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 채널A

 
25년간이나 프리마돈나로 활약한 최고의 발레리나에게도 무대에서 내려와야하는 순간은 두렵고 힘들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세월의 흐름에 따른 시작과 끝은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다. 그 변화를 얼마나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차이를 만든다.
 
5월 20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는 세계가 인정한 발레리나 김주원이 출연하여 고민을 상담했다. 오은영과는 개인 유튜브를 통하여 김주원에게 발레 교습을 받았던 인연이 있었다.
 
김주원은 "무대를 떠나는 순간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털어놨다. "무용수는 두 번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는 무대에서 내려갈 때, 두 번째는 인생의 죽음이다. 그런데 무용수에게는 첫 번째 죽음이 더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할 만큼 무용수에게 '무대>인생'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설명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발레를 시작하여 어느덧 35년째 발레리나의 삶을 이어오고 있는 김주원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여전히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하지만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녀에게 어느 순간 무대를 떠나야만 하는 시간은 다가올 수밖에 없다. 김주원은 "무대를 떠나는 순간을 건강하게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식같이 소중한 무대를 떠나야 하는 공허함을 못 견딜 것 같아서 고민"이라는 속내를 털어놨다.
 
모든 직업인이라면 은퇴 시기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 찾아온다. 정형돈은 "연예인은 은퇴라기보다는 퇴출이 맞는 것 같다. 안 써주면 사라지는 거니까"라고 이야기했고 박나래와 이윤지도 공감했다. 오은영은 "전문의 중 정신건강의학은 은퇴에 좀더 유리하다. '입'이 중요하니까. 대신 환자의 이야기를 집중하거나 마음 공감에 어려움을 느끼면 그때가 은퇴시기"라고 설명했다.
 
오은영은 직업인이 은퇴시기를 맞이하여 우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상승정지 증후군'으로 설명했다. 더는 올라갈 목표가 없다고 느낄 때 허무함과 공허감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무대 떠나야 한다는 현실과, 이상이 충돌"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 채널A

 
발레리나의 은퇴 시기는 대략 언제일까. 김주원은 정확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본인의 신체적 한계를 느끼거나 개인사정으로 은퇴를 결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발레단에 따라서는 40~42세를 정년퇴직기한으로 정해놓은 곳도 있다고. 유연성이 중시되고 신체 전부를 사용해야 하는 발레는 '젊음의 예술'이라고 불릴 만큼 다른 분야보다 은퇴 시기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46세의 김주원은 이른바 '클래식 발레'로 꼽히는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같은 작품과는 벌써 이별을 고했다고. 클래식 발레는 축구 한 게임을 소화하는 것과 맞먹는 칼로리 소모량을 요구하기에 노장이 될수록 어렵다.

드물게 러시아의 고 마야 플리세츠카야 등 전설적인 무용수 중에서는 60대까지도 활약한 기록도 있다. 김주원은 "그런 분들은 나이든 발레리나지만 그냥 존재 자체가 감동이다. 하지만 그런 노장은 손에 꼽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그만한 전설이 아니다. 제 자신이 그때까지 무대에 서서 쉰 다섯의 줄리엣이 되고 싶지는 않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본인이 생각하는 은퇴 시기는 언제쯤일까. 잠시 생각에 잠긴 김주원은 "저의 또다른 고민 중 하나가 아직은 무대에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언젠가는 무대를 떠나야 한다는 현실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이상이 계속 충돌하고 있는 것.
 
김주원은 "발레리나는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을수록 표현력도 높아지고 관객과 더 교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는 현명하게 나이 들어가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면서도 "그런데 신체는 내 마음과 반대가 된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김주원은 "예전만큼 테크닉이나 에너지가 부족해도 관객과의 소통없이는 살 자신이 없었기에 '나의 이야기로 내 작품을 만들자'고 결심해서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게 됐다"는 속사정을 고백했다.
 
오은영은 "너무 멋지다. 건강한 방식으로 삶의 방식과 인생의 행로를 찾아가고 있다"고 칭찬하면서도 "35년간 김주원에게 발레는 곧 인생 그 자체였고, 나이가 들면서 속상하고 상실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김주원에게는 그 상실감과 허무함이 더 크다"라고 우려했다.
 
"영혼과 인생 다 발레에 바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 채널A

 
상실감의 원인을 탐색하며 김주원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상위 1% 王 금쪽이'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남일같지 않았다는 김주원은, 자신도 어린 시절 촉각이 유난히 발달하고 엄청나게 예민한 성격으로 주변을 힘들게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가질 때까지 타협이 되지 않는 소아강박적인 성향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오은영은 감각에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김주원의 성격이 발레라는 무용을 하는 데 있어서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주원은 눈치가 빨라서 생기는 단점으로 "누군가가 저를 싫어하거나 불편해하는 것도 너무 빨리 알아채서 사는 게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애써 남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으려는 연습을 해야했다. 저한테만 집중하면 되는 발레는 힘든 걸 잊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고백했다.
 
오은영은 "김주원은 타인의 감정을 100이면 100 모두 눈치채고 어떨 때는 그게 150으로 증폭되기도 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발레는 자신을 살펴보고 몰두하는 일이다. 김주원에게 발레는 타인에게 받는 감정적 자극의 방향을 본인으로 바꿔주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주원은 발레를 가리켜 '평생의 친구'라고 정의했다. 김주원에게 발레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못나고 완성되지 않은 라인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여정이었다. 끊임없이 '나'를 보고 다듬고 행복하고 불행했던 과정을 반복하는 작업이 발레였다.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을 요구하는 발레를 만나 본인의 예민함이 오히려 치유가 되었다고. 

하지만 오은영은 "강박이 발레를 하면서 괜찮아진 게 아니라, 발레로 강박이 옮겨간건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김주원은 지금도 오직 발레를 위하여 하루 일과가 상상을 초월하는 루틴으로 짜여져 있었다. 장기간의 휴가기간이라도 주어지면 오히려 망연자실하게 된다고. 김주원에게 제일 두려운 것은, 잠깐만 방심해도 '춤추기 힘든 몸'이 될 수 있다는 공포였다.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됐던 김주원의 발은 그녀가 오랜 세월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기 위하여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오은영은 "팬의 입장에서는 감동적인 이야기지만, 어떻게 보면 고통을 수반한 혹사다. 여기에 영혼과 인생을 온전히 다 발레에 바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라고 지적했다.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 채널A

 
김주원은 어린 나이 때부터 러시아 유학시절을 겪으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몸을 혹사시키는 게 습관이 되었음을 고백했다. 남들에겐 가벼운 복통도 본인은 기절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경우가 많다고. 예민한 성격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몸의 반응으로 드러난 것.
 
오은영은 "극단적인 결과가 나오기 전에 몸의 신호가 있었을 텐데 왜 미리 알아차라지 못했을까"라고 질문했다. 잠시 고민하던 김주원은 "발레리나의 특성상 항상 통증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한 직업"이라고 설명하면서 "통증에 익숙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몸의 신호를 무시한 건가"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오은영은 "김주원은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성격이다. 그게 장점일 수 있지만 지나치면 몸의 신호를 무시하거나, 너무 몰두하여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된 김주원은 낯가림이 심하여 대인관계에 있어서 스트레스가 심했다. 사회적인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성격을 바꾸고 많은 노력을 해야했다고.

김주원은 "유일하게 제 자신이 소통이 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편안하게 하는 건 춤밖에 없더라"고 설명하면서 "누군가 저를 진정한 김주원을 알고 싶다면 제춤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무대는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제 모든 삶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제 언어와 제 이야기는 제 몸짓이다"라고 발레가 자신에게 가지는 의미를 돌아봤다. 김주원이 무대에서 언젠가 내려와야하는 순간을 겁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은퇴를 고민한 계기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 채널A

 
김주원이 분신과도 같은 발레를 은퇴할 것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부상이었다. 2017년 허리스크로 입원해야했던 김주원에게 부상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40대에 찾아온 부상은 데미지가 더 컸다. 당시 김주원은 춤은 더 이상 출 수 없고 일상생활도 조심해야 한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정신없이 발레에 미쳐 살아왔던 김주원은 부모님 댁에서 치료를 받으며 여섯 살 이후 처음으로 하늘을 바라봤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밝혔다. 김주원은 "저런 하늘이 있다고?"라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고 그대로 몇시간이나 하늘을 바라봤다고.
 
김주원은 불굴의 의지로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김주원은 "제가 선택한 은퇴 시기가 아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부상 당시에는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에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던 김주원이지만 "다시 토슈즈를 신던 날에는 대성통곡을 했다"고 고백했다.
 
물론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포기하거나 희생했던 부분도 있었다. 김주원에게는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이나 친구들과의 추억이 없었다. 김주원은 "그 나이대에 겪어야 했던 정서적 경험이 없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연애와 사랑, 가정이 주는 행복도 출산으로 인한 경력 공백과 무대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결국 포기해야 했던 순간이 많았다.
 
세계적인 발레리나였던 김주원의 후배가 발레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며 "아기를 갖고 싶어서"는 이야기에 함께 눈물을 흘렸던 일화는 발레리나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일깨워주며 분위기를 숙연하게 했다. 김주원은 "사랑하는 걸 얻기 위해 사랑하는 걸 버려야하는 거구나. 저도 여자로서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고 후배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출산은 아름답고 신비할 일이지만 발레리나에게는 큰 숙제로 다가오는 고민이기도 하다. 김주원은 "나이가 들어서는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출산을) '포기'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저는 여자로서의 여러 가지 삶 중 춤을 '선택'한 것이고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간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고 가슴 한편에 담아놨던 모든 속마음을 털어놓은 김주원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오은영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의 일화를 언급하며 첼로를 통하여 관객들과 소통하는 '인간' 요요마로 자신을 규정하는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순간을 소개했다. 그에 비하면 김주원은 "발레리나 김주원만 있지, 인간 김주원의 삶이 빠져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오은영은 "발레리나 김주원은 영원하다. 관객들에게 기쁨을 준 발레리나 김주원의 모습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무대가 끝나면 인간 김주원으로서의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지금까지 김주원의 인생이 발레로만 채워졌다면,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인간 김주원으로서의 삶의 영역이 커지면 맥주도 한 잔하고 남자친구도 사귈 수 있다"며 여유를 당부했다.
 
미소를 되찾은 김주원은 "제가 언제까지 무대를 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려가는 순간까지 행복하게 춤출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인간 김주원의 삶을 애써 무시했었고, 그게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은 면도 있었다. 이제는 사랑도 하고 하늘도 자주 보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오은영은 데뷔 25주년 르베랑스(인사, 커튼콜) 기념공연을 맞이한 김주원을 위하여 "행복한 커튼콜, 박수를 즐겨라"는 솔루션을 전했다. 김주원은 인간 김주원도 생각하면서 남은 무대를 행복하게 서겠다"고 약속했다.
금쪽상담소 김주원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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