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5 11:59최종 업데이트 22.04.2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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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 국회의장이 22일 오후 국회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검수완박' 법안 중재안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박 의장,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 공동취재사진

 
포성은 멈췄지만, 전운은 가시지 않았다. 수사·기소 분리에 관한 여야 합의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갈등과 충돌의 전조가 보인다. 묘수인 듯하면서도 맹점이 있는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의 딜레마다. 그조차도 실현되려면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박병석 중재안'의 딜레마

"괴롭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다. 저쪽에서 잔머리를 굴린 것 같다. 사개특위(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이 제때 안 되면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 설립도 안 되고 검찰 직접수사도 계속될 수 있다. 시한을 명문화하지 않으면 합의가 깨질 수도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의 탄식이다. 그의 말은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의 답답한 속내를 대변하는 듯싶다. '합의'라는 명분으로 국회의장 중재안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미심쩍고 불안한 것이다. 지지자들은 수용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다소 느긋한 편이던 국민의힘 분위기도 심상찮다. 애초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힘이 없어 다 막지 못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도 보완수사권 유지를 주요 '전과'로 꼽았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가 "최고위 재검토"를 언급한 데 이어 "입법 독주를 우려한다"는 윤석열 당선인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합의 파기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수사·기소 분리에 대한 반대여론과 별개로 민주당이 밀렸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절충안의 한계 탓이다. 절충은 양보와 타협이다. 양쪽 주장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다. 이쪽에서 하나를 빼면 저쪽에서도 하나를 빼야 한다. 우리 쪽에서 하나를 얻으면 반대쪽에 하나를 내줘야 한다. 공평한 것 같아도 공격수가 수비수에 비해 밑지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국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형사사법체계 개혁이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냐는 것이다. 양쪽 다 '국민'을 내세웠다. 한쪽은 검찰 수사권 폐지가 국민에게 이롭다고, 다른 한쪽은 검찰 수사권 유지가 국민 피해를 막는다고 주장했다. 합의안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용은 공정하지도 정교하지도 않다.

수사·기소 분리의 핵심은 검찰 직접수사를 폐지하는 것이다.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라는 분권형 구조의 정착이다. 그 점에서 이번 합의문은 50점짜리다. 물론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 관점에서 말이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는 방향은 정했지만, 구체적 방안이 미흡한데다 실효성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원안, 즉 민주당 안에서 너무 많이 후퇴했다. 민주당이 제출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의 핵심은 경찰을 오롯이 수사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검찰은 예외적으로 경찰관과 공수처 공무원 범죄를 수사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직접수사가 폐지된다. 이른바 6대 중대범죄 수사권은 신설 중수청으로 넘어간다. 공소 전문기관으로 거듭나는 검찰은 보완수사나 재수사 요청, 시정조치 요구 등으로 경찰 수사를 감독한다. 가장 강력한 견제 수단인 영장청구권은 유지하되 경찰의 신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합의안은 이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국민의힘의 속셈

2018년 청와대 주도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질 때 경찰은 명분을, 검찰은 실속을 챙겼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다. 단순하게 평하자면, 민주당은 명분을, 국민의힘은 실속을 챙겼다.

수사·기소 분리 원칙을 제시하고 '검찰의 직접수사권은 한시적'(합의문 1항)이라고 못 박은 것은 민주당의 성과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실천 방안이 탄탄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구체성도 부족하다. '한시적'이라는 추상어부터 떨떠름하다. '검찰 외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 대응 역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폐지한다'(2항)는 문구도 모호하다. '일정 수준'이라니... 이는 '중수청(한국형 FBI)이 출범하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폐지한다'는 5항과 상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합의문 8개 항 중 본안은 5개다(2~6항). 나머지 3개는 선언문 또는 시행령 성격이다. 본안 5개 항 중 4개 항은 검찰 권한과 관련된 것이다. 직접수사(중대범죄) 영역을 축소한 2항, 중대범죄를 수사하는 반부패강력수사부(특수부 후신)의 조직과 인원을 감축한 3항, 보완수사를 유지하면서도 제한한 4항은 동전 앞뒷면처럼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성과이자 한계다. 양쪽이 서로 현실적인 차선책이라고 여길 수 있다. '공수처 공무원이 범한 범죄는 검찰 직무에 포함한다'는 6항은 민주당의 검찰청법 개정안에 포함된 내용이라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런데 중수청 설치와 관련된 5항은 성격이 다르다. 향후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의 태도에 따라 정쟁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사개특위 구성이 중수청 설치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특위 구성 후 6개월 내 입법한 후 1년 이내에 발족한다'는 규정은 시한을 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함정이 있다. 특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중수청 설치가 무한정 늦춰지거나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중수청이 설치되지 않으면 검찰의 직접수사는 지속되고 수사·기소 분리는 물 건너가게 된다. 여야가 사개특위를 통해 중수청 법안에 합의하더라도 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변수다.

국민의힘이 거둔 성과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와 제한적으로나마 직접수사권을 지켜낸 것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부패와 경제범죄를 사수하고, 검-경간 균형과 견제의 최후 수단인 99% 범죄에 대한 보완수사권, 즉 2차적 수사권을 지키기 위해 버텼다"는 권 원내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시간 끌기 속셈도 엿보인다. 권 원내대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검찰의 직접수사권이 자동으로 소멸하게 하려는 민주당의 부칙 시도를 막아내 '검수완박'을 저지할 시간을 벌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권 폐지에 순순히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내비친 셈이다. 그러잖아도 폐지 시한을 부칙으로 못 박지 않아 찜찜해 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맥 빠지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발상의 대전환

물론 양당의 정치적 득실 비교는 부차적인 논쟁이다. 논쟁의 본질은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시각차다. 반대론자들은 수사·기소 분리 또는 검찰 수사권 폐지가 형사사법체계를 무너뜨린다고 우려한다. 주로 검사 우위의 형사사법체계를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된 논거는 경찰 불신이다. 이들에게 경찰은 '무능하고 무식하고 무도한' 집단이다. 언제까지나 검찰의 지휘 또는 사법통제를 받아야만 하는 미숙아다. 검사가 주도하는 수사라야 믿을 만하고, 검찰만이 정치권력을 수사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게 반대론의 핵심이다.

그런데 상식적인 주장일까? 수사·기소가 분리된 영미법 체계 국가들은 물론 검사가 수사권을 가진 대륙법 체계 나라들조차 실제 수사는 대부분 경찰 몫이라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한다. FBI(미국 연방경찰)는 정치인 수사를 못 하나? 검사 주도 수사의 장점과 수사·기소 결합의 폐해를 저울질하면 어느 쪽으로 추가 기울어질까?

정치권력 수사는 검찰만이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양날의 칼이다. 바로 이 점 때문이라도 검찰 직접수사는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다. 어느 정치세력이든 정권을 잡으면 검찰을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정권 힘의 잣대이기도 하다. 검찰이 정치보복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다. 그 유혹을 없애는 방법은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분산해 힘을 빼는 것이다. 이는 특정 정권과 상관없는 일이다. 권검유착이나 검언유착 시비가 줄어드는 건 덤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경찰청과 국가수사본부 ⓒ 권우성

 
그런 맥락에서 중수청 설치를 두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은 저급한 논쟁이다. 중수청이 정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전 정권 비리를 수사하게 되더라도 수사‧기소 분리의 대원칙과 견제와 균형 원리에 비춰 설치하는 게 옳다. 공수처에 준하는 지위와 권한을 부여하되 독립적인 수사를 보장해야 한다.

검찰의 수사·기소권 남용과 지독한 조직이기주의, 제 식구 감싸기는 선을 넘은 지 오래다. 전관특혜로 인한 법조시장 교란과 사법정의 훼손도 심각한 폐해다. 국민 누구나 사건이 터지면 검찰 인맥부터 찾고 검사와 가까운 변호사를 선임해 공적인 문제를 사적으로 해결하려 든다. 그런 변호사 몸값은 당연히 비싸다. 불공정의 온상이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돈 없고 '빽' 없는 서민만 피해를 본다"는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검찰개혁 취지에 아랑곳없이 오로지 경찰의 부실수사 타령만 하는 일부 변호사나 법학자들을 보면 딱하다. 그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지는 않으나 직역이기주의나 주관적 경험에 치우쳐, 또는 법 기술적인 면에 치중해 대의를 외면하는 게 아닌지 안타깝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수사‧기소 분리라는 합의문 취지를 살리려면 검찰의 직접수사 폐지 시한을 명문화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미 합의안에 반영됐지만, 추가 수사나 별건 수사를 금지하는 선에서 경찰 송치사건에 대한 보완수사를 허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반대여론이 만만찮은 만큼 민주당도 원안 고수가 최선이 아닐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검찰개혁 완수와 민주당 정상화 촉구 촛불연합 문화제'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서창식

 
무엇보다도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수사‧기소 분리는 형사사법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사법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경찰 수사의 문제점은 제도와 인력으로 보완하면 된다. 경찰이 부족한 점은 검사가 지적하고 이끌어주면 된다. 사법선진국에서 검찰과 경찰이 왜 협력관계인지 성찰해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부작용만 걱정하는 건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지금도 검사들 대부분(형사부)은 경찰 송치사건에 대한 점검과 보완업무에 종사한다. 일부 부서 검사들의 직접수사 여부를 놓고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비분강개하는 것은 어색하다. '국민 타령'에 국민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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