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7 18:17최종 업데이트 23.08.2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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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며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정부는 5월 10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다음 날인 11일 여당이 된 국민의힘과 정부는 59조 4천억 원(중앙정부 36조 4천억 원, 지방교부금 23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의결하고, 13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이후 여야 합의 과정을 거쳐 5월 29일 이보다 증액된 62조 원 규모의 추경안이 국회의 승인을 받았다.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이라 한다.

또한 추경안이 국회의 승인을 받은 다음 날인 5월 30일부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최소 6백만 원에서 최대 1천만 원까지 손실지원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런 걸 두고 '일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불과 두 달 전과 딴판이기 때문이다. 이 추경은 대통령 선거 훨씬 이전부터 당시 국회와 다양한 시민단체가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나빠진다는 이유였다.

재정건전성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이 바뀌자 없던 돈이 생겼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예상하지 못했던 추가 세입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이렇게 되면 논란은 '기재부의 세수 예측 오류' 정도로 축소된다. 그럴 수도 있다 치자.

그런데 더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안철수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측이 '나라살림연구소'라는 한 민간연구소의 이상민 선임연구위원을 지난 3월 초 고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관련 기사: "안철수 후보에게 토론 제안했더니 고발장이 왔다" http://omn.kr/1ym82)

안철수 당시 대통령 후보(현 국회의원)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였다. 내막을 간략히 살펴보면 이렇다. 1월 2일 안철수 후보는 유튜브 <삼프로TV>에 출연해 국가부채 수준이 위험 수위에 달했고, 나라의 운명이 걱정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가 근거로 제시한 지표는 국가 부채 개념 'D4'이다.

안 후보는 국가 부채를 D1에서 D4로 구분하면서 "D1은 국가 채무, D2는 D1에 공공기관 부채를 더한 것, D3는 D2에 공기업 부채를 더한 것, D4는 D3에 미지급 연금 부채를 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88년이 되면 국민연금 누적 적자액이 1경7천조 원에 달할 것이고, 모두 미래세대가 상환해야 할 빚이라 강조했다.

그러자 이상민 연구위원은 D4라는 개념은 "잘못된 개념"이라며 "우리나라의 연금충당부채(정부가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액-인용자)를 따지고자 한다면 이를 D4라고 부르면 안 된다. 개념의 일관성을 지켜 '재무제표상 부채'로 표현해야 맞다"고 주장했다.

이는 안철수 후보가 D4를 "아직 미지급한, 예를 들면 연금과 같은 미지급 부채"로 정의하고, 미래 국민연금 적자까지 정부부채로 포함한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을 안철수 측은 '허위사실 유포'라며 사법기관에 형사적 처벌을 요청했다.

D4 개념 사용하는 곳은 기재부 아닌 IMF
  
팩트만 확인하자. 첫째, 안철수 후보 측의 주장처럼 국제통화기금(IMF)이 D4라는 지표를 정의하고 있는 것은 맞다. 둘째, IMF는 D4를 '보험, 연금,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 표준화된 지급계획(insurance, pension, and standardized guarantee schemes)'으로 정의한다. 안철수 후보는 "D4의 경우 일본은 국민연금을 100년 추계한다"고 말하며, 국민연금을 D4에 포함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셋째, 하지만 안철수 후보는 당시 D4를 언급하면서 우리나라 기재부의 국가부채 정의인 D1, D2도 함께 언급했다. 즉, 그는 IMF의 정의와 기재부의 정의를 섞어서 사용했다. 넷째, 우리나라 기재부의 정부부채 정의에 D4는 없다. 기재부는 공무원 및 군인 연금의 미래 예상 지급액을 포함한 정부부채를 '재무제표상 부채'로 부른다. 하지만 여기에 국민연금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상민 연구위원의 지적은 안철수 당시 후보가 정부 부채에 대한 IMF의 정의와 우리나라 기재부의 정의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안 후보 측은 이를 문제 삼아 고발했다.

킬로미터(Km)는 길이를, 킬로그램(Kg)은 무게를 측정하는 단위인 것처럼 양자는 전혀 다른 정의를 갖고 있다. IMF의 D1~D4 정의는 '무엇을 정부의 빚으로 볼 것인가(국채, 차입, SDR, 연금 등)'을 정한 것이다.

반면 기재부의 국가부채 정의 D1~D3는 정부의 범위를 기준(중앙정부, 지방정부, 비영리공공기관, 비금융공기업 등)으로 정부부채의 규모를 측정하는 것이다.

안 후보가 양자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점은 사실이고, 이 연구위원의 주장은 옳다. 다만 안 후보의 D4를 "재무제표상 부채"로 불러야 한다는 이상민 연구위원의 '당시' 지적은 부정확했다. 국민연금 미래 적자는 재무제표상 부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고소·고발도 문제지만 별개로 안철수 후보의 행보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안철수 후보가 국민연금의 미래 적자 예측치까지 포함하면서 D4를 제시한 이유는 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 위험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이 입장은 이후에도 여러 번 반복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시절인 4월 11일에도 "경제는 엉망이고 나라는 빚더미"라고 말했고, 4월 24일에도 국민연금을 언급하며 "매년 미지급 부채가 쌓여가고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다(나는 그 숫자가 과장되거나 오해될 위험이 있다고 믿지만, 여기서 그것을 논하지는 않겠다).

그가 나라의 재정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그는 이번 추경에 반대할 것으로 기대함이 마땅하다. 정부의 빚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정부와 여당의 설명처럼 설사 예상보다 더 많은 세금이 걷혔다 하더라도, 국민에게 나눠주는 일에 반대하고, 기존 채무를 상환하든지 저축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 보도는 아직 보질 못했다.

피고발인이 소속된 나라살림연구소는 입장문을 통해 "토론을 제안했으나, 토론 대신 고발을 당했다"고 밝혔다. 아직 고발이 취하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피고발인 이상민 연구위원도 최근 토론 혹은 민사소송을 원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하면 소송비를 보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개 사건과 사물을 맥락적으로 이해한다. 최근 두 번의 선거가 있었다. 대통령 선거 이전까지 안 되던 일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재정건전성에 대해 기재부는 이전 정부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후보는 추경을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측근은 '시민'을 고발했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지금까지 지겹게 듣던 재정건전성 우려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일관성이 없으면 진심인지 의심하게 된다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전용복 교수는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나라가 빚을 져야 국민이 산다> <일자리 보장: 지속 가능 사회를 위한 제안(역서)> 등을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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