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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내일부터는 10원 더 떨어져요."  

저울에 찍힌 무게는 27kg. 김정희(가명) 어르신은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손에 쥐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차곡차곡 모은 폐지는 1kg당 100원도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고물상 주인은 넌지시 가격 인하를 알렸다. 김씨는 익숙하다는 듯 대답을 하고 다시 폐지, 캔을 수거하러 떠났다.

지난 4월 19일,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있는 한 건물 앞에서 김정아 어르신을 포함한 세 명이 깨끗한 박스를 켜켜이 쌓은 리어카를 옆에 두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잠시 뒤 도착한 SUV 차량에서 '러블리페이퍼' 기우진(40) 대표가 내렸다. 기 대표는 자동차에서 저울을 꺼냈다.
 
4월 19일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왼쪽)가 폐지 무게를 재고 있다. 이동규 어르신(오른쪽)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4월 19일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왼쪽)가 폐지 무게를 재고 있다. 이동규 어르신(오른쪽)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주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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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이 먼저 오셨어요?"라는 물음에 김씨가 손을 들었다. 기 대표는 김씨의 리어카에 쌓인 박스를 저울로 옮겼다. 저울에 찍힌 무게는 50kg. 김씨는 1만 5000원을 받았다. 1kg당 300원으로 고물상에서 받은 금액보다 3배 높은 가격이다. '폐지 수거'라는 동일한 노동을 했지만 받는 가치는 달랐다.

러블리페이퍼(Lovere paper)는 1kg당 300원에 어르신이 수거한 폐지를 매입해 미술용 '캔버스'를 만들어 판매한다. 이날은 기 대표와 폐지 수거 어르신 사이의 거래가 이뤄지는 날이었다. 어르신들은 본인의 폐지를 저울에 달고 그 자리에서 돈을 받는다.

기 대표는 준비한 장부에 거래 내역을 적고 어르신에게 확인 서명을 요청한다. 주름진 손으로 서명을 하는 어르신들은 기 대표에게 폐지를 팔고 다시 빈 리어카를 끌려 했다. 이날, 어르신들이 빈 리어카를 끌고 다시 골목으로 돌아가기 전 기 대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동네를 깨끗하게 만드는 멋진 일

"나는 행복하게 일해요. 걸음도 못 걷고 병원이나 다니면 얼마나 고생이야. 그거에 비하면 나는 이렇게 일하는 게 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나이에 비해 정정해 보이는 조익중(가명) 어르신 모습에 기자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어르신은 어깨를 쭉 펴고 말했다.

"나는 어디를 가든 내 나이로 안 봐."

매일 새벽에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온종일 동네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꾸준히 폐지를 수거한다. 가끔 경비 일도 한다고 했다. 그는 '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함께 있던 어르신들도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내가 움직이고 그런 때가 좋은 거지. 몸이 안 좋아서 집에만 들어앉아 있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야."
 
이규산(가명) 어르신 말투에서 당당함이 묻어 나왔다. 이씨를 비롯한 세 명은 "폐지를 수거하는 모습을 안타까운 시선보다 '동네를 깨끗하게 만드는 멋진 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고 입을 모았다.

"저번에 병을 싣고 마트를 가는데 젊은 사람이 '이거 받으세요' 말하면서 뭘 주는 거예요. 눈이 침침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그게 뭐예요' 하고 물으니까 만 원짜리 지폐를 줘요. '나 이런 거 안 받아요. 다 돈 벌기 힘들어요. 수월하게 버는 사람 없어요' 하고 안 받았어요."

폐지를 줍는 일은 구걸이 아니다. 노동이다. 자원순환을 통해 동네를 깨끗하게 만들고, 환경도 지키는 중요한 일이다. 어른신들의 노동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자원순환을 위해 써야 할 지자체 예산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 대표 역시 어르신들과 같은 생각이다. 폐지 수거에 대한 정당한 노동 가치 부여와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 노인 빈곤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실제로 어르신들이 자원순환의 약 20%를 감당하고 있고, 그 덕분에 OECD 국가 중 재활용률 2위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르신들의 폐지 수거를 푼돈 버는 일, 연민의 감정이 드는 일로 볼 것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하고 가치를 부여할 때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 사회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을까? 

러블리페이퍼 대표의 제안
 
러블리페이퍼 사무실 앞에 '쌀 포대 가방'에 재활용할 쌀 포대가 쌓여 있다.
 러블리페이퍼 사무실 앞에 "쌀 포대 가방"에 재활용할 쌀 포대가 쌓여 있다.
ⓒ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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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우리 사무실 앞에 쌀 포대가 많이 쌓였어요. 저희랑 같이 일하실래요?"

기 대표가 폐지를 팔러 온 어르신 세 분께 건넨 제안이다. 러블리페이퍼는 지난해부터 학교, 공공기관 급식실에서 버리는 쌀 포대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쌀 포대를 재활용해 '쌀 포대 가방'을 제작해 판매한다.

그는 쌀 포대 가방 제작 과정에서 새로 생긴 일자리를 폐지 수거 어르신에게 제공했다. 안전한 노동 환경을 제공하고 노동에 합당한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서다.

쌀 포대가 많이 쌓였다는 기 대표의 말을 듣고 직접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있는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을 방문했다. 사무실 문 앞에는 쌀 포대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기대표가 폐지 어르신에게 제안했던 업무는 무질서하게 접혀 있는 쌀 포대를 판판하게 다시 접는 일이었다.

쌀 포대 더미를 지나 러블리페이퍼로 들어갔다. 사무실 내부 오른편에 캔버스 작업장이 있다. 환기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은 작업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재활용 캔버스 앞에 세 명의 기술자(정엽분, 박연순, 황윤심)가 있다. 특히 정엽분, 박연순 어르신은 폐지 수거 일을 하던 중 기 대표를 만나 지금은 러블리페이퍼 소속이 됐다.

고물상보다 비싸게 매입한 폐지를 캔버스 크기로 잘라 3개씩 겹친다. 그 위에 하드보드지를 덧댄다. 폐지 표면에 풀을 발라 캔버스 천을 덧대면 재활용 캔버스가 완성된다. 주문 들어온 크기로 폐지를 자르는 것부터 천을 덧대기까지 모든 과정에 어르신 세 분이 참여한다.

"자 쉬는 시간예요. 우리 10분만 쉬어요."

작업반장 역할인 황윤심씨가 두 어르신에게 말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도 두 어르신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차를 가져와 손에 쥐여주자 그때서야 천천히 작업을 멈췄다. 2019년부터 일한 베테랑 작업자들은 휴식 시간을 잊을 정도로 워커홀릭이다.

"제가 이렇게 말해야 쉬세요. 50분 정도 일하면 10분씩 꼭 쉬어야 하는데 쉬는 시간이라고 말 안 하면 계속 일 하세요."
 
정엽분 어르신과 황윤심씨가 작업실에서 캔버스를 제작하고 있다.
 정엽분 어르신과 황윤심씨가 작업실에서 캔버스를 제작하고 있다.
ⓒ 러블리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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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엽분, 박연순 어르신은 3년 남짓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러블리페이퍼에서 일하게 됐다. 러블리페이퍼도 작업 체계를 견고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새로 고용된 어르신들에게 더 쉽게 작업 과정을 알려주고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3년 동안 대표님 명함을 꼭 쥐고 있었어. 길에서 박스 줍다가 대표님 만났는데 음료수 주면서 먼저 말을 걸길래 '뭐 하는 양반인가' 생각했지. 나중에는 명함 주면서 자기랑 같이 일하자고 얘기하더라고. 몇 달만 기다리면 될 줄 알았는데 1년, 2년 지나가니까 허풍인가 생각했어. 그런데 정말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오더라고."
 
어르신들은 주 5일 동안 낮 한 시에 출근해 오후 네 시 혹은 다섯 시에 퇴근한다. 회사가 있는 갈월동에서 집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6시로 저녁 식사 시간이다.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내냐는 물음에 진지한 눈빛으로 "집에서도 여기 와서 일하는 것만 기다려요"라고 박씨가 말했다. 옆에서 동료의 대답을 듣던 정씨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몇 마디 덧붙였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따분해. 여기 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표님도 있어서 재밌어. 일이 어렵지 않아서 힘들지도 않아. 누가 우리 같은 노인들한테 일자리를 주겠어. 대표님한테 정말 감사해."

어르신들은 회사로부터 택시비를 지원받는다. 그럼에도 궂은 날씨가 아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걷는다. 또한 주말에도 소일거리 삼아 폐지를 수거한다. 낡은 유모차에 지탱하며 계속 몸을 움직인다. 어르신들에게 폐지 수거 노동과 러블레이퍼에서 제공하는 일자리는 아직 몸을 움직일 수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증거다.

'폐지 수거 어르신' 아닌 '자원 재생 활동가'
 
4월 19일, 김정희 어르신이 고물상에 폐지를 팔러 가고 있다.
 4월 19일, 김정희 어르신이 고물상에 폐지를 팔러 가고 있다.
ⓒ 주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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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일할 수 있는 어르신들이 일상 유지를 위해 돈벌이에 나섰다. 그런데 노동시장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그들을 외면했다. 결국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었다. 폐지를 수거하는 노동이다.

그런데 일하기 위해 도로로 나온 어르신들의 교통사고 사망사고가 이어지면서 '노인 빈곤'을 사회적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문제 인식과 더불어 안전 대책 마련과 함께 안정적인 일자리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등장했다. 그런데 제대로 된 폐지 수거 노인 인구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여전히 대책으로 단순 물품 지원을 내놓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기 대표는 물품 지원과 함께 "폐지 수거를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 새로운 노인 일자리 창출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러블리페이퍼와 함께 폐지 수거 어르신을 만나본 결과 그들은 자신의 일상에 자부심을 느끼는 직업인, 사회구성원이었다. 우리나라 자원순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사회 전반에 조금씩 싹 트고 있다.

2019년 국립생태원에서 폐지 수거 어르신에 대한 명칭 변경 공고를 냈다. 이때 새롭게 지어진 명칭이 '자원 재생 활동가'이다. 사회구성원 중 한 명이 생각한 이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폐지 수거 노동을 하는 어르신에 대한 시선이 천천히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2021년 <인천시 재활용품 수집 노인 및 장애인 실태조사>에서도 "재활용품 수집 자체에 대한 사회, 경제, 환경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결론 내렸다.

대다수 사회문제는 '구조'에 접근해야 해결이 가능하다. 시혜적인 관점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폐지 수거 어르신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노동의 가치는 당신이 연민의 마음으로 건네는 만 원짜리 지폐에 담을 수 없다. 그들의 노동으로 깨끗해진 거리, 순환되는 자원에 주목할 때 근본적 문제 해결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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