띄워진 대야에서 식힌 진한 멸치 육수와 더워진 날씨에 급격히 신 막김치와 둥근 호박을 들기름에 볶아서 고명으로 준비하면 이 성찬의 차림은 완성된다.

스테인리스 냉면 그릇마다 국수를 투박한 손으로 일인분씩 돌돌 말아 담은 다음 차가워진 육수를 붓고 세상 간단한 고명을 올리면 한 끼의 식사가 마련되는 거다. 아, 물론 숙성된 집 간장에 매운 고추를 썰어 넣고 고춧가루, 참기름, 그리고 마늘과 통깨를 듬뿍 넣어 만든 양념장도 빠지면 섭섭하다.

가끔 재수가 좋은 날이면 향이 좋은 오이나 무짠지를 썰어 올린 국수도 맛볼 수 있었다. 이렇게 간단한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엄마가 흘린 땀의 무게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극한의 더위에 불 앞에서 국수를 삶고 고명을 볶느라 벌게진 엄마의 얼굴과, 국수를 삶을 때마다 몇 개씩 더 솟아나는 쓰라린 땀띠들을 왜 나는 눈치조차 채지 못했을까. 그저 진한 멸치 국물의 비린내가 싫다고 투정을 부리고, 매일 국수만 먹는다고 아우성을 했던 철 없던 나를 깨끗이 지워버릴 수는 없을까.

어쩌면 엄마의 '잔치국수'는 매일이 '잔치' 같기를 바라며 마련했던 성스러운 의식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쌀은 귀하고 그나마 국수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기에 당신과 삼 남매가 굶지 않고 여름을 지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셨을지도. 혹은 입이 짧아 여름이면 더욱 눈이 퀭~해지는 자식들을 위한 당신만의 음식 처방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든 당신의 '잔치국수'는 옳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여전히 차게 식힌 진한 멸치 육수는 기호에 맞지 않지만, 여름이면 소면을 삶아 건져 낸 다음 따뜻한 멸치 육수를 부어 먹음직하게 담아낸 '잔치국수'를 자주 해 먹게 된다. 엄마의 소박했던 고명과는 달리 버섯에, 계란지단에, 오이는 물론이고 가끔은 소고기까지 볶아서 맛은 물론, 제대로 멋까지 낸 '잔치국수'인데,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아이도 이 '잔치국수'는 비리다며, 기왕 국수를 해 줄 거면 칼국수를 해달라는 말로 음식 취향을 드러내곤 한다.

'잔치'는 없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잔치국수'를 마련하며 당신이 기원했을 '여름의 무사안녕'을 잊지 못하고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소면을 사다 쟁여 놓고, 한 찜통씩 멸치 육수를 끓여 냉동실에 얼리는 나는 어김없이 엄마 딸이다.

이렇게 다시 여름이 왔고, 없던 식욕까지 돌게 하며 후루룩후루룩 국수를 맛있게도 넘기던 당신을 위해 할 수만 있다면 그 여름날들의 건진 국수보다 업그레이드된 '잔치국수' 한 그릇, 자랑하며 대접하고 싶다. 그러나 당신은 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멀리 계시고, 추억은 이토록 자꾸 선명해지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까.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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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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