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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을 했던 사람이 '인쇄인들을 위하고 시민들에게 인쇄문화를 알리기 위한' 서울인쇄센터를 지난 3월부터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용역으로 공공 기관을 운영하면서 공간을 꾸리는 일, 시민들을 대하는 순간들을 소소하게 일지 형식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기자말]
지난 16일 '편집제작실습' 수업으로 서울인쇄센터 수강생들이 사회적기업의 사업소개서를 디자인하고 있다.
 지난 16일 "편집제작실습" 수업으로 서울인쇄센터 수강생들이 사회적기업의 사업소개서를 디자인하고 있다.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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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쥐는 유전자가 80%가 똑같다고 한다. 비슷한 것까지 따지면 99%라고 하니 확연히 다른 유전자는 1%에 불과한 셈이다. 예전엔 이 이야기를 빗대어 동료들을 부추기곤 했다. 고작 1%의 차이로도 사람과 쥐가 나뉘듯 우리가 기획하는 프로그램도 딱 1%만 차별화하자며.

무식해서 용감했던 걸까? 애써 무시한 걸까? 사람 유전자가 약 4만 개 정도라고 하니, 1%면 확연히 다른 유전자가 400개인 셈이다. 그리고 19%는 비슷하다 했으니 또 8천 개의 유전자에는 제각각 비슷하나 색다른 매력들이 있었을 게다. '고작 1%' 운운하기에는 너무나 큰 숫자다.

'고작 1%' 달라져서는 좋은 기획이 나오기 어렵다는 건 사실, 실무가 가르쳐 준 교훈이다. 기획을 바꾸려면 유전자를 재배열할 만큼의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감흥 없는 도플갱어들을 만나기 십상이었다.

서울인쇄센터(아래 센터)를 맡고 나서도 고민은 이어졌다. 센터의 사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대부분 오래 한 프로그램이고, 또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꼭 필요한 부분을 남기면서도 변화가 필요한 지점은 어떤 것일까?

이 글을 쓰는 16일 저녁 9시, 센터 강의실에서 진행되는 수업은 이런 고민이 조금이나마 반영된 결과물이다. 변화의 핵심은 강의실의 수업이 현장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번 수업은 기존의 디자인 수업을 이은 것이지만, 수업을 기획하면서 중구에 있는 사회적기업 쪽을 수소문했다. 사업소개 자료를 만들고 싶은데 못 만드는 업체가 있는지를 물었다. 있다면 수업에 들어온 수강생들에게 사업소개서를 만들게 하고 그 가운데서 업체가 맘에 드는 시안을 고르면 센터가 보유한 인쇄 장비로 사업소개서를 100부 제작해주기로 했다. 물론 선정된 디자이너에겐 적은 금액이지만 디자인비를 지급할 예정이다.

수강생에겐 실제로 고객의 주문으로 디자인하는 기회가 되고, 기업엔 엄두 내지 못했던 사업소개서를 만들 좋은 기회가 될 것이었다. 견본으로 제작해 드리는 100부야 금방 소진될 테니 그 뒤에는 어느 인쇄소인가에 주문이 들어갈 것이고, 만약 디자인 수정안이 생기게 된다면 우리 수강생에게 또 일거리가 생기는 일일 것이다.

수업이 끝나는 내일모레쯤 지나 봐야 수강생이나 제작을 의뢰한 기업들이 얼마나 만족할지 판가름이 나겠지만, 벌써 마무리한 수강생들의 중간 결과물을 보면 꽤 호응을 얻을 것 같다.

강의실 수업과 현장의 수요를 잇는 것이 개선을 위한 지향이라면 늘 깨어서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5년 전쯤 필동에 있는 한 인쇄인이 항의한 적이 있다. 자신은 유료 강의를 여는데 공공에서 이렇게 무료 강의를 열면 어떡하느냐는 얘기였다.

공공이 여는 무료 강의니 얼마나 좋아? 자아도취 해 있던 중에 내 일이 누군가의 생계를, 민간의 자생력을 망가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 이후 시장과 생태계에 뺄셈이 아니라 덧셈이 되려고 노력 중이지만, 의도치 않게 우리 활동으로 피해 보는 이들은 없는지 늘 경계하고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래서 더더욱 시장과 겹치지 않는 공공 영역의 새로운 기획은 더 필요하다. 이 '새로운 기획'을 위해 유전자 몇 개를 바꿔야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현장의 얘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 어쩌면 이번 수업에 호응이 좋은 것도 내용보다는 저녁 시간으로 수업 시간을 옮긴 탓인지도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간다. 수강생들의 작품을 만나러 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같은 글을 실었습니다.


태그:#서울인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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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네트워크(사) 대표. 문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지역 현장에 들어가 지역 이름을 걸고 시민대학을 만드는 'OO(땡땡)은대학'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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