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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8년 동안 서울댁·부산댁 언니들과 함께 얼마나 많은 냥이를 모셨는지 숫자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들다. 왜냐하면 길냥이의 삶은 대단히 압축적이기 때문이다.

집냥이의 평균 수명은 12~15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길냥이의 평균 수명은 대략 2~3년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어린 길냥이의 경우 절반 이상이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특히 늦가을에 태어난 냥이들은 혹독한 겨울을 제대로 견디기 힘들다. 아무튼 길냥이의 삶은 늘 죽음과 맞닿아 있다.

8년 전 내가 귀농했을 때부터 현재까지도 마을에 생존해 있는 냥이는 딱 두 마리뿐이다. '코리안 숏헤어(일명 코숏)' 중 '고등어태비'인 유비·관우는 8년 전에는 어린 냥이였는데, 현재는 마을의 원로다. 여기에서 태비(Tabby)란 단어는 이라크에서 만든 줄무늬 실크에서 따온 말로, 태비 고양이의 독특한 털 무늬를 의미한다.
  
 우리 마을 최고 원로 냥이 관우
  우리 마을 최고 원로 냥이 관우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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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유비·관우·장비 이렇게 삼 형제였다. 하지만 4년 전 장비는 허피스바이러스(일명 고양이 감기) 2차 감염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삼국지의 내용처럼 관우가 먼저 형제들의 곁을 떠날 것이라고 늘 예언했지만, 죽음의 순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법이다.

갑작스러운 이별

사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원로 냥이는 세 마리였다. 코숏 중 '카오스'에 속하는 '청산'이가 유비·관우와 함께 마을에서 잘살고 있었다. 자매인 '나비'는 몇 년 전 마을에서 갑자기 사라졌지만, 청산이는 죽음의 그림자를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다. 자매의 이름은 시조인 '나비야 청산가자'에서 따왔다.

어쨌거나 이 청산이가 마을에서 사라진 건 온전히 남편 탓이다. 남편이 읍에 볼일이 있어서 1톤 트럭을 타고 내려갔는데, 적재함에 청산이가 타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 싸늘해지기 시작하면, 냥이들은 햇볕을 받아 따듯해진 트럭의 적재함에 드러누워 있길 좋아한다.

내가 남편에게 누누이 이 얘기를 하면서, 트럭을 운행하기 전에 적재함을 꼭 확인하라고 주의를 줬는데도, 이 인간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차를 출발시켜버렸다. 목적지에 도착한 남편이 차에서 내렸을 때, 청산이는 적재함에 배를 대고 납작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당황한 남편이 어, 어, 하면서 이름을 불렀지만, 청산이는 적재함에서 뛰어내려 읍에 있는 야산으로 도망쳐 버렸다. 남편은 볼일도 보지 않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마침 나는 주차장 근처에서 냥이들에게 사료를 조공하고 있었다.

"저기, 저. 혹시 청산이 마을에 돌아왔어?"
"그게 뭔 소리야? 어디 따뜻한 데서 놀고 있겠지."


남편이 내 눈치를 살피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청산이는 내가 귀농했을 때 갓 태어난 냥이라서 애지중지하며 모시던 녀석이었다. 내 눈빛에서 뭘 봤는지 남편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하며, 청산이를 찾는답시고 허둥대다가 냥이들의 밥그릇까지 뒤엎고 말았다.

그날부터 일주일 내내 강제 이주된 지점에서 서성이며 이름도 부르고, 야산을 간식으로 촘촘히 포위도 해봤지만 끝내 청산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청산이가 좋은 집사를 만났기를 기원할 뿐이다. 청산이에게 각별한 애정이 있었지만, 남편을 들들 볶지는 않았다.

그때쯤에는 길냥이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조건에서는 인간의 사소한 친절조차도 냥이에게 시시각각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현상은 어제는 안전 요소였는데 오늘은 위험 요소로 변할 수도 있어서, 길냥이에게 주어진 삶이란 생존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규정을 만드나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규정이 좀···."


총무계장은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어떤 일이 있어도 밀어붙이려고 마음먹은 터라, 총무계장의 반응에 공감하며 물러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 도로의 가로수인 산수유나무 그늘 밑에서 어르신들이 자주 쉬신다구요. 그런데 내리막길이라 어떤 차들은 거의 70km 정도로 미친 듯이 달린다니까요."
"이장님, 그건 잘 알겠는데요. 근데 내리막길에는 규정상 과속 방지 턱을 설치하는 게 어려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과속 방지 턱 문제로 대화했을 때도 총무계장은 똑같은 말을 했었다.
  
마을 앞 내리막길
 마을 앞 내리막길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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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장님! 그 길에서 로드킬 당한 고양이가 스무 마리도 넘어요. 그걸 보고 어르신들이 자신들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신다니까요."
"이장님, 얼마 전에 그 얘길 하시고 나서 제가 군청 담당 직원과 통화를 했거든요. 근데 내리막길에 과속 방지 턱을 설치하면 사고가 날 수 있어서, 규정으로 그걸 못하게 정해 놓았다고···."


"계장님, 만약에 어르신 한 분 장례 치르고 나서 그때 과속 방지 턱 설치하겠다고 하면, 마을 주민들 모두 도로에 드러누워서 절대로 과속 방지 턱 설치 못 하게 막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이장님, 규정이 규정이라···."


총무계장의 난처한 처지도 이해를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나도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냥이도 냥이지만, 마을 어르신들도 길 앞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상황이었다.

"계장님, 규정이란 게 누구를 위한 겁니까? 주민들을 위해 규정을 만든 거지, 규정 그 자체를 위해 규정을 만든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규정에도 뭔가 융통성을 발휘할 만한 구석이 좀 있지 않을까요? 경사도가 몇 도일 때 내리막길이라고 정의하나요? 그냥 우리 마을 도로가 경사가 좀 있다고 그걸 그냥 내리막길이라고 단정짓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잘 알겠습니다, 이장님. 일단은 내일 군청 담당자와 함께 다시 현장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내일 출발할 때 전화를 드릴 테니까, 내일 마을에서 뵙는 걸로···."


고양이 대학살

내가 귀농하기 3년 전에 귀촌한 서울댁 언니는 냥이 때문에 마을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도시에서 살 때부터 길냥이의 집사였던 언니는 거주지를 시골로 옮기고도 자신의 업무를 계속 이어갔다. 언니의 주장에 따르면 집사는 직업병 그 자체다. 어쨌든 생명에 위계를 설정해서 냥이들을 저기 말단에 있는 것으로 여기던 몇몇 동네 주민들은 언니를 도시에서 온 별종으로 여겼다.

개인적 캐릭터는 도도하고 교양 있는 여성이지만, 집사로서의 언니는 길바닥에서 아줌마들과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싸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건 언니가 농사로 잔뼈가 굵은 시골 아낙네들과 대적할 만큼 기가 센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언니가 귀촌한 이유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언니가 집사의 길을 선택한 건 삶의 조건으로 주어진 연약함과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생명의 본능 같은 것들을 길냥이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니의 고군분투에도 우리 마을에서 냥이들이 나름 태평성대를 이루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태평성세가 이어지고 있는 건 고대 중국의 요순 같은 고양이의 왕이 있어서도 아니고, 헌신적인 집사들 때문도 아니다. 그건 오직 냥이들의 타고난 성품과 기질 덕분이다. 삶에 대한 긍정과 생존을 향한 강렬한 투쟁심 같은 것들···.
  
인사 중인 '데이'와 'BGR'
 인사 중인 "데이"와 "BGR"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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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댁 언니와 내가 서울댁 언니의 집사 결사체에 가담하기 전에는 몇몇 주민이  가끔 냥이들을 억압하고 박해했다. 핍박의 이유는 다양했다. 고양이 똥이 밭에서 나뒹구는 게 꼴 보기 싫어서, 밭의 멀칭 비닐과 온갖 비닐을 찢어서, 아니면 데친 뒤 말리고 있는 고사리에 고양이 털이 들러붙어서 등등.

냥이 똥이야 명백한 시각적 증거물이라고 해도, 다른 경우마저 냥이를 범인으로 특정하는 건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족제비나 너구리 그리고 개도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으므로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냥이는 여론 재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런 것 외에도 그냥 울음소리가 싫다거나 눈빛이 소름 끼친다는 이유로 냥이를 공공의 적으로 여기는 마을 주민들도 간혹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다름'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과 거부를 토대로 이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너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이 냥이가 아니라 인간에 대해 이런 식으로 인식하고 행동한 결과의 한 예가 '아우슈비츠 대학살'이 아닐까 싶다.

내가 귀농하기 2년 전에 우리 마을에서 실제로 '고양이 대학살'이 일어났다. 세 명의 집사 중에서 서울댁 언니만이 이 엄청난 사건을 겪었다. 그 당시 언니는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해서 한동안 집사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 대학살은 고양이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을 정도의 잔인한 방법으로 진행됐다. 한마디로 인간의 광기가 만들어 낸 비극이었지만, 고양이를 상대로 벌인 일이라는 이유로 학살의 당사자는 자신의 행동이 광기에서 비롯됐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광기에 사로잡힌 괴물과 맞서 싸우려면 어느 정도는 괴물이 돼야 했지만, 냥이들은 결코 괴물 고양이로 변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사실 인간을 상대로 냥이들이 완승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고양이 대학살이 일어나고 2년 뒤 내가 귀농했을 때, 냥이들은 학살 이전보다 더 많은 숫자로 늘어나 있었다. 서울댁 언니의 헌신도 있었겠지만, 삶을 지속하려는 냥이의 투쟁심을 인간의 광기 따위가 꺾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냥이들이 승리했고, 학살을 주도한 몇몇 주민들은 낭패감에 휩싸여 쥐 죽은 듯 괴괴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채취한 두릅을 정리하는데, 옆에서 구경 중인 '아로'와 '니아'
 채취한 두릅을 정리하는데, 옆에서 구경 중인 "아로"와 "니아"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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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다가 함양으로 귀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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