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 유보트>는 잠수함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수작이며 전쟁영화로도 손꼽히는 고전의 반열에 든 작품이다. '특전 유보트'는 한국에서 개봉할 때 제목이다. '특전'이란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의도적으로 전투 장면이 많은 액션영화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려 한 듯하다. 원제는 < das Boot >로, 영어제목도 그냥 < The Boat >이다. 내용상으로는 유보트가 맞으니 '특전'이 문제이다. 제목과 달리 영화에는 '특전'이라 할 것이 별로 없다.
  
  < das Boot > 포스터.

< das Boot > 포스터. ⓒ 특전유보트

 
잠수함 영화의 전설
 
여러 길이의 편집본이 존재한다. 2시간 30분짜리 영화로 1981년 독일에서 개봉했고, 이어서 1982년 미국에서 개봉되어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1997년에 3시간 30분짜리 디렉터스 컷이 개봉되어 이후 이 감독 편집본을 < das Boot >의 원본으로 삼는다. 2차대전에서 나치의 군 선전요원으로 복무한 로타르 귄터 부흐하임의 1973년 동명소설을 극화했다. 극중 베르너 중위(헤르베르트 그뢰네마이어)가 부흐하임 역을 소화했다.

감독 볼프강 페터젠은 < das Boot > 연출을 계기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에어 포스 원> <사선에서> <트로이> 등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다.

영화는 출항 전날의 장면에서 시작한다. 왁자지껄한 만취의 아수라장이 역설적으로 전장으로 향하는 비장함을 웅변한다. 군기나 전의 같은 건 안 보이고 약간의 냉소와 비아냥거림이 거나한 술판 속에서 일렁인다. 영화는 유보트의 출항과 임무, 그리고 귀향을 그린다. 격렬한 전투나 영웅담보다는 수면 아래 좁은 잠수함 안에서 살아가는 승조원의 눅눅한 일상을 주로 보여준다. 그런데도 상영시간 3시간 반이 심심하다거나 지루하지 않으니 페터젠 감독이 할리우드에 스카우트된 이유를 알 만하다.
 
  < das Boot >의 한 장면.

< das Boot >의 한 장면. ⓒ 특전유보트

 
더불어 가끔 긴장을 부여하는 외부 요인을 삽입하여 눅눅함의 한 단락씩을 끊어내는 연출 감각을 보여준다. 긴 영화이다 보니 긴장의 에피소드는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고조되어야 하고 실제로 그렇다. 전쟁이란 것이 주로 버티기이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투라는 것도 종종 적군보다는 아군, 특히 군 지휘부의 경직성과 군 행정의 관료주의와 맞서야 하는 것이라는 냉혹한 진실을 보여준다.

그러한 맥락에서 영웅주의나 애국심 같은 게 배제된 건 당연하겠다. 영화의 모델이 된 U-96의 함장 하인리히 레만빌렌브로크가 "우리 유보트 승조원들은 영화 속에서처럼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지 않았다"며 항의할 법도 하다. 유보트 승조원은 징집하지 않고 전원 자원자만으로 구성하였으니 레만빌렌브로크 함장의 항의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밀폐돼 그것도 조류처럼 해수면 아래에서 기나긴 시간을 복무하고 때로 죽음의 공포에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아무리 전원이 자원자라고 하여도 패배주의 비슷한 것에 습격 당하거나 드물게 스트레스를 못 이겨 정신줄을 놓아버릴 개연성이 충분하다.

극중에서 기관실을 책임지는 부사관 요한은 유령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구축함의 폭뢰 공격이 집요하게 이어지자 요한은 정신착란을 일으켜 전투 위치를 이탈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부대를 통솔하며 잠수함을 살려내야 하는 함장은 그를 즉결처분하려고 자신의 사물함에서 권총을 가져오지만 다른 장교들이 서둘러 요한을 끌어내어 원위치로 복귀시킨다. 나중에 유보트가 지브롤터 해협 바닥에 처박혔을 때 요한은 잠수함을 구해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러한 예상된 영화적 설정(이탈→기여)과 무관하게 실제 잠수함전에서 요한처럼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승조원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상적으로 불편과 공포를 대면하는 군인이 언제나 군인정신으로 무장해 빈틈을 보이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쩌다 그렇지 않다고 하여 이상한 것이 없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규율한다는 점에서도 전쟁의 비극이 목격된다. 전쟁은 언제나 사악하다.
 
  < das Boot >의 요한.

< das Boot >의 요한. ⓒ 특전유보트

   
사실주의 열정이 만들어낸 영상
 

군사주의나 애국주의는 오히려 후방에 만연한다. 전쟁을 수행하며 국민을 동원하는 국가는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종 적국을 악마화한다. 그러한 악마화는 현실정치의 필요악이라고 하여도 문제는 적국 군인과 국민, 즉 인간까지 악마화하는 데에 전쟁의 더 큰 비극이 있다.

페터젠 감독은 처음 미국에서 시사회를 열 때 영화 첫 장면에서 '4만 명의 독일 유보트 승조원 중 3만 명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자막이 뜨자 미국 관객들이 환호성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뜨악했다고 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석이 점점 차분해졌고 영화가 끝나고 페터젠 감독이 무대에 오르자 기립 박수가 한동안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1980년대 초반에 2차 대전의 맞수인 독일이 만든 독일 군인에 관한 영화이니 얼마나 편견이 작용했을지 짐작이 간다. 미국 관객의 처음과 끝의 반응이 달라진 것은 이 영화가 보편적인 가치를 드러내 보이면서 무엇보다 반전의 메시지를 명확히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전 메시지를 정색하며 전하지는 않는다. 주장하지 않고 그저 보여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주의를 의미 있게 구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해도 좋겠다. 실제로 감독은 사실주의를 철저하게 염두에 두며 촬영했다. 페터젠 감독은 밸브 하나, 나사 하나까지 실제 유보트를 재현하도록 강박적일 만큼 노력을 기울였다. 앵글 때문에 부득이하게 잠수함 세트의 벽 일부를 치우고 촬영한 장면이 있지만 스테디캠을 개조한 카메라를 직접 몸에 휘감고 보호장구를 착용한 촬영감독이 세트 안을 뛰어다니며 장면 대부분을 찍었다.
 
  < das Boot >의 한 장면.

< das Boot >의 한 장면. ⓒ 특전유보트

 
관객의 허를 찌르는 마지막 장면은 의미론상의 백미이다. 천신만고 끝의 귀향은 조국의 무력함이 배경으로 깔리며 유보트의 침몰로 귀결하고, 함장은 침몰하는 자신의 배를 보며 숨을 거둔다. 영화는 질질 끌지 않고 지체 없이 막을 내린다.

이것을 반전 메시지라고 해도 좋겠지만, 전쟁 영화를 넘어서 삶의 통찰을 전하는 당혹스럽고 낯선 예술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 das Boot >는 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설정한 오디세이아이다. 그리스 서사시와 달리 현대의 오디세이아는 비루하고 비참하다. 그들은 귀향을 꿈꾸었고 혼신의 힘을 다해 귀향했지만 고향은 애초에 없었다. 

글 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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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미술, 춤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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