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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교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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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독일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2019년에 교환 학생 신분으로 칼스루에 교육대학교에서 초등교육학을 공부했고 이 경험을 계기로 현재 튀빙엔 대학에서 학교 연구 및 개발이라는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2019년엔 초등교사 교생의 신분으로 매주 4시간씩 초등학교를 방문했고, 2022년엔 교육 연구 실습생으로서 매주 4시간씩 초등학교 교실을 관찰하고 있다. 독일에서 의무 교육을 받은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총 3개의 학교를 실습생으로서 매학기 관찰한 독일 교육은 우리나라와 참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우리나라에서 초등교사 양성 교육을 받고 짧지만 초등 교사로 근무하면서 얻은 경험과 생각은 독일 교육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에 유용한 참고점이 된다. 독일과 우리나라의 교육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내가 경험한 독일 교육이 독일 교육의 전체를 설명할 수 없지만, 독일 교육이 우리나라의 교육에 많은 메시지를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똑똑'

수업 중간에 교실문을 누군가 노크한다. 교사는 설명을 마무리한 후에 교실문을 연다. 수업 중간에 화장실을 간 아이가 교실문에 서있었다. 그 아이는 문을 열지 않고 교사나 다른 학생들이 열어줄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아이는 스스로 문을 열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세 곳의 초등학교에서 실습을 하면서 교실문이 밖에선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안에서 누군가 열어줄 때까지 아무도 그 문을 들어설 수 없다.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은 복도에서 교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학교 밖 측면에만 창문이 설치돼 있다.

이렇게 독일의 수업은 다른 학교 공간과 사람들에게 단절된 채 이뤄진다. 수업은 전적으로 학생과 교사에게 맡겨지며 수업이 이뤄지는 동안엔 누구도 이를 간섭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교사는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교육적 실천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받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교실을 떠올려보자. 우리나라의 교사들은 수업 중에도 외부 환경과 완전히 연결돼 있다. 복도에선 교사들이 어떠한 교육적 실천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볼 수 있다. 컴퓨터에 설치된 메신저와 교실마다 있는 전화기는 수업 중에도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따르릉~"
"네 O학년 O반 OOO입니다."

수업 시간인데도 교사를 찾는 전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온다. 교사가 전화를 받는 동안에 학생들은 교사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다. 한국의 교사는 수업 시간에도 행정과 민원 업무에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때론 이것들이 학교에서 수업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교사들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고 학생들은 자율 학습이란 명목으로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학교에 교사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 아닌데 그들은 이것들을 위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사안의 심각성 및 급박함의 이유를 들며 이러한 관행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육보다 긴급하고 중요한 것이 있을까?

독일의 단절된 교실과 한국의 연결된 교실. 이것은 비단 누군가 수업을 방해하는지에서 그칠 사안이 아니다. 교사의 교육적 실천에 대한 대한 두 나라의 인식 차이가 반영돼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질은 수업의 질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수업 시간 및 환경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선 수업의 질이 높아질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교실에선 이러한 조건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을 때가 적지 않다. 

교사의 자질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수업의 질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교사가 어떠한 학급 경영을 했고 아이들의 어떠한 교육적 성장을 이끌어냈는지를 보기보단 그들의 행정적 업무로 그들의 전문성 및 업무 성과를 평가할 때가 많다. '공문은 보낸 횟수, 부장 교사 유무, 행정 업무 종류' 등이 교사의 성과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잣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의 학교에서 교사의 행정 업무 역량은 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업무가 교사의 업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그만큼 교사의 교육적 실천은 학교에서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왜 독일의 학교는 교실이 외부 세계와 단절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걸까? 이는 독일 교사에 대한 인식과 연결돼 있다. 독일에서 교사의 능력을 보는 데 있어서 행정적 업무 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는 고려되지 않는다. 수업의 질, 학습 경영 등 그들의 교육 행위 역량이 교사로서의 질을 결정한다. 게다가 독일의 학교는 우리나라와 같이 교사에게 행정적 업무를 부과하지도 않는다.

학교에 행정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따로 존재하며, 교사는 최우선적으로 그들의 교육 행위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학부모들 역시 필요한 서류나 요구가 있을 때 교사를 찾기보단 학교의 비서실을 먼저 방문해 민원을 처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초등 교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하루의 수업에 따라 자유롭게 출퇴근할 수 있다.

그리고 외부 세계와의 단절은 교사의 교육적 자율성(Pädagogische Autonomie)과도 연결돼 있다. 교사의 교육적 실천은 교사 본인이 결정하며 이것에 대해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 이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으며 교사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학부모, 교장도 교사의 교육적 자율권을 침해할 수 없다.

이 권리는 단순히 교사의 사적 자유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교육적 자율성은 학교의 목적과 학생들의 교육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만약 교사가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교육이 단순히 외부의 힘을 추종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독일은 학교 교육이 단순히 사회의 재생산 수단으로서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사의 교육적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교권은 독일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역으로 이에 대한 침해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교육의 3주체를 학생, 학부모, 교사라고 했을 때 교사의 권리는 앞의 두 주체의 권리만큼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권이 충돌했을 경우 학습권은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부모의 교육권과 교권이 상충할 경우 교권은 힘을 쓰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교사를 어떠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단순히 사회를 재생산에 기여하는 사회의 하수인에 불과할까? 교육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에 불과할까? 행정 업무가 학교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 없이 지금과 같이 교사의 권리를 소홀히 한다면 교육은 외부의 힘을 추종하는 방식으로만 이뤄질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교사의 질이 교육의 질을 모두 설명하진 않는다. 교사의 질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발현되는 상황과 조건이 열악하다면 그만큼의 효용을 내지 못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교사가 그들의 교육적 자율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교육 제도와 단위 학교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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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사는 교육을 공부하는 학생. 교육을 혐오해서 교육 대학교에 입학했고 현재는 교육의 희망을 그리고 있다. 나의 궤도에서 나만의 방향, 속도로 꿈을 나아가고 있으며 평생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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