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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4학년 우리반 아이들은 매일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 일기를 쓴다. 내가 손바닥만 한 메모지를 나눠주면 아이들은 거기에 짧은 일기를 쓴 후 칠판에 붙인다. 일기는 매우 사적인 글이지만 우리반에서는 서로의 일기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쓰는 일기는 조금 특별하다. 우리는 일반적인 일기가 아니라 '긍정일기'를 쓴다. 긍정일기란 오늘 하루 중 즐거움, 고마움, 뿌듯함, 설렘, 기대감, 재미, 보람 등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던 일에 대해 쓰는 것이다.

아이들은 코로나 세대인 자신들이 '운이 나쁘다', '불쌍하다'고 했다. 나는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포기와 체념이 익숙해지고 비관적인 말을 내뱉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였다.

긍정일기를 제안한 이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이들이 지금 이 시기에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이 꽤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했다.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관점은 바꿀 수 있다. 행복은 완벽하게 갖추어진 조건이 아니라 마음가짐에서 오는 것.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긍정일기다.

아이들에게 긍정일기를 써보자고 한 날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좋은 일이 없으면 어떻게 써요?"
"하루를 가만히 되돌아봐봐.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았던 적이 있을 거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아. 우리 곳곳에 있는 숨어 있는 행복들을 찾아 써보자."


그래도 아이들은 여전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내가 "예를 들어" 설명할 차례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라면 이걸 쓸 거야. 오늘 출근하는데 하늘이 아주 파랬거든. 하늘빛에 내가 흠뻑 적셔지는 기분이었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아 참 좋더라. 그리고 아침에 교실에 오니 일찍 온 친구들이 미리 교실 창문을 다 열어놓고 환기를 시켜준 거야. 선생님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해준 거지. 너무 고마웠어."
 
아이들이 쓴 긍정일기입니다.
 아이들이 쓴 긍정일기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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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제 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연필을 쥐었다. 처음 아이들이 쓴 긍정일기는 단순하고 내용도 비슷비슷했다.

'체육을 해서 좋았다.'
'친구가 지우개를 빌려줘서 고마웠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체육 시간에 뭘 한 게 좋았어?", "지우개는 어떤 친구가 언제 빌려준 거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면서 매번 이 말을 덧붙였다.

"두루뭉술하게 쓰지 말고 콕 집어서 써줘."

행복은 모호하지 않고 구체적이다. 행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약도가 아닌 세밀한 지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쉽고 빠르게, 그리고 자주 갈 수 있다.

긍정일기를 쓴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는 아이들이 하교한 뒤 교실에 혼자 남아 긍정일기를 천천히 읽는 시간이다. 인스타그램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볼 때는 솔직히 남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행복 같아 은근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반면 아이들의 행복한 순간을 모아 읽을 때는 마냥 미소가 지어진다. 작은 종이에 서너 문장으로 쓴 일기 안에도 아이들의 즐거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오고 난 다음 숲에 가니 숲냄새가 진하게 났다. 상쾌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숲에 가는 시간이 정말로 좋다.'
'선생님께서 보라색 히아신스와 노란색 수선화를 갖고 오셨다. 꽃향기를 맡아봤는데 엄청 향기로웠다. 하루 종일 교실에 향기가 가득했다. 선생님 감사해요.'
'미술 시간에 은율이가 그린 그림이 예뻐서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다. 그랬더니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 기분이 더 좋아졌다.'
'오늘은 그토록 기다리던 화요일이다. 화요일에는 아파트에 장터가 열려서 좋다. 콜팝을 먹을까? 소떡소떡을 먹을까?'
'오늘 처음으로 우리반 25명 친구들이 학교에 모두 나와서 너무 좋다. 코로나 때문에 못 왔던 친구들을 만나니 반갑고 기뻤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점점 섬세한 '행복발견자'가 되어갔다. 그래도 매일 일기 쓰는 것이 귀찮고 지겨울 것 같아 아이들에게 긍정일기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넌지시 물어봤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긍정일기 쓰는 게 재밌다고 했다.

"긍정일기가 좋은 건요. 행복했던 그때 기분을 또 느낄 수 있어서예요."

긍정일기에 쓴 슬픈 이야기

나는 쓰면서 한 번 더 느끼는 행복이 팬데믹으로 지친 아이들의 마음을 채워줄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들의 긍정일기를 보는데 이런 일기가 있었다.

"나는 오늘 정말 슬프다."

아이는 긍정일기에 슬프다고 썼다. 그날 아이는 학급임원선거에 나갔다 떨어졌다. 아이의 후보자 연설을 들어보니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니었다. 아이는 회장, 부회장 선거에 모두 나갔으나 아쉽게도 뽑히지 못했다.

일기는 한 문장이었지만 아이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왠지 모를 후련함을 느꼈다. 아이는 자신의 힘들고 속상한 마음을 애써 감추거나 덮어놓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 표현했다. 그것이 긍정일기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사실 전부터 긍정일기 쓰기를 여러 번 시도했었다. 그러나 번번이 오래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곤 했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슬플 때는 슬프다고 썼다면 나는 아마 긍정일기를 계속 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나는 한동안 덮어두었던 일기장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긍정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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