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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순직 교사 10명이 안장되어 있는 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묘역
 세월호 순직 교사 10명이 안장되어 있는 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묘역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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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묘역 11호부터 20호까지 10개의 묘는 모두 사망 날짜가 동일하다. 2014년 4월 16일. 사망 장소는 전남 진도, 소속은 단원고등학교로 모두 같다. 학생들을 구하고 숨져간 세월호 선생님의 묘다. 한날한시에 제자들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 선생님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은 모두 눈물겹다.

가장 먼저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고창석 선생님(순직공무원묘역 11)은 사건 당일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빨리 배에서 탈출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고 선생님은 2014년 3월 단원고 체육교사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세월호 참사로 변을 당했다.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1명이었던 고 선생님은 사고 발생 3년 만인 2017년 5월에 발견된 뼈 1점을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

유골은 침몰한 세월호 선체와 닿았던 해저면 특별수색구역에서 잠수사들이 호미로 땅을 파다 발견했다. 8월 19일에 침몰해역 2차 수중수색에서 일부 뼈가 추가로 수습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3년 7개월 만인 2017년 11월 11일 장례식이 치러졌고, 11월 13일에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제자들은 선생님의 짧은 머리카락이 고슴도치 같다며 '또치쌤'이라 불렀다.

나머지 9명의 교사는 2018년 1월 16일에 합동으로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양승진 선생님(순직공무원묘역 12)은 미수습자로 뼈 한 조각 찾지 못한 채, 사건 1313일 만인 2017년 11월 18일에 '시신 없는 장례'를 치렀다.

국가보훈처로부터 순직을 인정받아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지만, '유해 없이 현충원에 안장할 수 없다'는 관련 법 때문에 난관에 부딪혔다. 다행히 침대 밑 머리카락 등을 모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분석을 맡긴 결과 양 선생님의 체모로 확인되었고, 체모가 유해로 인정되면서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박육근 선생님(순직공무원묘역 13)은 미술 과목을 담당한 2학년 부장교사로, 참사 당시 4층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아이들을 탈출시키고 배 안에 남은 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4층 선실로 다시 내려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2학년 1반 담임으로 일본어를 가르쳤던 유니나 선생님(순직공무원묘역 14)은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할 때 탈출할 수 있는 5층 객실에 있었지만, 배가 기울자 4층 객실로 내려가 학생들을 탈출시켰다.

이어 3층에 있는 학생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3층으로 내려갔지만,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유 선생님의 시신은 세월호 3층 식당에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가 담임이었던 2학년 1반은 가장 많은 19명이 구조됐다.

첫 발령지로 2013년에 단원고에 부임해 1학년을 가르쳤던 전수영 선생님(순직공무원묘역 15)은 아이들을 따라 2학년 담임을 지원해 2학년 2반 담임을 맡았다. 전 선생님도 5층 선실에 있다가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4층, 3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사건 34일 만인 5월 19일, 287번째로 3층 주방과 식당 사이 출입문 근처에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수습되었다.
 
세월호 참사 7주기 세월호 순직 교사 기억식에 참석한 고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초원 선생님의 묘비 뒷면에는 1988년 4월 16일 경기 안양 출생,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순직이라고 적혀 있다. 김초원 선생님은 본인 생일에 세상을 떠났다.
 세월호 참사 7주기 세월호 순직 교사 기억식에 참석한 고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초원 선생님의 묘비 뒷면에는 1988년 4월 16일 경기 안양 출생,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순직이라고 적혀 있다. 김초원 선생님은 본인 생일에 세상을 떠났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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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였던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은 처음에 순직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3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아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김초원 선생님(순직공무원묘역 16)은 참사 당일이 생일이었고, 이틀 뒤인 18일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제자들이 선물한 귀걸이와 목걸이를 그대로 하고 있었다.

이지혜 선생님(순직공무원묘역 18)은 사건 당일 세월호가 기울자 교사 선실인 5층에서 제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4층으로 내려갔다.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학생들이 탈출을 시작하는 순간에도 본인은 구명조끼조차 입지 못했다. 이 선생님은 5월 3일에 4층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2014년 2월부터 단원고에서 교편을 잡아 5반 담임을 맡았던 이해봉 선생님(순직공무원묘역 17)은 침몰 당시 난간에 매달린 학생 10명을 구조했다. 2학년 8반 담임이었던 김응현 선생님(순직공무원묘역 19)은 학생들을 갑판 출입구까지 인솔해 대피시켰다. "큰 배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며 학생들이 있던 배 안으로 들어간 김 선생님은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5월 14일 학생들이 머물던 4층 선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2학년 9반 담임 최혜정 선생님(순직공무원묘역 20)은 5층 객실에서 학생들이 있는 4층 객실로 뛰어 내려갔다.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학생들과 함께하는 단체대화방에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끝내 나오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교 교사 11명 모두 순직으로 인정되었으나, 남윤철 선생님은 유족의 뜻에 따라 현충원에 안장되지 않았다. 남 선생님은 충북 청주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의사자로 인정돼 의사상자묘역에 안장된 세월호 선원 양대홍, 박지영, 정현선의 묘
 의사자로 인정돼 의사상자묘역에 안장된 세월호 선원 양대홍, 박지영, 정현선의 묘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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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의사자로 인정된 세월호 승무원 희생자 양대홍, 박지영, 정현선씨도 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묘역 바로 위 의사상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이들의 사망일자도 2014년 4월 16일, 사망 장소도 전남 진도다. 세월호 사무장이었던 양대홍(의사상자묘역 51)씨는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을 아내에게 남기고 침몰하는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승무원이었던 박지영(의사상자묘역 52)씨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탈출을 도왔고 배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 승무원이었던 정현선(의사상자묘역 53)씨도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의 구조를 돕고, 남아 있는 승객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본인은 구조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2018년 4월 5일, 7일, 8일에 차례로 대전현충원 의사상자묘역에 안장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 16일은 돌아오고, 이날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아 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묘역에서 순직교사 기억식이 열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시민미디어마당 협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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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평화통일교육연구소장(북한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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