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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로 입구에 붙은 과속 방지 턱 표지판
 동네 도로 입구에 붙은 과속 방지 턱 표지판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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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댁 언니가 마을을 떠나기 하루 전날 밤이었다. 집안에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생기면서 언니는 경북 영양군으로 떠나야 했다. 한 달 전 부산댁 언니도 읍으로 이사를 가 버린 터라, 내일부터는 마을에서 집사는 나 혼자뿐일 것이다.

"일영아! 내가 과속 방지 턱을 보고 나니 이제 안심하고 떠나도 되겠다. 고생 많았어."
"고생은 언니들이 다 했죠."


과속 방지 턱이 마을의 도로에 설치된 건 담당자가 마을을 방문하고 거의 두 달이 지나서였다. 담당자와 전화를 몇 번 했지만, 계속해서 기다리라는 말만 하길래 과속 방지 턱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씨X, 그노무 데꼬바꼬(과속 방지 턱) 동네에서 한번 볼라 카는 기나, 동네에 아새끼(애기) 하나 태어나는 기나 똑같네, 똑가테. 이장이 능력이 없는 기가, 뭐꼬?"

천산댁의 말에 마을 회관에 모인 주민들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형수! 명색이 과속 방지 턱인데, 행정의 과속도 방지를 하다 보니, 좀 늦어지는 거 아니겠소. 우리 이장이 그거 땜에 맘고생이 많으니, 닦달 좀 고만하소!"

반장의 한마디에 천산댁은 혼자서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을 회의 일주일 뒤, 드디어 과속 방지 턱 작업팀이 담당자와 함께 마을에 등장했다. 담당자는 싱글벙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장님, 많이 기다리셨죠? 이게 심의가 좀 까다로워서 쉽게 설치가 안 됩니다.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아뇨. 이렇게 와 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3일에 걸친 작업으로 과속 방지 턱 설치는 끝났다. 그렇게나 오래 기다린 것치고 작업은 어찌 보면 상당히 싱겁게 보였다. 첫날은 교통 표지판을 설치했고, 둘째 날은 아스팔트로 도로에 볼록하게 과속 방지 턱을 만들었고, 셋째 날은 도로에 페인트칠을 하면서 모든 공정이 마무리됐다. 주민들 모두 과속 방지 턱을 보며 기뻐했고, 아마 길냥이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과속 방지 턱과 횡단보도 표지판
 과속 방지 턱과 횡단보도 표지판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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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원짜리 사업

'2021년 경남공익형직불제'라는 공익 실천프로그램에 우리 협동조합이 지원서를 내게 된 것은 면사무소의 권유 때문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농촌의 고령화, 인구 감소와 함께 상부상조의 정신 및 농촌 문화가 사라짐으로 농촌 공간에 대한 공익적 기능 활성화 필요'라고 설명회 공문에 적혀 있었다.

쉽게 풀어쓰자면, 경상남도에서 돈을 좀 줄 테니까, 농촌에 사람도 없으니 얼마 안 되는 주민들끼리라도 모여서 왁자지껄 뭐라도 좀 함께하라는 거였다. 지원서를 내고 선정이 되면, 300만 원을 사업비로 준다는 내용도 설명회 공문에 적혀 있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300만 원 가꼬 동네에다가 뭐를 하라는 기고? 사람들 모이서 밥 몇 번 묵으뿌믄 엄서질(없어질) 돈 아이가?"

또 욕쟁이 천산댁이었다. 300만 원이면 주민들이 모여서 밥 몇 번 먹기에는 큰 액수였다. 다들 천산댁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말없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때 반장이 입을 열었다.

"뭐 지원서 한번 내보자고. 안 그래도 마을 회관 앞 데크에 쉼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 돈으로 우리가 쉼터 하나 만들어 보자고."
"우리? 우리가 맨든다꼬? 그 우리가 누구누구고? 여서(여기에서) 누가 쉼터를 맨든다는 기고? 다 늙어빠지가꼬 오줌도 질질 새는 영감·할마시들이 뭘 맨든다는 기고?"

"아이고, 천산댁 저 형수는 맨날 모든 게 다 부정적이다. 지금 여기서 왕년에 목수를 한 사람이 몇 명인지 몰라요? 명섭이 형님하고 저기 춘길이 형님, 옛날에 목수 생활 오래 했잖아요. 그리고 저기 이장 남편인 위원장도 자기가 직접 경량 목조로 집도 지었고. 나도 손재주가 좀 있으니까 옆에서 도우면 되고."
"너거뜰이(너희들이) 모이가꼬 데크 위에다가 쉼터를 맨들믄 내 손에 장을 지지뿐다."
"이장, 간장 좀 가져와 봐라. 이 할마시 손에다 간장 붓고 끓여 버리게."


반장은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천산댁은 부리나케 마을 회관을 빠져나가며 반장에게 외쳤다.

"야이, 호X새끼야! 뭐를 할라 카믄 손모가지라도 하나 내걸고 해뿌야 지대로 되는 기라. 주둥아리만 살아가꼬 나불대는 니를 보이 차말로 한심타!"
 
2021년 11월 16일 마을 회관 입구 데크 앞에서
 2021년 11월 16일 마을 회관 입구 데크 앞에서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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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처음부터 삐걱대던 '경남공익형직불제' 신청이었지만, 우리 협동조합이 낸 마을 쉼터 조성 신청서가 운 좋게 채택됐다. 선정 소식에 가장 의욕을 불태운 사람은 반장이었다. 반장은 수시로 사업비가 들어왔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사업자로 선정돼도 사업비 입금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때부터 느긋한 성격을 자랑하던 반장의 캐릭터는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장, 일단 내 돈 3백만 원으로 먼저 이놈을 만들어놓고, 사업비 나오면 내 통장으로 넣어 주면 안 될까?"
"반장님, 말씀드렸잖아요. 면사무소에서 협동조합 법인 통장으로 사업비를 입금하면, 꼭 그 통장에서 지출해야 한다잖아요. 이게 절차가 있는 거라고요."


오랜 기다림의 부작용

반장은 마을 회관 앞 데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반장의 눈에는 데크 위에 세워진 쉼터에서 주민들이 고기도 굽고 술도 마시는 광경만 보이는 듯했다.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고기를 굽는 냄새에 중독된 반장은 현실 감각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사업비 3백만 원이 협동조합 통장으로 입금된 것은 7월 28일이었다. 300만 원은 반장을 스파르타 300명의 전사 중 하나로 만들었다. 반장은 7월 29일부터 당장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다들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풋고추도 따야 하고, 산소 벌초도 해야 하고, 밤을 수확하기 위해 밤나무 근처의 풀도 깎아야 해서 선뜻 쉼터를 만들자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쉼터 조성은 오직 반장에게만 마을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었다.

"형님은 목수 출신이잖소. 형님, 쉼터 이거 빨리 해야 된다구요. 그래야 한창 더울 때 쉼터 밑에 앉아서 고기도 굽고 술도 마시고···."
"허허, 거참. 이제부터 할 일이 억수로 많타꼬, 제일 바쁠 때 무신 소리고. 그라고 내사 마 공구리 치기 전에 거푸집 짜는 형틀 목수를 했는 기라. 뭐 나무를 짤라가꼬 쉼터 맨들고 이런 거는 금시초문이라꼬."


명섭이 아재가 형틀 목수 출신이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자 반장은 춘길이 아재를 찾아갔다. 춘길 아재는 산에서 예초기를 돌리고 있었다. 밤나무 밑에 풀이 없어야 밤을 편하게 줍기 때문에 밤농사를 짓는 농민이라면 꼭 예초기 작업을 해야 한다.

"형님. 고생이 많소. 쉼터 이거를 빨리···."
"됐다, 마! 요래 바쁠 쩍에 쉼터는 무슨 쉼터고. 고기 굽고 술 마시는 거는 딴 데서 해도 되는 거 아이가?"

"형님, 그래도 그게 운치가 다르고 술맛이 다르···."
"젠장. 운치 따지고 술맛 따지믄 밤은 누가 줍노? 니가 여 와가꼬 내 밤 주워 줄끼가?"

"아이고, 참, 형님도. 형님은 그래 목수의 자부심도 없소?"
"개 풀 잡숫는 소리 하고 앉았네. 목수의 자부심? 농사지어 봤자 돈도 안 되이 까네, 젊을 쩍에 명섭이 형님 따라 댕기믄서 노가다판 전전하믄서 돈 벌어가꼬 자식놈들 학교 보낸 거 아이가. 그래가꼬 내가 자식들 크는 거또 몬 본 기라."


목수 출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두 사람의 반응이 이 지경에 이르자, 반장은 풀이 죽어 칩거 생활에 빠졌다. 반장의 은둔 생활이 길어지자, 천산댁이 반장을 두둔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붓고 다녔다.

오죽하면 천산댁이 반장을 옹호했을까 싶다. 그 정도로 반장의 칩거는 그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쉼터 조성을 향한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농민들에게는 농사일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12월 1일 쉼터 공사를 끝내고
 12월 1일 쉼터 공사를 끝내고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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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조성 작업이 시작된 것은 가을걷이가 막바지로 접어든 11월 16일이었다. 아직 마무리할 일들이 꽤 많았지만, 다들 쉼터 만드는 걸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때쯤 반장은 쉼터에 관한 얘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하지만 반장의 공허한 눈빛과 수염이 꺼칠한 얼굴과 까칠한 말투가 주민들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두려움에 떨던 남편이 11월 15일에 경상남도에 증거 자료로 제출할 현수막을 주문했다.

그리고 11월 16일에 쉼터가 만들어질 데크 앞에 주민들이 모여서 현수막을 펼치고 증거 사진을 하나 찍었다. 다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무덤덤한 표정의 반장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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