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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따뜻해져서 밤 산책도 가볍게 할 수 있는 날이 됐다.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었지만 낮에는 마스크를 벗는 것이 어색하다.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너무도 벗고 싶었던 마스크인데 익숙함을 벗어던지는데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가 보다.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물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운 밤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밤 산책에서 오랜만에 자유를 느낀다.
 
떼를 이루는 좀씀바귀
 떼를 이루는 좀씀바귀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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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로 후각을 버리고 지낸 시간이 길어서 일까, 어둡고 고요해서일까, 더 깊게 숨을 쉰다. 낮에는 시각에 몸과 마음이 집중한다면 밤에는 코가 즐겁다. 이팝나무와 소나무는 한창이고 높은 나무 위에 아까시나무, 튤립나무꽃이 피기 시작했다. 고들빼기와 씀바귀, 민들레와 토끼풀, 사상자와 소리쟁이, 많은 풀꽃까지 가세하니 밤공기에 향기가 가득하다.

가로수가 바뀔 때마다 공기도 달라진다. 바람이 불 때에는 또 다른 향이 날아든다. 오히려 꽃이 화려한 영산홍에선 향기를 느끼지 못하겠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에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보이는 하얀 공 모양의 꽃이 탐스럽게 피는 '불두화'에도 향기가 없다. 향기가 없는 꽃, 암술과 수술이 없는 이 꽃은 열매도 맺지 않는다. 화려한 꽃 외에는 어떤 기능도 없는 식물이다.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이라니, 생물이 살아가는 이유를 처음부터 갖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는 식물이다. 생각이 많아진다.
 
향기 없는 불두화
 향기 없는 불두화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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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느낄 수 있는 향기 안에는 꽃향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가 흘리는 수액, 나뭇잎, 열매, 낙엽 냄새까지 다양한 향기분자 덩어리이다. 단지 동물을 유혹하는 향기뿐 아니라 반대작용을 하는 냄새도 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동물이 기피하는 많은 냄새까지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봄 향기는 건조함과 은은함이 느껴진다. 비가 흠뻑 오고 난 후 여름의 향기는 폐 속까지 들어오는 깊이가 있다. 서로 너무 다르다. 숲에서는 향기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라면 아파트 주변의 향기는 스치며 지나가는 느낌이다.

갑자기 모든 식물을 냄새로 구별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코끝에 꽃가루를 묻히기 부지기수였고, 언제나 뭔가가 닿아 있어서 그런지 코끝도 둥그스름한 친구였다. 반면 필자는 냄새 맡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요즘 사람들이 육아를 책으로만 배우듯, 식물을 책으로 공부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던 탓일까, 오감으로 경험하는 것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밤에도 화려한 이팝나무
 밤에도 화려한 이팝나무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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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배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필자는 식물을 포함한 자연을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 이제야 아이들과 숲에서 시간을 보내고, 자연스럽게 오감체험을 하면서 덕분에 스스로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자연스럽게 열고 있다. 지금도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때아닌 고백을 한다.

이제 마스크를 벗고 모든 감각으로 살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후각을 차단하면 미각만 잃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던 소소한 즐거움도 잃는다. 미세먼지가 신경 쓰여서, 산성비가 걱정되어서, 주변에 널려있는 환경호르몬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며 즐겁게 살아야 할 시간을 미룬다면 미래에는 지금의 자연환경을 만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기후변화로 남쪽 해안가에 살던 사상자를 경기도에서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식물은 점점 높은 위도로 올라갈 것이다. 몇 년 후에 익숙하게 보던 주변 모습이 바뀔 수 있다. 자연을 산책하면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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