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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사팀장에게 메일 보냈어요, 휴직한다고.'

친한 동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며칠 전 점심에 만나 밥을 먹고 얼굴을 보았을 때만 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터라 조금 놀랐다. 그녀가 근무하는 부서의 관리자들이 회사 내에서는 꽤나 악명 높은 사람들이라서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힘들어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대화의 주된 내용은 상사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주로 타깃이 되어 들볶이던 다른 직원들은 견디다 못해 이미 휴직 중이다. 그간 동료에게 요즘은 좀 어떠냐고 안부를 물을 때마다 '나이가 마흔이 넘으니 좋은 점은 예전 같으면 참지 못했을 것 같은 일들이 참아진다'고 웃으며 말했던 그녀이다. 웃을 때 눈이 반달이 되는, 타고나기를 '온순' 그 자체인 그녀도 이제 더는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녀가 당면한 고통의 정도가 유리창에 끼얹어진 차가운 물처럼 선명하게 비쳤다.

'역량이 안 되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선생님 정도니까 그 정도 버틴 거지.'


상처받은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다 여기며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내던질 정도로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는데 상처를 가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알기는커녕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나약하다고 혀를 끌끌 차며 위세가 등등하다. '안 자고 안 먹고 허리 부러질 듯 공부해'서 발을 디딘 이 세계가 이토록 정의롭지도, 우아하지도 못할 줄 알았더라면 그녀는 차라리 더 자고, 더 먹고 허리는 펴고 공부도 덜 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의 휴직 소식은 어쩌면 그렇게 놀랄 일도,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나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에 맞추어 휴직을 할지 고민 중에 있다. 그런데 이번 동료의 휴직의 방아쇠가 당겨진 결정적 계기가 육아 때문이 아닌 사람 때문이라서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최근 또 다른 동료도 휴직원을 제출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라서 더 마음이 동요했는지도 모른다.

육아 때문에, 라는 구실일 뿐 실질적 이유는 따로 있고 조직에 대한 실망감이 바로 그 이유이지 않을까 하고 짐작한다. 그간 그녀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그녀는 노력하는 만큼 인정받지 못하고 챗바퀴만 돌리는 다람쥐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승진은 못하고, 실직적으로 상사의 역할을 감당하자니 동료들과의 갈등도 불거진 모양이다.

나는 회사와 동등하고 싶다

인정은 요구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인정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Give and Take, 주는 게 있었으면 받을 것도 있어야 한다. 헌신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디든지 할 수 있지만 회사는 아니다. 나는 회사와 동등하고 싶다. 짝사랑의 상대가 회사라면 최대한 빨리 마음을 접는 것이 좋다.

승진을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승진하고 싶은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내가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지금 그 자리에 계신 분들은 나처럼 꽉 막힌 고속도로에 갇혀 본 적 없이 뻥 뚫린 탄탄대로만을 달려온 것일까? 그 위치에 앉고 보니 마음이 달라진 것일까?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나만 아니면 회사는 아무 문제없는 걸까? 

고민 섞인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른 사람의 휴직 소식에 뭐 그리 열을 올리나 싶기도 하지만 조직이 변하지 않으면 동료들을 힘들게 했던 그 이유들이 내 일이 될 수도 있음이다. 일이 힘들었을 땐 견뎌냈던 그들이다.

휴직이라는 제도를 십분 활용해서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다만, 휴직은 내가 정말 필요할 때, 몸의 치료를 위해, 아이를 돌보기 위해 계획적으로 활용하고 싶다. 그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음 인사 철에는 어디 부서로 이동하면 좋을지, 갈 만한 곳이 없다며 자조 섞인 농담으로 서로를 위로했던 우리였다. 

한 숨 돌리고, 마음의 소란이 가라앉고 나면 동료들이 다시 돌아올 이곳이, 내가 발 붙이고 있는 이곳이 조금이라도 나은 곳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뿐이다. 그들이 퇴직이 아닌 휴직을 하는 것도 조금의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은 너무 쉽고 다른 사람에게 향할 때는 더 가볍다.

취직하기 위해 공부한다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편히 잠들지 못했던, 불투명한 미래를 끌어안고 고군분투 했을 스물 언저리 그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반짝거렸던 그들의, 우리들의 청춘이 이곳에 스며있어 쉬이 떠나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렸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발행된 글입니다. 브런치by달콤달달


태그:#직장인이야기, #일과삶, #반짝이던날, #지친마음, #퇴직말고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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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보았다가도 또 생각나서 찾아 읽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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