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개봉 10주년 기념 상영회를 앞두고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이 기고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용산 시대를 걷다

용산의 초고가 아파트가 최근 135억의 신고가를 기록했다고 한다. 요즘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용산지역을 임장하고 왔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자주 올라온다. 권력이 '용산 시대'의 문을 열었고, '한국판 센트럴파크'라는 청사진을 제공했다. 바야흐로 용산이 부동산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용산의 화려한 마천루 빌딩과 한국판 센트럴파크라는 미래를 상상하며 부동산의 욕망을 따라 걷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요즘 '용산 다크투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과 함께 용산의 과거와 현재의 어두운 길을 걷고 있다.

민자역사 용산역 광장을 출발해, 100억이 넘는 집이 거래되는 용산의 다른 한쪽의 홈리스들의 집 아닌 집을 지나고 용산역 텐트촌을 지나면 10년 전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사업'이라 칭송하던 투기 개발의 신기루가 무너진 용산정비창 부지(옛 국제업무지구)가 나온다.

용산정비창 부지를 한 바퀴 돌아 옛 철길마을 풍경을 간직한 땡땡거리를 지나면, 2009년 도시개발과 국가폭력으로 여섯 명이 사망한 용산참사 현장에 도착한다. 철거민들이 망루를 세워 저항하다 사망한 남일당 건물이 사라진 그 현장은 작은 공원 하나 없는데도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 스퀘어'라는 이름의 고층 주상복합 단지로 변모해 있다. 용산 시대가 부추기는 한국판 센트럴파크가 참사의 흔적을 가리는 이름으로 구현돼 있는 것이다. 
 
 다큐 <두 개의 문> 스틸 이미지.

다큐 <두 개의 문> 스틸 이미지. ⓒ 시네마 달

 
국가폭력의 감춰진 민낯

오는 2022년 6월 24일, 참사 현장 남일당 터가 바라다보이는 용산역 광장에서 용산참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다큐 <두 개의 문> 야외 상영회가 열린다. 개봉 1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 상영회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용산 시대의 문을 열어가야 할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두 개의 문>은 10년 전 '당신을 이 사건의 증인으로 소환합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개봉했다. 당시 독립 다큐의 극장 개봉이 쉽지 않았기에, 개봉 전 842명의 시민이 배급위원이 되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극장 문을 열었다.

<두 개의 문> 배급 운동은 이제라도 역사의 배심원이자 증인이 되어 달라고 말하는 간곡한 호소였다. 무거운 초대장을 받아든 관객들은 매진 행렬로 개봉관의 숫자가 늘어나게 했고, SNS에 관람평을 올리며 흥행을 견인했다. 지역마다 관객들이 극장을 움직이는 대관상영회와 단체관람이 이어졌고, 관객이었던 시민들은 증인으로 참사 현장을 방문해 국화꽃을 두고 가고, 촛불을 밝히기도 했다.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감독뿐 아니라, 용산참사 유가족들도 전국 곳곳의 극장을 찾았다. 잊혀가던 용산참사를 다시 사회적 의제로 각인시켰던 <두 개의 문> 홍보에 발 벗고 나섰다. 개발 지역의 철거민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며 <두 개의 문> 포스터를 방송차에 빼곡히 붙여서 곳곳을 돌며 홍보하기도 했다. 
 
 다큐 <두 개의 문> 스틸 이미지.

다큐 <두 개의 문> 스틸 이미지. ⓒ 시네마 달

 
 
 다큐 <두 개의 문> 스틸 이미지.

다큐 <두 개의 문> 스틸 이미지. ⓒ 시네마 달

 
그런데 <두 개의 문>에는 용산참사 유가족들이나 철거민들이 나오지 않았다. 중국집 사장님과 호프집 아저씨, 도서 대여점 아줌마가 왜 망루에 올라야 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찰특공대원들의 시선에 초점을 맞춘다. 법정에서 진술하는 특공대원들의 떨림, 그날을 '생지옥'이라고 증언하는 그들의 공포. 누군가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숨 막히는 진압 작전의 실상을 통해, 특공대원들마저도 생지옥으로 밀어 넣은 국가폭력의 민낯을 보여준다.

철거민들은 영화에서조차 등장하지 못하지만 영화는 역설적으로 그들의 숨막히던 순간들을 보게 한다.

망루를 짓는 것을 돕고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려다 경찰과 용역에 의해 발이 묶인 연대 지역 철거민들의 속 타는 시간. 경찰과 용역이 합동으로 쏘는 물대포에 흠뻑 젖어 얼어붙은 손발로 버틴 까마득한 어둠과 추위의 시간. 그 새벽 경찰특공대를 실은 컨테이너가 크레인으로 올려지고 건물 내부로 진입한 경찰들이 옥상 문을 부수기 위해 연신 해머를 두드려대던 공포의 시간.

"며칠 용산에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발을 동동 그루던 시간. 숨죽인 채 남일당 옆 레아호프에 숨어 긴 밤을 지새우며 제발 아버지와 남편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던 시간. 경찰특공대의 공포 너머에 있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철거민들의 공포와 가족들의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떨림의 시간.

도시의 화려함에 숨겨진 우리들의 이야기를 똑똑히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대의 증인으로 소환합니다
 
 다큐 <두 개의 문> 스틸 이미지.

다큐 <두 개의 문> 스틸 이미지. ⓒ 시네마 달

 
이제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도 14년이 지났고 다큐 <두 개의 문>이 개봉한 지도 10년이 되었다. 당시의 성급하고 무리한 진압 작전을 지휘하고도 발뺌한 경찰 책임자는 여당의 2선 국회의원으로 있다. 당시 서울의 뉴타운 투기 개발을 부추겨 놓고 '사인 간의 문제'라며 용산참사 해결을 외면했던 서울시장은 '신속한 재개발·재건축'을 약속하며, 다시 서울의 시장이 됐다. 

용산참사 부실·편파 수사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는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권고를 받고도 끝내 외면했던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되어, 용산 시대의 막을 올렸다. 이들이 다시 그리는 '용산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2012년 시대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호소하며 극장 개봉했던 <두 개의 문>이 이제 용산참사 현장이 바라다 보이는 용산역 광장을 극장으로 만들어 우리를 재소환하고 있다. 권력과 자본의 '용산 시대'가 아닌, 우리의 '용산 시대' 문을 광장에서 함께 열자고, 다시 무거운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2022년 6월 24일, 당신을 이 시대의 증인으로 소환한다.
덧붙이는 글 <두 개의 문> 10주년 상영 안내 : https://forms.gle/uGuQHzYjoJGdYBoU8
용산참사 두개의 문 서울시 오세훈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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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빈곤사회연대, 주거권네트워크, 도시연구소 등에서, 주거권 관련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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