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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불평등이 심각하다.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20대 대선에서 노동자들은 배제되거나 혐오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운동 기간 주 120시간, 최저임금 한시적 유보,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며 노동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노동에 대한 혐오로는 한국사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은 3월 19일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다. 이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좋은 일자리'를 확대해야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린 고착된 불평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공공부분에서 국민을 위해 노동하지만 여전히 일터에서 차별받고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비정규직 현장의 목소리를 싣는다.[편집자말]
공공운수노조 충북본부 조합원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청주시청 앞에서 선전전을 펼친다.
 공공운수노조 충북본부 조합원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청주시청 앞에서 선전전을 펼친다.
ⓒ 한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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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청 앞에서 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청주시가 직접 수행할 것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하다 보면, 가끔 "공무원 철밥통들이 배가 불렀다"라며 혀를 차는 시민들을 만난다. 하지만 청주시에서 폐기물을 수집·운반하는 노동자의 과반 이상은 공무원은커녕, 청주시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다. 청주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9년 행정안전부 조사에 따르면 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 중 54.7%는 지방자치단체 소속이 아니라 민간위탁 업체 소속이었다. 

사용할 가치가 없어 내다 버리는 물건을 '폐기물'이라고 한다. 폐기물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방식으로 생활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생존을 위해 온갖 방식으로 여러 종류의 폐기물을 내놓아야 하고 실제로도 배출하고 있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한국인이 하루에 배출하는 평균 생활폐기물은 0.895kg에 달한다.

이렇게 나오는 폐기물을 배출자가 알아서 아무데나 버리고, 묻고, 태우면 어떻게 될까? 일단 귀찮기도 하겠지만 공중위생과 환경에도 큰 위협이 된다. 때문에 지방자치법 제13조는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해야 할 사무로 '생활폐기물의 수거 및 처리'를 명시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폐기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환경에도 위협이 덜 되기 때문이다. 폐기물 처리는 상하수도, 소방 등과 마찬가지로 가장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예산 낭비 사례만 수두룩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일단 시민들이 배출한 폐기물을 특수 차량에 모아서 처리시설까지 운반해야 한다. 이 과정을 폐기물 수집·운반이라고 부르는데, 대다수 지자체는 이 폐기물 수집·운반 업무의 일부, 혹은 전부를 민간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민간업체가 폐기물 수집·운반 사무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이를 통해 예산을 점감할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폐기물 수집운반은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 없는, 매우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다. 이 경우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말은 곧 직영에 비해 민간업체가 노동자들에게 돈은 더 적게 주고 일은 더 많이 시킨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일부 민간위탁 업체는 지자체의 부실한 관리·감독을 틈타 온갖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업비를 빼돌리려 시도한다. 먼저 지자체의 눈을 속여서 사업비를 빼돌리는 경우가 있다. 2021년 충북 지역에선 폐기물 수집·운반을 위탁받은 한 업체가 노동자들에게 대포통장 개설을 요구하고, 실제로 근무하지도 않은 대표의 가족을 근무한 것처럼 속이는 등 갖은 방식을 동원해 수천만 원의 노무비를 횡령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청주시로부터 음식물폐기물 수집·운반을 위탁받은 한 업체는 소속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노무비를 부풀려서 보고하는 방법으로 2019년 한 해에만 1억 원 이상의 노무비를 따로 챙겼다.

민간업체의 부당한 사업비 집행을 지자체가 사실상 방조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민주일반연맹 울산본부는 울산 남구가 감가상각이 끝난 차량에 감가상각을 지급하고, 지급 근거가 없는 잡재료비나 잡유비를 업체에 임의 지급하는 등 총 9가지의 불법행정으로 4개 청소업체에 5년간 최소 36억 원의 부당이득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남구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한 사항 중 대부분은 조례나 환경부 고시 등을 근거로 시행된 것으로, 불법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폐기물 수집업체와의 계약을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체결하는 사례는 아예 논란도 되지 않는다. 알려진 게 이 정도라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예산 낭비 사례는 얼마나 될까.

실효 발휘하지 못하는 다양한 정부 지침

민간 업체에 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위탁한 지방자치단체가 때로는 소극적, 때로는 적극적으로 업체의 예산 낭비를 방치하는 사이 현장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고통받는다.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이나 '민간위탁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등 다양한 정부 지침이 발표되었지만 현장에서는 대부분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휴게실 문제부터 살펴보자. 2019년 발표된 '용역근로자 보호지침 설명자료'는 지자체가 "용역업체에게 위생시설(휴게실, 세면·목욕시설, 세탁시설, 탈의시설 등)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거나 ②자신의 위생시설을 용역업체의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대부분의 용역업체는 휴게실이나 세면시설 등 나름의 위생시설을 갖추고 있으나 그 규모와 설비가 매우 열악해 실제로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환기도 되지 않는 창고같은 공간에 온수설비도 없이 샤워기만 하나 설치해 놓고 세면시설을 설치했다고 하는 식이다.

가장 기본적인 고용안정도 보장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민간업체와 용역 계약을 맺을 때 "현재 근무하고 있는 종사원에 대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용역계약기간 중 소속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 한다는 내용이 담긴 근로조건이행확약서를 제출받는다. 확약서에는 위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부정당업체로 입찰참가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문구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문서는 제법 강력한 문구로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에서는 역시나 큰 의미가 없다. 업체 대표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핑계를 잡아 노동자가 자기 발로 회사를 나가게 한다. 회사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으면 문제제기를 해 볼 수 있겠지만 10~30명이 일하는 소규모 위탁업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용기를 내어 개인 자격으로 문제제기를 한다고 해도 지자체는 계약의 미비, 민간 업체의 인사 경영권 등의 이유로 업체에 별다른 제재를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민간위탁 사무 대부분 효율과 거리 멀어
 
공공운수노조 경북지역지부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저녁 생활폐기물 수집운반과 상수도검침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경산시청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한다
 공공운수노조 경북지역지부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저녁 생활폐기물 수집운반과 상수도검침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경산시청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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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안전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민간위탁 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들이 당하는 사고에 대해 정량적으로 수행된 연구는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 2018년에 발표한 연구가 거의 유일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2015년부터~2017년까지 사고로 사망한 18명의 환경미화 노동자 중 지자체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는 2명이었고, 민간위탁 업체 소속 노동자는 16명이었다. 민간위탁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직영 노동자에 비해 8배 높았던 셈이다.

이외에도 주로 야간에 일하고, 사고가 났을 시 개인 돈으로 변상을 요구받고, 업체를 옮겼을 경우 연차 개수 등 근속에 따른 기본적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고, 업체 대표로부터 갑질을 당하는 등 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부조리는 차고 넘친다.

각 지자체는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폐기물 수집운반 사무를 민간에 위탁하며 노동자들이 더 위험하고 더 열악한 환경에서 폐기물을 수거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폐기물 수집운반 사무의 민간위탁은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않고, 효율성을 최우선에 두어서도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임기 내에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두 없애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정작 공공부문 비정규직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민간위탁 노동자들은 각 지자체별로, 사업별로 사정이 다르다는 이유로 의무 전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민간위탁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사실상 방치되어 왔던 셈이다.

노동조합은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민간위탁 사무의 문제점을 알리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경북지역지부 경산환경지회와 경산시수도검침원분회는 민간위탁 문제를 해결하고 정규직전환 투쟁을 112일째(3/28기준) 이어가고 있으며, 충북지역평등지부 청주환경지회도 청주시가 민간위탁 노동자들을 고용하라는 요구를 걸고 선전전과 면담 등 계속 투쟁을 벌이고 있다. 

새롭게 출발하는 윤석열 정부는 큰 정부를 지양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민간분야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활용할 수 있고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분야라면 민간위탁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폐기물수집운반, 상수도 검침 등 현재 논란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민간위탁 사무는 효율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현장의 결론이다. 최소한 지금까지 논란이 된 민간위탁 사무는 지자체가 직접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민간위탁 사무 전반의 효용성 또한 다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과 국회가 현장의 목소리를 수용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평등지부 전 조직부장입니다.


태그:#폐기물 수집운반, #민간위탁, #청주시, #경산시, #직접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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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평등지부 전 조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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