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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많은 사람이 잊지 못하는 날이다.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해 많은 학생과 교사 그리고 여행객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는 희생된 학생들과 또래라서 그런지 매년 4월 16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무겁다.

지난 11일, 여러 가지 고민이 있던 친구와 대화를 나눴는데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친구는 "나는 이 시기가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잊히지 않는 사건이다. 

어떤 어른들은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기억을 지울 때도 되지 않았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할 때, 희생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진정성 있는 진상규명은 희생자들에 대한 작은 예의이며, 유족과 생존자에겐 위로의 시작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배가 침몰하는 상황임에도 자기 자신보다 친구들을 먼저 생각했고 걱정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복을 친구에게 양보한 학생들도 있었다. 그 어디에도 이기심은 없었고, 오직 이타적인 마음만이 있었다. 이러한 이타적인 마음은 10명의 교사에게도 있었다. 학생들을 인솔하던 교사 중 10명은 학생들의 생명을 지키고자 끝까지 배 안에 있었고, 매우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중 전수영 선생님은 2013학년도 중등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한 뒤 단원고등학교로 발령 받아 1학년 담임 교사를 맡았다. 1년 후인 2014년에도 학생들을 따라 2학년 담임교사를 자원했다. 전수영 선생님은 자신이 아끼던 제자들을 살리고자 "아이들을 구명복을 입혀야 한다"며 선실에 끝까지 남아 수색했다. 하지만 전 선생님은 정작 나오지 못하고 사건 34일 만에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로 발견됐다.

최혜정 선생님은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실력있는 교육자였다. 중등교사 임용고시에 합격 후 단원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고, 그 해 수학여행의 인솔교사로 참여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에 제자들을 먼저 구출시키고자 끝까지 배 안에 남았지만, 안타깝게도 순직했다.

그 당시 학생들과 함께 소통한 단톡방에서 그는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고 했지만, 이 말은 마지막이 됐다. 모든 교사가 그렇듯, 교직에 갓 입문했을 때 열정과 다양한 시도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친다. 최혜정 선생님도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역사수업을 꿈꿨을 것이다.

김초원 선생님은 2014년 당시 기간제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 순직으로 인정됐다. 그럼에도 특별히 안타까운 점이 있다. 김초원 선생님은 4월 16일이 생일이어서 학생들이 색종이에 쓴 편지를 받아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김 선생님은 학생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실에 남았고, 4월 16일 자신의 생일날 편지도 읽지 못한 채 순직했다. 

순직한 교사의 삶을 통해 바람직한 교사상을 생각해보게 된다. '좋은 교사'에 대한 기준은 교사마다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교사는 단순히 지식 전달의 기능을 넘어 삶 자체가 교과서가 되어야 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끝까지 학생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교사의 사명이며, 자세임을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이 희생된 교사들의 마지막 가르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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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뇌성마비 등 중도 · 중복장애에 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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