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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접견실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접견실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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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이끄는 인사정보관리단은 헌법재판관 및 대법관 인사검증에도 간여하게 된다. 대통령 인사권을 보좌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게 된다.

현행 헌법 제104조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로 제정된 법무부 시행규칙에 따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인사검증을 기초로 이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헌법 제111조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 중에서 세 명은 국회가 선출하고 세 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도록 하는 동시에, 대통령이 전체 9인을 최종적으로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6인에 대한 1차적 인사검증은 국회와 대법원의 몫이지만, 이 6인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므로 인사정보관리단의 검증이 이들에게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 수뇌부에 대한 인사검증이 한동훈 장관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인사권을 보좌하는 인사검증 작업은 행정부 공무원들의 소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법부 수뇌부에 대한 인사검증권이 대통령실(대통령비서실)로 가는 것이나 법무부장관 직속으로 가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논리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인사정보관리단은 검사들이 주축인 기관이므로 문제가 달라진다. 법무부 시행규칙은 인사정보관리단장을 제외한 나머지 20명 중 최소한 서너 명을 검사로 채우도록 규정했다. 그리고 이들을 나머지 16명의 상위에 배치했다.

검사들이 주도하는 이 기관이 사법부 수뇌부의 인사검증을 맡게 되면, 변호인과 검사를 당사자로 하고 법관이 심판자가 되는 현행 사법체계의 모양새가 이상해지게 된다. 인사정보관리단 검사와 대법관 등이 구체적 사건에서 만나게 되지 않더라도, 이런 구조는 헌법재판소와 사법부가 검찰의 시선을 의식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조장할 여지가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한동훈 장관은 대통령실이 밀실에서 사법부 인사검증을 하는 것보다는 법무부가 국회와 언론의 감시 하에 그렇게 하는 것이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보다 법무부장관실이 더 투명하고 공정하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높지 않다. 만약 한동훈 장관의 논리대로 보다 공개된 공간에서 사법부 인사검증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오히려 사법부의 위상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법부 수뇌부가 검사들의 검증을 받는 모습이 보다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사법부의 위상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은 군대·경찰·정보기관처럼 공권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일반 국가기관도 아니고 이런 기구가 사법부 인사에 개입하는 게 좋지 않다는 점은 박정희 정권 때의 경험으로도 충분히 입증됐다. 이 시기 사례들을 살펴보면, 국민들이 법원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몰라도 공권력 기관이 개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법관의 '기강'을 잡고자 했던 박정희 

5·16 쿠데타 당일에 군사혁명위원회를 만들고 5월 18일 이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군부뿐 아니라 사법부의 기선을 제압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1961년 6월 6일 제정되고 당일부터 시행된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서도 그것이 드러났다.

비상조치법의 24개 조항 중에서 입법부에 대한 직접적 조문은 제9조(국회의 권한 행사) 단 하나였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함께 참여하는 예산안 문제에 관한 제10조(예산안의 의결)까지 포함하면, 입법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조문은 둘이 된다.

이에 비해 사법부에 대한 조문은 제17조~제19조 셋이다. 비상조치법은 세 조문들을 활용해 사법부를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영향 하에 뒀다. 제18조 제2항은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제청으로써 대통령이 이를 임명한다"고 규정했고, 제19조 제1항은 "전조(前條) 이외의 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승인을 얻어 대법원장이 이를 임명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박정희가 의도한 것은 단순히 법관 인사에 개입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법관들의 기강까지 잡고자 했다. 그해 6월 16일자 <경향신문> 톱기사 바로 아래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최고회의는 6월 15일 발표한 '사법 및 법무 정책'을 통해 "법관 및 검사와 법원 및 검찰청 직원의 기강을 확립하고 철저한 재교육을 실시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검찰 출신 정권이 사법부 수뇌부의 인사검증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군인 정권이 사법부의 기강과 재교육을 운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쿠데타 직후의 공포 분위기 속에서도 그런 목소리들이 새어나왔다.

7월 1일 조진만 대법원장의 취임식 풍경에서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한국인 출신 부장판사 2명 중 하나인 친일파 조진만은 대법원장 취임식 뒤의 기자회견을 통해 법관들의 불만과 불안을 달래고자 했다.

다음날 발행된 <조선일보> 1면 중하단에 따르면, 조진만 대법원장은 "법관 자신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며,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인데"라며 "법관으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유지하지 못한 사람은 남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진정시켰다.

박정희가 1961년 6월 초부터 사법부를 다잡고자 내놓은 조치들은 사법부가 군사정권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었을 뿐 이나라 이른바 혁명재판에 적극 협력하도록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6월 30일자 <조선일보> 2면 좌상단에서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대법원과 검찰에 "지시사항"을 내리고 대법원이 이를 전국 법원들에 전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최고회의의 지시사항은 군사정권의 혁명재판에 대해 각급 법원이 지원을 제공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각급 법원은 사건과 자료를 넘겨줬을 뿐 아니라 인력까지 지원했다. 군사정권이 혁명재판의 이름을 빌려 숙청 작업을 하는 데에 법원이 적극 협조하게 됐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부 군인들이 사법부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대한 반대 투쟁이 격렬했던 1964년 5월, 법원이 시위 학생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제대로 발부하지 않는다면서 현역 군인들이 법원에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964년 5월 22일자 <조선일보> 톱기사는 "카빈과 권총을 휴대한 무장군인이 집단으로 법원에 난입하고 영장전담판사를 자택으로 찾아가 약 2시간이나 5·20 데모 학생들의 영장 발부에 압력을 가하는 등 우리 헌정사상 일찍이 없던 중대 사건이 21일 새벽에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사법부와 법관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군부 정권은 몰론이고 일선 군인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퍼져 있었음을 반영하는 장면이다.

같은 날 발행된 <동아일보> 3면 좌단에 따르면, 공수단원 차림의 군인 10여 명이 "카빈과 권총을" 들고 난입한 이 사건에 대해 군사정권은 별 일 아니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임시국무회의·임시국가안전보장회의 및 관계자 연석회에서 나온 결론은 "크게 문제 삼을 것은 못 된다"였다.

다만, 군인들의 군무 이탈 부분은 문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법부의 권위가 훼손된 부분은 문제삼지 않고 군대 위계질서에 관한 부분만 처벌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사법부, 위축이 우려된다  

대통령실·법무부·검찰에 포진한 윤석열 사단이 박정희 군사정권만큼 막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윤석열 사단은 공권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을 뿐 아니라 고도의 연대의식까지 갖고 있는 집단이다. 검찰 조직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는 이 라인이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 인사에까지 간여하게 되면, 박정희 때만큼은 아닐지라도 사법부가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지금 시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일제 식민지배 문제 해결에도 부정적 영향이 초래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이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에 불만을 표하면서 윤석열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지금 상황에서 사법부가 윤석열 정부의 눈치를 볼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려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사법부를 위축시킨다면, 이미 승소한 판결의 강제집행 및 현금화 작업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거기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전 정권 수사'까지 언급한 상황에서 사법부가 윤 정권의 눈치를 볼 일이 생긴다면, 국가 공권력이 엉뚱한 용도로 남용될 위험성이 커지게 된다. 무엇보다, 판사가 검사의 눈치를 보게 될 만한 상황을 조성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제공될 법률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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