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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4월 27일 해군 초계함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침몰한 저인망어선 '금양98호'의 실종자 가족 20여명이 총리실이 있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항의방문해서 "말로만 총리는 예우해준다고 하고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며, '금양98호 인양 예산지원' '의사자 지정 절차 진행상황 설명'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 사과' 등을 요구했다.
 지난 2010년 4월 27일 해군 초계함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침몰한 저인망어선 "금양98호"의 실종자 가족 20여명이 총리실이 있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항의방문해서 "말로만 총리는 예우해준다고 하고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며, "금양98호 인양 예산지원" "의사자 지정 절차 진행상황 설명"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 사과" 등을 요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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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찬란한 슬픔의 봄, 어떤 '목숨 값'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찬란한 부활의 봄, 어떤 '목숨 꽃'으로 다시 피어날 것인가." 

천안함 피격 사건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비극의 역사를 인지하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지난 2010년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인근 해역에는 금양호 선원들이 차디찬 바다 속에 지금도 잠들어있다. 천안함 선체 수색작업을 도와달라는 해경의 요청을 받고 주저 없이 뱃머리를 돌렸다가 캄보디아 상선과 충돌해 침몰한 금양호. 국가를 위해 일하다가 희생당했지만 이들은 외면당했고 유가족들의 슬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꾸미잡이가 한창이던 2010년 4월 2일. 30~50대 선원 9명이 탄 100t급 저인망 쌍끌이 어선 98금양호는 군산 앞바다서 급히 백령도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그날 백령도 남쪽 해상의 물살은 유독 거셌다. 그물이 조류에 엉키고 바닥에 걸려 찢어졌다. 4월 3일 구조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던 금양호는 대청도 남서쪽 54㎞지점에서 캄보디아 어선 '타이요호(1472t급)'와 충돌해 침몰했다.

선원 2명은 시신으로 발견됐고 나머지 7명은 실종됐다. 희생자는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인 선원 2명이었다. 98금양호 선원들은 침몰 전날에도 한자리에 모여 천안함 수색작업 참여 여부를 놓고 회의를 했다고 한다. 김재후 선장 등 선원들은 주변의 만류에도 수색에 나섰다. 뱃사람 특유의 의리와 군에 대한 사랑, 마음에서 우러나는 애국심,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쉽게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천안함 침몰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구조에 나서지 말라 가르칠 생각이다.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천안함 1주기 추모식 행사에 남몰래 갔다 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화도 보내고 직접 추모식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니 솔직히 속상했다. 우리는 시신 인양도 포기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해주는 것이 없다. 우리는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당시 금양호 유가족 대책위 이원상 위원장의 말이다. 유족들은 '의사자' 인정을 위한 민사·행정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의사자 보상금을 받게 되면 천안함 유족들과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며 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유족들을 외면했다. 이씨는 "국민 성금은 말 그대로 이웃들이 힘든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해 십시일반 도와준 것이고 보상은 숭고한 희생에 대한 정부 차원의 예우 아니겠느냐"며 "사람을 잃은 것도 원통한데 국가에서 이렇게 섭섭하게 나올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의사자란 직무 외의 행위로 남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의 급박한 위해(危害)를 구제하다가 사망한 사람을 말한다. 선정 기준은 사회가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고 실현해 나간다는 목표를 충족시켜야 하는 만큼 까다롭다. 의사자로 인정받으면 '의사상자(義死傷者)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 국가유공자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예우를 받게 된다. 본인과 유족에게는 보상금과 교육, 취업, 장례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금양호 침몰 사고에 대해 당시 군 당국이 보인 태도는 상식 밖이었다. 사고 직후 해군은 "금양호는 침몰 당시 천안함 수색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밝혔다. 자신들을 돕기 위해 달려왔다가 변을 당한 사람들한테 결코 할 수 없는 '망언'이었다. 급할 때는 도움을 요청해놓고 사고가 나자 나 몰라라 하는 낯 뜨거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도 금양호 희생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관련해 특별 연설을 했다. 46명 해군 용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눈물을 흘렸지만 금양호에 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오랜 갈등 끝에 2011년 의사상자법이 개정되고 2012년 2월 5일 시행됨에 따라 2012년 3월 열린 보건복지부 의사상자심사위원회에서 사망 및 실종된 금양호 선원 9명 전원을 의사자로 인정했다. 훈장보다 격이 낮지만 보국포장을 추서했다. 의사자로 지정됐지만 국립묘지인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희생자는 정봉조씨 한 명뿐이다. 나머지 희생자들은 전과 등 결격 사유가 있어 국가보훈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인천가족공원 내 시립납골당에 유해가 안치돼 있다.
 
희생된 금양호 선원중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이는 정봉조씨 한 명으로 현충탑 01-2-3에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희생된 금양호 선원중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이는 정봉조씨 한 명으로 현충탑 01-2-3에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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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2011년 '98금양호 희생자 위령탑'을 세웠다. 해군의 요청으로 천안함 실종 장병 수색작업에 참여한 뒤 조업구역 복귀 중 침몰한 금양호 선원 9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천 중구 연안부두 바다쉼터에 자리 잡은 이 위령탑엔 사고 개요와 함께 금양호 선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문제는 이 위령탑에 적힌 금양호 선원들의 이름이 '의사자' 지정 이후에도 '희생자'로 표현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12년 3월 선원들을 의사자로 지정했다. 생업을 위한 조업활동 중 정부의 요청으로 구조·수색작업에 참여한 뒤 다시 조업장으로 돌아가다 발생한 사고 피해자에 대해서도 의사자 지정이 가능하도록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뒤늦게 이뤄진 조치였다. 금양호 유가족들은 '희생자'였던 금양호 선원들이 '의사자'로 바뀐 만큼, 위령탑 내용이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지하 시인은 "꽃들 저리도 시리게 아름다운 건, 죽으며 살아나는 봄살이 때문"이라고 했다. '살아 있음만으로'도 더없이 존귀한 것이 생명이다. 그중에 으뜸은 인간의 생명이다. 꽃 중의 '꽃(人花)'이요,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귀한 '꽃'이 사람이다. 한 국가를 존재케 하는 역사도, 한 사회를 규정하는 문화도 끝없는 생멸(生滅)을 이어 온 '목숨 값'의 합(合)이다.

그들의 죽음에는 우리 모두를 위해 바친 희생이라는 숭고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사고사와는 구분돼야 하며 유가족들이 흘리는 눈물도 '그들만의 눈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눈물'이 돼야 한다.
 
희생된 금양호 선원 9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인천 중구 연안부두 바다쉼터에 위령탑이 세워졌고 금양호 선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희생된 금양호 선원 9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인천 중구 연안부두 바다쉼터에 위령탑이 세워졌고 금양호 선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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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시민미디어마당 협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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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째 신문사에서 근무하고 있음. 기자-차장-부장-편집부국장을 거쳐 논설위원으로 활동했음. 현재 인터넷신문 '미디어붓'에서 편집국장으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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