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3 11:39최종 업데이트 22.03.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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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니."

학과장실에 있다가 우연히 듣게 된 말이었다. 학과장과 학교 부설 심리상담센터장으로 추정되는 이 사이에 이루어지는 통화인 듯했다.


4학기(2학년 2학기) 학생 한 명이 브라우니를 먹었고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있으며 스스로 학과장실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학생에게 브라우니를 건넨 이 역시 같은 학년 동급생이라고 했다.

통화는 한참 이어졌다. 학교 변호사가 개입했고, 친구에게 브라우니를 건넨 학생에겐 자퇴가 권고되었고, 브라우니를 먹은 학생은 심리 위기가 우려돼 상담 센터의 도움이 급히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통화 말미에, 여성 심리 상담사를 배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학과장의 부탁에 브라우니를 건네고 받은 두 명 모두 여학생임을 알 수 있었다.
 

브라우니 빵 "브라우니라 불리는 것은 마리화나다. 겉모습은 실제 브라우니 빵과 다름없으나 만드는 과정에서 그 안에 마리화나를 넣는 방식이다." ⓒ pixabay

 
해피 브라우니

통화를 마친 학과장이 내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브라우니를 건네고 받아먹은 두 명의 학생이 팬데믹 학번이라고 했다. 이들은 2020년 8월에 입학했고 입학 이후 세 번의 학기를 온라인상에서 보내고 이번 학기에 처음 등교하여 대면 수업을 받는 학번이었다. 학과장의 한숨에는 지난 2년 동안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못했음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상당 수 학생들이 우울감 혹은 무력감으로 심리 상담을 신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학과장의 한숨 속에 든 아쉬움이 한편 이해가 되었다.

'브라우니'라 불리는 것은 마리화나다. 겉모습은 실제 브라우니 빵과 다름없으나 만드는 과정에서 그 안에 마리화나를 넣는 방식이다. 마리화나를 직접 흡연하는 것보다 몇 배 강한 환각 효과가 있다. 원래 이름은 '해피 브라우니'이지만, 통상 브라우니라 칭해도 상황 맥락을 통해 달콤한 빵 브라우니와 환각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브라우니의 구분은 어렵지 않다.

학과장은 내게 브라우니를 둘러싼 학과 내 스캔들을 전하는 내내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혹여, 이 사안이 밖으로 흘러나갈 것을 염려했다. 심리상담센터 소장과 통화를 하는 와중에도 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 밖으로 내보내는 대신 학교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학교 밖엔 시신, 그러나

학과장의 깊은 한숨을 뒤로하고 학과장실을 나오면서 혼돈스러웠다. 학교 주차장 바로 앞에는 벌써 한 달 가까이 중화기로 무장한 군 병력이 검문소를 설치하고 들고 나는 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브라우니 소식을 들은 그 날도 학교 근처에서 목이 없는 시신 한 구가 발견되어 수대의 군 병력 차량과 검찰 소속 시신 수습반 차량이 아침부터 학교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중이었다.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코아차코알코스에서 경찰이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은 엘 카바요 블랑코 바 앞을 순찰하고 있다. 2019.8.28 ⓒ 연합뉴스

 
지난 1월 말 마약 카르텔 간 충돌이 일어나면서 연일 수 명씩 사람이 죽어 나가고 3천 명이 넘는 군 병력이 투입되었음에도 진정은커녕 주지사를 죽이겠다는 메시지가 분분한 와중이니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만 살 것 같은 시골의 작은 마을 안에서도 누가 약을 파는지 누가 약을 사먹는지, 그리고 그들 위에서 누가 마약과 돈과 무기를 주무르고 있는지 세 살 어린아이라도 뻔히 아는 그런 시절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세상으로부터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학교에서는 이 바닥에서 마약 축에도 끼지 못하는 '해피브라우니'를 건네 권고 자퇴를 당하고 또 그것을 먹어 심리 상담을 받는다 하니, 학교의 안과 밖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세상의 간극이 아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쪽과 저쪽의 서로 다른 세상을 오고 가며 살아간다.

가끔, 아니 종종, '도대체 그런 곳에서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사실, 위험하다. 특히나 요즘 같으면 더 그렇다. 항시 주변을 둘러봐야 하고, 차가 신호등에 정차할 때 옆 차를 보지 말아야 하고, 어디든 실내에 들어가게 되면 혹시 총알이 날아들 경우 어느 쪽 구석이 더 안전할까 미리 창의 높이와 벽의 각도를 계산해 두는 것이 몸에 뱄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멕시코의 또 다른 단면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지독한 폭력의 이면에 뜻하지 않은 아름다움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과장의 걱정 섞인 통화 내용을 들으면서 한국이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학생이 마약이나 마리화나를 소비한다는 가정도 않겠지만, 혹여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학교의 반응이 어떠할까 궁금해졌다. 어쩌면 학교가 알지 못한 채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성인이니까.

폭력의 이면

분명 이곳의 시스템은 한국과 다르다. 한국에 비해 형편없이 뒤떨어진 부분도 있지만, 선진적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학과엔 교수와 학생 사이를 연결하는 학사 코디네이터와 심리상담사가 상근한다. 학생들의 학사 전반에 코디네이터가 상시 대기하며 도움을 주고 우울감이나 갈등에 심리상담사가 세세하게 관여한다. 그렇다고 우리 학교가 비싼 수업료를 내는 사립대학교는 아니다. 한 학기 약 8만 원 정도의 수업료를 내는 주립대학교다.

며칠 전 학사 코디네이터로부터 강의실 변경에 관한 메일을 받았다. 내 수업에 배당된 강의실이 원래는 1층이었는데, 2층으로 변경되었으니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더러 학기 초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강의실이 바뀌는 경우는 있지만, 학기 중간에 강의실이 바뀌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럼에도 내 수업뿐 아니라 여러 교수들의 강의실이 변경된 이유는 한 명의 학생 때문이었다.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 한 명이 임신을 했는데, 임신 초기라 태아의 상태가 불안정하고 앞으로 몸이 무거워질 것이기에 그 학생이 듣는 모든 수업을 1층으로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수업이 2층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교수들뿐 아니라 학생들도 학기 중간에 강의실을 변경해야 했지만, 그 어디서도 불만은 없었다. 승강기 없이 2층으로 이루어진 강의동 건물에서 임신으로 몸이 약해진 학생 한 명을 위해 우리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마음의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임신 ⓒ pixabay

  
몇 해 전, 보행에 장애를 가진 학생이 입학했을 때도 4년 내내 그 학생의 수강과목 중심으로 1층 강의실이 우선 배정되었다. 물론 돈을 들여 승강기를 설치하거나 경사로를 만든다면 굳이 강의실을 바꿀 이유가 없겠으나, 경제적 여력이 없다면 서로가 마음을 모을 수밖에 없다. 그 학생이 졸업하던 날, 학교의 여러 보직교수들이 보여준 행동 역시 그간 내가 가지고 있던 사고에 신선한 놀라움을 줬다.

대강당에 모인 학생 한 명 한 명 이름이 호명되면 단상으로 올라가 총장 이하 보직 교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졸업 증서를 받아 내려오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단상 위에 있던 총장 이하 모든 교수들이 단상 아래로 내려오는가 싶더니 대강당 앞줄의 어느 자리에 가서 무릎을 굽혀 앉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기에 무슨 일일까 싶었는데, 다리가 불편한 그 학생이 그 곳에 앉아 있었다. 그 곳으로 총장이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학생에게 졸업장을 수여하고 보직교수들도 무릎을 굽혀 일일이 학생과 악수를 나눴다. 그 학생의 졸업장 수여 순서를 가장 앞에 두지도 않았고 가장 뒤에 두지도 않았다. 식 중간에 단상에서 내려와 무릎을 굽히고 졸업장을 수여한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 나머지 학생들에게 졸업장 수여를 이어갔다.

그 장면을 놀랍게 바라본 이는 어쩌면 나 혼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이곳 사람들에겐 아주 오래전부터 너무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약자를 배려함에 있어 제도 혹은 인프라를 통해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럴 만한 여력이 어려울 때 마음을 모으고 공감대를 만들어 해결의 방법을 찾는다.

멕시코가 약자와 함께 사는 법

작년에는 학과에 시각장애인이 입학했다. 학과 주변에 점자 블록이나 점자 안내판을 설치하고 그 학생을 위한 특수 컴퓨터를 구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학교 예산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대신 학과에서는 학기가 시작되기 전 1학년 수업에 들어가는 모든 교수들을 대상으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부터 교수방법을 아우르는 의무교육을 실시했다. 교직에 20년 가까이 있으면서 그제야 나도 장애인 그리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그 학생 덕분이다.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라면 혹은 이곳 멕시코에서라면 어떻게든 서로의 마음을 모아 함께 가고자 하는 공감대가 분명히 있는 듯하다." ⓒ pixabay

 
최근 나는 학사 코디네이터로부터 또 다른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 한 명이 산후우울증으로 다소 힘들어 하고 있으니 이를 이해하고 배려해달라는 당부였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라면 혹은 이곳 멕시코에서라면 임신이 곧 휴학이나 자퇴로 이어지지 않고 우울감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서로의 마음을 모아 함께 가고자 하는 공감대가 분명한 듯하다.

물론, 나 개인이 그간 살면서 느끼는 부분이니 일반화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간 이곳에 살면서 얻은 경험의 경향으로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할 일들이다. 불과 몇 미터 밖에선 무장 병력이 진을 치고 언제 터질지 모를 총격전에 긴장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돈을 들여 승강기를 설치하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시설을 별도로 마련하진 못해도 서로의 마음을 모아 이해하고 해결해가는 세상이 있다. 이 둘 다 멕시코의 숱한 단면들 중 한 부분일 것이다. 모든 세상이 그러하듯이 이곳 역시 다양한 세상이 모아진 곳이다.

'왜 그렇게 위험한 나라에 살아요?'라는 물음을 들을 때마다 그 물음이 고맙지만 한편으론, '그게 멕시코의 전부는 아니니까요'라고 답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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