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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공원이라고 극찬받은 제주돌문화공원 모습
 세계적인 공원이라고 극찬받은 제주돌문화공원 모습
ⓒ 고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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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제주 돌문화공원을 다녀온 후 오래전에 본 30분짜리 영화 한 편에 대한 기억이 오버랩되어 펜을 들었다. 그림으로만 상영되는 애니메이션 영화 제목 <나무를 심은 사람>. 1987년 프데데릭 백 감독이 제작해 1988년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앙시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다.

영화는 나무가 사라져 황량한 사막으로 변모한 베르공 마을에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그곳에는 마을을 떠나지 못한 주민 몇 명과 12채의 가옥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을을 방문한 주인공 눈에 한 노인의 이상한 행동이 들어왔다. 그는 양을 키우는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노인으로 매일 황무지에 너도밤나무 씨앗을 심고 있었다.

노인이 1910년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37년이 지난 후 황폐했던 마을에 향기롭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가 심었던 10만 그루의 나무 중 2만 그루가 살아났다. 엘제아르 부피에가 황무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 37년이 지난 후 마을에는 1만 명의 주민이 돌아오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행복한 곳이 되었다. 한 사람의 헌신이 세상을 바꿨다는 것을 그린 영화이다.

누가 이 많은 돌을 모아놨을까?
 

지난 3월 제주도를 방문했다. 제주도는 여러 번 방문했지만 2박 3일의 단기간 방문 중 어디를 가볼까 궁리하다 제주대학교 김경호 교수에게 물었더니 "돌문화공원을 꼭 방문해보시라"는 추천을 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거대한 돌이 양쪽으로 늘어선 '전설의 통로'를 거쳐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상징탑을 거쳐 '하늘연못'에 도착하니 장화를 신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 촬영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동자석들로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이 연상됐다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동자석들로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이 연상됐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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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니 과연 인생샷을 찍는 곳이라는 건 허언이 아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촬영한 인생샷이 떠올랐다. 오백장군 군상에서는 마추픽추의 돌탑이, 동자석이 전시된 야외전시장에서는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이, 돌하르방과 석인상이 늘어서 있는 곳에서는 몽골야생마가 살고있는 호스타이 국립공원이 떠올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누가 이 많은 돌과 작품들을 모아놨을까? 어떻게 세계적인 걸작과 연상되는 작품들을 모아 연출했을까?" 하고 궁금해하며 글을 썼고 <오마이뉴스> 여행 부문에 상위 랭크 되어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관련 기사 : "세계적 수준" 극찬 받은 가장 제주다운 곳) 덕분에 돌문화공원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제주돌문화공원 고순옥 사무장이 보낸 사진집과 논문집을 통해 백운철 전 제주돌문화공원 총괄기획단장의 숭고한 삶에 고개가 숙어졌다.

제주돌문화공원을 탄생시킨 백운철은 누구?

'제주돌문화공원의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부제로 한 이경진의 석사학위 논문 '퍼포먼스로 본 문화공간의 의미화 과정'에는 제주돌문화공원을 탄생시킨 백운철 총괄기획단장에 대한 내력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은 1999년 백운철(당시 탐라목석원 원장)이 보유한 2만986점의 유물을 제주도에 무상 기증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탐라목석원에서 보유한 유물 대부분은 조형미를 갖춘 자연석, 민속품, 항아리류, 조록나무 고사목 뿌리들로 백운철이 40여 년 동안 수집한 것이다.

돌문화공원은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총 22년 동안 2단계에 걸쳐 조성됐다. 총 조성면적은 약 130만 평이며 돌문화공원과 자연휴양림으로 나뉘어 조성됐다.
 
(전)제주돌문화공원 총괄기획단장 백운철씨 모습. 40년 동안 제주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모은 20,986점의 유물을 제주도에 기증해 오늘의 제주돌문화공원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전)제주돌문화공원 총괄기획단장 백운철씨 모습. 40년 동안 제주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모은 20,986점의 유물을 제주도에 기증해 오늘의 제주돌문화공원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 고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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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제주시에서 태어난 백운철은 대학 시절과 군 시절을 제외하면 거의 제주를 벗어난 적 없는 제주토박이다. 연극에 관심이 있어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서 연출을 전공한 후 강원도 설악산 야전공병대 근무 시절, 화목병으로 차출되어 우연히 괴목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70년대 초 10여 년 동안 모았던 돌과 나무뿌리를 모아 '탐라목물원'을 개원한 후 더 넓은 대지로 옮기면서 '탐라목석원'으로 개칭했다. 1999년, 백운철은 모든 유물을 제주도(당시 북제주군)에 기증하기로 하고 이후부터 제주돌문화공원 민관합동추진기획단의 총괄기획단장을 맡아 공간을 조성했다.

백운철의 수집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여인 

제주를 대표하는 세 가지는 돌과 바람, 여자이다. 제주의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나무뿌리와 돌에 미쳐 제주를 두 바퀴나 돌아다니던 그는 어느 날 집 가까운 곳 길거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백운철의 취미를 이해하고 다른 식구들 몰래 금전적으로 후원해준 어머니는 무당을 불러 굿을 세 차례나 했다. 무당은 '산귀신에 들렸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산신제를 지내라고 했다. 백운철의 설명이다.
  
14~15일,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열린 설문대할망제에서 9명의 여성제관들에 의해 헌향, 헌다, 헌화, 고축(告祝), 헌시가 있었고 뒤이어 헌무와 여러 축하 행사가 이어졌다.
 14~15일,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열린 설문대할망제에서 9명의 여성제관들에 의해 헌향, 헌다, 헌화, 고축(告祝), 헌시가 있었고 뒤이어 헌무와 여러 축하 행사가 이어졌다.
ⓒ 고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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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무당에게 물어보니까 산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산신제를 지내라는 거야. 그래서 어머니하고 인부들과 함께 간 곳이 어디냐면 한라산 영실이었어. 그때 오백장군영실 안에서 비닐 텐트를 쳐놓고 일주일 동안 산신 기도를 드렸지. 그런데 달밤에 보는 오백장군의 실루엣이 기가 막힌거야. 그러면서 내가 주워온 돌 중에 사람 얼굴과 비슷한 것들을 오백장군바위 위에다 올려놓는 상상을 했어. 그때부터 오백장군의 영혼을 달래주자는 생각을 했어." (이경진 석사논문 중에서) 

백운철은 스스로 무당이 되어 오백아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기로 결심했고 거기서부터 '설문대할망제'가 시작됐다. 그는 달빛이 비치는 바위들을 보고 현신한 오백아들을 보는 듯했다. 그 바위에 사람 모양을 한 돌덩이를 올리고 제를 지내 그들의 한을 풀어주면 진정한 모습을 되찾을 것 같았다. 이 같은 백운철의 연극적 사고는 제주돌문화공원이라는 퍼포먼스를 기획하는 출발점이 됐다.
 
'갑돌이의 일생' 조형물. 백운철의 탐라목석원이 유명세를 타게 된 건 '갑돌이의 일생' 조형물이 방송을 타면서부터다
 "갑돌이의 일생" 조형물. 백운철의 탐라목석원이 유명세를 타게 된 건 "갑돌이의 일생" 조형물이 방송을 타면서부터다
ⓒ 고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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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철의 탐라목석원이 유명세를 타게 된 건 '갑돌이의 일생'이라는 조형물이 방송되면서부터다. 28개 소절로 꾸며진 '갑돌이의 일생'은 "사람은 현실과 이상이 함께 하며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적 이야기가 줄거리다.
 
고국방문단으로 온 재일교포 처녀가 맘에 들자 양가에도 알리지 않고 평상복만 입고 결혼식을 올린 백운철. 존경하는 선생님이 주례를 봐 3명만 참석한 결혼식이다. 허례허식이 유행하던 시절인데 그의 인품을 알 수있는 현장 사진이다.
 고국방문단으로 온 재일교포 처녀가 맘에 들자 양가에도 알리지 않고 평상복만 입고 결혼식을 올린 백운철. 존경하는 선생님이 주례를 봐 3명만 참석한 결혼식이다. 허례허식이 유행하던 시절인데 그의 인품을 알 수있는 현장 사진이다.
ⓒ 고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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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철의 두 번째 조력자는 아내이다. 고국방문단으로 제주도를 방문한 재일교포 처녀가 맘에 들어 결혼을 약속한 둘은 양가의 허락도 받지 않고 평소 존경하는 홍정표 선생님에게 주례를 부탁하고 평상복을 입은 채 셋만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일본에서 미술을 전공한 아내는 어려운 형편인 백운철의 수집 취미를 이해해주는 지지자였다.

그린벨트 속에 자리 잡았던 그의 목석원이 몇 차례 헐릴 위기에 닥칠 때도 있었지만 뜻있는 사람들의 지원과 호응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백운철은 제주에서 탄생한 유물은 제주에 두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그가 자신이 수집한 유물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이경진의 논문집에 따르면 1972년 가을 어느 날 이후락 정보부장, 김현옥 내무부장관이 우연히 목물원에 들렀다. 같은 날 박종규 경호실장은 대통령을 모시고 올 테니 '저것' 하나 싸놓으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백운철은 서귀포로 잠적해버렸다. 박종규가 지목한 것은 '포효'라는 작품으로 그가 몹시 아끼던 작품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의 부탁에도 겁도 없이 서귀포로 잠적해 버린 그가 곤욕을 치렀을 건 당연지사다.

그가 제주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화도 있다. 목석 수집품이 늘어날 때마다 빚이 쌓여가던 60년대 말, 어느 날 고사목 뿌리들을 개당 10만 원씩 1억 원에 사겠다는 재일교포 이원제씨 제안에 백운철의 부모님과 돈을 받을 것이 있는 큰 매형은 그것들을 팔아 빚을 갚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재일교포를 찻집으로 데려가 "저 귀한 조록형상목들이 제주에 있어야 하느냐, 아니면 일본으로 가져가야 하는가? 어떤 게 옳은 생각인가?"를 묻자 교포가 포기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25호 조록형상물 뿌리 20점 중 하나로 작품 명 '포효'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도 탐냈던 작품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25호 조록형상물 뿌리 20점 중 하나로 작품 명 "포효"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도 탐냈던 작품이다.
ⓒ 고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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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때 1억 원을 주고 팔았다면 나는 그 거금 때문에 오래 살지 못했을 거야. 부동산 투기와 술로 내 인생은 타락하고 말았을지도 몰라. 그 덕분에 조록나무 고사목 뿌리는 세계 처음으로 식물학자 박만규 박사의 권유에 따라 제주의 고유성과 희귀성을 인정받아 20점이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받고 도의 보호를 받고 있지." (백운철) 

탐라목석원이 유명세를 타면서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연간 입장료 수입이 수억 원에서 10억대까지 오른 어느 날, 백운철은 근육 이완으로 오른손이 마비되자 흑백사진과 토우작업을 시작했다.

백운철은 어느 날 자신의 작품과 유물들을 모아 <영실>이라는 사진집을 발간했다. 우연히 목석원을 방문한 프랑스 사진작가 레오나드씨가 보게 되었고 레오나드씨의 주선으로 1988년 10월 파리시에서 주관하는 사진의 달 행사에 초청받았다.

세계적인 사진평론가이자 파리국립도서관 사진국 큐레이터인 쟝 클로드 류마니 박사를 통해 백운철의 흑백사진 200점이 프랑스국립도서관 특별사진국에 소장된 것이다. 그의 사진이 널리 알려지면서 프랑스의 '눈(L'OEIL)'에서 6페이지에 걸쳐 탐라목석원을 특집으로 다뤘다.
 
프랑스의 ‘눈(L'OEIL)'에서 6페이지에 걸쳐 탐라목석원을 특집으로 다뤘다.(위 사진 설명). 2001년에는 프랑스 문화재관리국의 ’기념비적인 것(MONUMENTAL)’ 연간지에서 탐라목석원을 세계의 정원 12곳 중 하나로 선정했다.
 프랑스의 ‘눈(L"OEIL)"에서 6페이지에 걸쳐 탐라목석원을 특집으로 다뤘다.(위 사진 설명). 2001년에는 프랑스 문화재관리국의 ’기념비적인 것(MONUMENTAL)’ 연간지에서 탐라목석원을 세계의 정원 12곳 중 하나로 선정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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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는 프랑스 문화재관리국의 '기념비적인 것(MONUMENTAL)' 연간지에 세계의 정원 12곳 중 하나로 탐라목석원이 선정됐다. 한편 2011년도에는 세계 106곳에 연구소를 둔 프랑스 초형이상학회가 주는 '그랑지두이' 최고상을 수상했다. 그랑지두이 상은 파블로 피카소, 루이 부르주아,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등이 수상한 상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에게 주는 상이다.

아름다운 제주는 지금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제주돌문화공원에 가면 제주의 옛 모습과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책 속에서 문화가 경쟁력임을 강조했다. 그의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문화적 차이는 일부 국민들을 경제적 불이익 속에 가두어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화된 장점을 만들어내 세계경제 속에서 국가 번영을 이루게 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 손쉽게 자원을 조달할 수 있는 세계경제, 그 속에서 차별성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주는 문화적 차이는 점점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5월의 제주돌문화공원 모습. 한 사람의 노력으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공원이 탄생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5월의 제주돌문화공원 모습. 한 사람의 노력으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공원이 탄생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 고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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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의 보석 같은 존재이다. 돈과 이기심, 출세와 행복만 추구하는 세상에서도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제주돌문화공원을 만든 백운철은 영화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에 버금가는 사람이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백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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