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앵커> 장면

영화 <앵커> 장면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렇게 아이를 키워내는 과정을 통해 부부는 부모로서 또 성장하게 된다. 육아는 결코 쉽지 않지만 아이의 웃음 한번에 그런 마음이 사라진다고 부모는 종종 이야기한다. 그만큼 그 과정 자체가 삶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힘든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직장이나 일 때문에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육아 휴직제도를 이용하고 또 개인 연차 휴가를 이용할 수 있지만 눈치가 보인다. 직장 여성들이 육아를 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다. 인식과 제도 측면에서 더 많은 유연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방송사 간판 앵커의 두려움

영화 <앵커>는 방송사의 간판 앵커로 자리 잡은 세라(천우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방송사 9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간판 앵커다. 어느 날 자신에게 온 전화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하던 중 제보자와 그의 딸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사건을 통해 정신과 의사 인호(신하균)를 만나게 되고 이상한 점을 느낀 세라는 계속 그 사건에 매달리고 이상한 환영까지 보게 된다. 엄마 소정(이혜영)의 잔소리는 더 심해진다. 세라가 제보자의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소정과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어 버린다.
 
 영화 <앵커> 장면

영화 <앵커> 장면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는 세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엄마 소정도 영화의 중요한 동력이다. 이 모녀 관계는 소정이 세라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혼자 키운 소정의 입장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는 측면이 있다. 영화가 후반부에 공개하는 엄마 소정에 대한 반전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형태로 이야기를 구성했지만 영화는 내내 엄마 소정의 사연을 공개하기 위한 디딤돌을 놓기 바쁘다.

세라는 9시 뉴스 진행자로 자리 잡았지만 무척 불안해 보인다. 후배는 그를 견제하고 기회만 되면 자신이 돋보일 기회를 찾는다. 영화는 그 과정에 세심하게 집중한다. 또한 세라는 남편과 아이를 만들어 키우는 것에 이견이 있다. 세라는 아직 아이는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세라는 이제 겨우 올라간 간판 앵커 자리를 뺏기기 두렵다. 만약 임신을 하게 된다면 그동안 이루어놓은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는 수많은 대체자 중 한 명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세라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자신의 경력이 망가지는 모습이 수업이 그려질 것이다.

영화는 세라가 겪는 불안을 통해 사회가 직장 여성에게 주는 불안을 잘 표현했다. 직장에서 아무리 잘나가는 여성이더라도 임신과 육아의 과정을 거치면 경력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다시 일을 시작할 즈음이 되면 중요한 자리에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앉아 있다. 최악의 경우, 직장에서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 분위기 탓에 결혼을 했더라도 쉽게 임신의 단계로 발을 내딛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 속 세라가 겪는 혼란스러움이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긴다. 
 
 영화 <앵커> 포스터

영화 <앵커> 포스터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정신과 의사 인호는 믿을 수 없을 얼굴을 하고 있다. 그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인지에 대한 판단을 뒤로하고 그가 세라를 환자로 대하는 과정을 보면 세라가 겪고 있는 불안감을 잘 알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그가 세라에게 더 아픈 상처를 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도우려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점을 통해 세라 주변의 사람들 또한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주변 동료들은 임신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임신한 동료 앞에서 얼굴을 바꾼다. 그것도 세라의 불안감을 더 크게 만드는 요인이다.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감

영화 <앵커>는 결국 한국 사회에서 직장 여성이 겪어야 할 사회적 불안감에 대한 영화다. 출산율 자체가 낮아지고 있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 세라의 엄마 소정의 이야기를 통해 이 문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여자라는 존재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받는 사회적 불안감이 세습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이유다. 

세라 역을 맡은 배우 천우희는 실제 뉴스 진행을 해도 될 만큼 좋은 발성 연기를 보여준다. 엄마 소정 역을 맡은 배우 이혜영은 오랜만에 극장 개봉 영화에 모습을 드러냈다. 꽤 차갑게 딸을 관리하고 제어하는 모습의 엄마를 연기하고 있는데, 어떤 때는 따뜻하지만 어떤 모습은 섬뜩하게 느껴진다. 정신과 의사 인호 역의 신하균도 선한 이미지와 악한 이미지를 오가며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이 영화를 연출한 정지연 감독은 주로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커리어를 쌓아왔다. <봄에 피어나다>라는 단편영화로 2008년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대상을 수상했고, <소년병>으로 영등포국체초단편영화제 SESIFF 심사위원 특별상을 타기도 했다.

그가 연출한 장편 영화 <앵커>는 말하고 싶은 주제와 문제의식이 분명한 영화다. 다만, 예측 가능한 결말이나 반전이 아쉽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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