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6 06:05최종 업데이트 22.02.1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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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램지어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가 또다시 '도발'을 가했다. 위안부 논문인 '태평양전쟁에서의 성매매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 세계적 파장을 낳은 지 1주년이 되는 시점에 맞춘 도발이다. <국제 법경제학지(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2021년 3월호에 실릴 논문이 작년 2월 1일 자 <산케이신문>에 보도되면서 굉장한 후폭풍을 초래한 지 1년 뒤에 반격 형태의 글을 내놓았다.
 
이번 '도발'은 일본 극우 매체에 실렸다. 2월 3일 자 <슈칸 신초(週刊新潮)>에 이어 7일 자 <데일리 신초(デイリ新潮)>에 게재된 이 글의 제목은 '위안부=직업매춘부 논문으로 왕따 된 하버드대 교수가 털어놓는 이상한 공격(慰安婦=職業売春婦論文で村八分となったハーバード大教授が激白する異常なバッシング)'이다.
 
영어 논문에서는 'contracting for sex'로 표기된 '성매매 계약'이 일본어 기고문에서는 '매춘계약(売春契約)'으로 표기됐다. 이 표현이 이번 기고문 첫 문장에 나온다.
 
그는 "2020년 말에 발표된 논문 '태평양전쟁에서의 성매매 계약(太平洋戦争における売春契約)'은 '위안부=성노예'설을 부정했다는 점 때문에 한국이나 아메리카에서 격렬한 규탄을 받았다"라고 회고한다. 그런 뒤 그 비판들을 '정치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정치적 의도에 기초한 운동으로서 학문의 자유를 짓밟는 행위였다"라고 주장한다.

일본 극우세력에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 은근히 환기
  

논문 <태평양전쟁에서의 성매매 계약> ⓒ 데일리 신초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비판들은 "적의로 가득 차고 반일적이며 대부분 비상식적인 것"이었다고 한 뒤, 특히 한국에서 그런 공격이 나온 데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단정한다. 글 중간 부분에서 "위안소에 관한 논쟁은 정치와 깊이 관련된다"라며 '정치적 의도'를 재차 강조한 뒤 "한국에서 나오는 공격의 배경에 정치가 있다는 것은 본지(슈칸신초) 독자들에게 명백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지금의 한국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강렬한 반일과 일본 비판을 기초로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지금의 한국 정부'인 문재인 정권이 지지를 받는 것은 강력한 반일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라고 하지 않고 "한국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라고 표현했다. 굳이 '유권자'란 단어를 쓴 것이 한국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점은 바로 뒷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이 위안부에 관한 거짓 주장을 유포하는 것은 유권자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을 위안소로 보내기 위해 강제연행을 했다는 설은 유권자 지지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 같은 거짓 주장에 기초해 문재인 정권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램지어는 위안부 강제연행설이 "현 정권의 세력을 유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공격 역시 선거 공학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단언한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온 비판들이 한국 선거를 위한 필요에 기초한 것이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나에 대한 공격은 선거에서의 역학으로부터 초래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 부분에서 유의할 대목이 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이 선거용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에서 "지금의 한국 정부(今の韓国政府)", "현 정권(現政権)"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 정부'로 표기해도 될 일을 굳이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이 집권당인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그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기고문은 일본인들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글이 실린 곳은 극우 매체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그 자신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쓴 글이다. 그런 글에서 "지금의 한국 정부", "현 정권", "선거에서의 역학" 같은 표현들을 사용하면서 위안부 운동을 비난했다. 일본 극우세력에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 폄하 "위안부 문제 이의 제기하지 않는 범위로 한정된 민주주의"
 
뒤이어 그는 한국 민주주의까지 폄하한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위안부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범위로 한정된 민주주의"라는 말로 한국 민주주의를 깎아내린다.
 
이어서 그는 '지금의 한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인문학자들도 죄다 문제투성이라고 말한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학자들에게도 호된 공격을 받은 데 기인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미 하버드대 로스쿨 홈페이지의 마크 램지어 교수 프로필. 자신을 '미쓰비시 일본 법학부 교수'로 소개하고 있다. ⓒ 하버드대 로스쿨

 
그는 미국 학계에서 '램지어는 미쓰비시그룹의 지원을 받는다', '램지어는 일본 극우를 추종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논문들을 놓고도 '램지어 논문을 싣지 말라'는 압력이 나온 일들을 소개한다.
 
램지어는 그들을 좌파로 규정한다. 일본사 전공자인 앤드루 고든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한 미국 대학 교수들을 겨냥해 "인문학과는 그 대부분이 하나 같이 좌파이며, 그중 다수는 극좌"라고 몰아붙인다. 그들의 좌파 혹은 극좌 이념이 위안부 운동에 투영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미 양국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선거용 공격이다', '좌파들이다'라는 비판을 가한 램지어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평소의 소신을 재차 피력했다. 군대 위안부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라고 이 글에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어느 군 기지든 주변에 매춘소가 있고, 적극적으로 거기서 일하고 싶어 하는 매춘부가 있다"라고 말한다.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설은 합리적이지 않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일본군이 여성들을 강제 연행할 필요가 애당초 없었다고 주장한다. "군은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라는 것이다. 여성들이 그런 일자리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극빈 여성들에게 매춘은 고액 급료를 얻는 직업이었으며, 전쟁 전의 일본과 조선에서는 많은 수의 가난한 여성들이 경쟁적으로 이 직업에 취업"했다고 말한다.

그의 의도
 
이번 기고문에서 램지어는 위안부 문제에 한국 정치까지 끌어들였다. "현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이 선거에 승리할 목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거짓 주장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치권 전체가 아닌 "현 정권"에 대한 경계심을 은연중에 조성하려 시도했다. 일본 극우 독자들에게 한국의 어느 세력은 동지이고 어느 세력은 적인지를 은근히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 극우가 한국 보수 혹은 한국 극우와 연대하려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번에 램지어가 보여준 모습은 이 연대에 미국 극우까지 본격 가세하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진보·보수의 대결 구도가 일국 차원을 넘어 한·미·일 3국 차원의 국제적 연대 구도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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