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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기간 중 시민과 포옹하는 심상정 후보의 모습.
 유세기간 중 시민과 포옹하는 심상정 후보의 모습.
ⓒ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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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났다. 아직 절망과 위로의 시간이 다 끝나진 않았지만, 이미 평가와 토론은 시작된 것 같다. 정의당의 화두는 '청년 여성'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청년 여성의 표가 이재명 후보에게 결집한 것에 대해, 결국 '페미당'의 귀결이라며 페미니즘을 넘어 새로운 진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또 그런 주장이 아니더라도, 청년 여성에 그토록 공들였는데 결국 민주당으로 떠났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로서는 두 평가에 모두 동의할 수 없다.

그 대신 나는, 청년 여성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그려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예측 혹은 제안을 내보려고 한다.

여성들의 이재명 선택은, 조롱받을 사표론이 아니다

'사표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정의당원들은 화부터 날 것이다.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심지어 정의당 당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의당과 민주당을 '범진보진영'이라는 이름으로 묶으며, 그러니 뽑힐 수 있는 민주당을 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민주당이 뽑히지 않았을 때 오히려 단일화하지 않았다고 정의당을 비판하는 꼴을 봐왔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우리는 여기에 많이 시달렸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상당수 여성들이 전혀 다른 이유로 정의당 대신 민주당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물론 '뽑힐 수 있는 후보를 뽑는다'는 사표론에 속박됐다. 그렇지만 그들 또한 정의당과 민주당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일화에 약간의 아쉬움은 가질지언정 그를 빌미로 정의당을 욕하진 않는다. '지못미' 후원금 등, 표를 주지 못한 정의당에 미안해할 뿐이다.

다시 말해, 꽤나 많은 청년 여성들은 믿음 대신 죄책감을 안고 민주당에 표를 던졌으며, 민주당보다는 정의당이 그들을 대변할 수 있으며 대변해왔음을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우리는 이를 통해 청년 여성들을 보다 주체적인 존재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은 물론 사표론에 갇혔지만, 사표론을 넘어 '범진보진영'이라는 허상에 쓸려나가버린 다른 이들과 달리, 민주당에게 표는 줬어도 그들의 마음까지 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티페미니즘의 광풍에게 또다시 제도정치에서의 승리를 경험시켜줄 수는 없다는 분명한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나아가 물론 선거정당으로서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목표이겠지만, 이 공고한 양당제 구도에서 생각보다 그가 통제가능한 부분이 아니었음을 상기한다. 정의당은 청년 여성에 적극적으로 호소한 이번 대선 캠페인이 실패만은 아님을 역시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정의당 역시 희망을 갖는다.

여성들은 정의당과 함께 할 준비가 돼 있다 

청년 여성들은 이번 대선을 거치며 제도정치의 장에 그 모습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그들은 멋진 운동을 만들어왔지만, 동시에 제도정치의 장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둬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정말 제대로 대변해줄 수 있는, 그들을 진심으로 호명해주는 제도정치 세력이 부재했던 탓이 클 것이다.

그런데 지난 2~3년 사이 운동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안티페미니즘이라는 현상이 제도정치에 의해 호명되고 심지어 제도정치의 장에서 일부 승리를 맛보면서, 백래시와 혐외의 광풍을 일으켰다. 그 속에서 청년 여성들은 승리가 아니라 제도정치에 의해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제도정치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절감했다. 이제 그들은 제도정치의 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을 깨달았다.

청년 여성들 중 상당수는 제도정치의 장에서 자신과 함께 싸워줄 동료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정의당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재명에 표를 줄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를 자책하고, 심장정과 정의당에 큰 미안함을 느끼며 후원금이나마 건네고, '심상정 때문에 이재명이 졌다'는 프로파간다에 현혹되지도 않으며, 자신조차 뽑지 못했을만큼 어려운 정의당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연트럴파크에서 열린 2030 프라이드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연트럴파크에서 열린 2030 프라이드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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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정의당의 준비된 동반자다. '민주당과 보수정당 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르지만,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체득해 알고 있는 이들이다. 분명히 이들의 미래는, 입당으로 또한 지방선거에서의 지지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의당의 준비

여성들을 그렇게 준비된 동반자로 만들어낸 것은, 정의당이 때로는 갈팡질팡하면서도 그래도 꽤 굳건히 지켜온 '여성의 삶과 함께하겠다'는 신념일 것이다. 설령 그를 통해 당장 얻는 것이 없었음에도, 오히려 잃기만 한다며 당내외에서 온갖 비난을 받아왔음에도 정의당이 끝끝내 그 신념을 지켜내고 삶으로 증명해냈기에 청년 여성이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 험난한 과정을 온몸으로 지켜내온 정의당의 수많은 여성 정치인과 그 조력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정의당은, 적어도 내부 문화의 측면에서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 여전히 남성중심적, 여성차별적인 문화가 남아있다. 서둘러 바꾸지 않는다면 심각한 후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2년간 장혜영 의원이 외친 가치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정의당과 함께하기로 했던 이들이 정작 입당 후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즉, 정의당은 앞으로 찾아올 이들을 위해 더욱 더 준비돼 있어야 한다. 거시정치에서의 장에서 우리가 보여준 가치를 믿고 찾아온 이들이 미시정치의 공간에서 실망하지 않도록. 그리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변화조차 정의당은 찾아올 이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리라는 것이다.

정의당이라는 공동체는 분명 과거보다 더욱 나은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앞서도 말했듯 남성중심적, 여성차별적인 환경에서도 꿋꿋이 버텨낸 여성 선배들과 그 조력자들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정의당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어나갈 이는 지금껏 버텨온 우리와 우리 선배들이기도 하지만 또 청년 여성들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세에서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세에서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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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당 학생위원회라는 공간의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사실 기성 세대는 몰라도 이 학생 부문만큼은 새로 함께한 청년 여성 당원들에게 쉴 곳이 돼 줬어야 할 텐데 아쉬움이 컸다. 여전히 소수자 인권 문제를 노동과 학생이라는 소위 '중심적' 의제에 비해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든지, 페미니즘을 이론적으로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삶의 태도에는 이전 남성사회의 그것으로부터 변화가 없다든지, 소위 '운동권'적 삶에 대한 우상화가 과도해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궤적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다든지가 그 사례였다.

그랬던 공간을 청년 여성들과 함께 바꿔왔다. 몇몇 생존자들을 모아 여성당원소모임이라는 쉴 곳을 만들고, 정의당이 내세우는 가치를 믿고 당에 새로 함께하게 된 이들을 그곳으로 이끌며 그 공간을 점차 키워나갔다. 이제 그들은 단지 그 안전한 공동체에만 머무르는 것을 넘어, 집행위원회, 캠퍼스 학생위원회와 같은 열린 공간에서도 표준을 바꾸며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나아가 선거라는 정세 속에 정의당이 외치는 가치를 믿고 새로운 청년 여성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나는 이 학생 부문이 지금껏 부단하게 스스로를 변화시켜왔기에 그 새로운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대신, 그들에게 미시정치의 차원에서도 안전하고 편안할 수 있는 공동체를 제공하고, 나아가서는 그들을 다시 변화의 동력으로 삼아 문화의 개선을 반복해나갈 것이다.

이처럼 정의당은 청년 여성들을 위해 준비돼야 하며, 청년 여성들과 함께 준비해야 한다. 이미 조금 늦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정의당이 외치고 내세우는 가치와 진실성을 믿고 함께하기로 한 이들이, 정작 그 공동체 안에서는 그 가치가 온전히 실현되지 않은 탓에 떠나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그렇게 함께 하기로 한 이들이 이 정의당을 더욱 급진적으로 바꿔낼 수 있도록 –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을 외치는 정당을 넘어, 페미니즘이라는 삶의 태도가 당연시되는 정당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정당, 정의당 

이 글은 사실 여성들의 삶이 아닌 당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봤다. 어찌보면 당장 여성들의 괴로움에 충분히 공감하는 대신, 당리당략을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많은 분들께서 이미 체감하고 계시겠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운동이, 더 나은 운동을 위해서는 당이 필요하다. 그렇게 믿는다면, 당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삶을 위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청년 여성 여러분께 이 당에 함께 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우리의 삶과 우리의 운동을 위해서 말이다.

물론 정의당에 함께해달라는 이 말은, 한편으론 조심스럽다. 분명 이 혐오의 시대 속에서 이미 많이 지치고 소진되었을 것을 알기에, 20대 대선이라는 무엇보다도 참담한 순간을 거쳤음을 알기에 말이다.

이 정의당조차 이렇듯 완전치 않은 공간이며, 따라서 이곳에서조차 여러분은 온전히 쉬기보다는 부단히 싸워야 할 것임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오랫동안 버텨온 사람들이 있음을 강조해 말씀드리고 싶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여러분이 위로와 힘을 받은 그 정의당이 있었던 것이며, 그들이 있기에 온전치 않은 공간일지라도 분명 함께 웃으며 쉬어갈 틈이 존재한다. 때로는 쉬고 때로는 싸우며, 정의당과 이 사회를, 우리 모두의 삶을 바꿔나가보자.

태그:#정의당, #페미니즘, #20대 대선, #2030여성, #청년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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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이며, 비장애인이자 선주민이며, 국제고를 나와 서울대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의당원이며, 페미니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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