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09 06:08최종 업데이트 22.02.0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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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험을 소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독창적이고 이색적인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다 ⓒ 최수경

 
나는 카페에 가면 조망하기 좋은 창가 좌석을 선호한다. 차를 마시는 곳이지만, 창 밖의 풍경 관찰이 가능한 곳에서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하기 위함이다. 과거 대전엑스포 이후 별다른 기능이 없어 주목받지 못하던 대전의 부지에 한 대기업이 193m 높이의 백화점 기능을 포함한 복합 빌딩을 지었다. 이로써 가장 높은 곳에서 대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커피값을 지불하면 편안히 앉아 조망권을 누릴 수 있는 유명 카페가 입점했는데, 카페 전용 엘리베이터 앞은 늘 긴 줄이 서 있고,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고층 빌딩에서 바라다 본 대전엑스포를 상징하는 한빛탑과 갑천의 엑스포 다리. 대전엑스포가 열리던 당시 한빛탑 정상에서 조망하면 일대가 훤히 보였다고 한다. ⓒ 김방현

 
사람들이 이곳에 열광하는 이유는 평소 볼 수 없던 도시의 숨겨진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야가 높아질수록 사물들 간의 겹침이 사라져 도시의 건물들과 도로, 공원, 산과 하천이 명확히 보인다. 정부대전청사를 중심으로 한 대전의 둔산 신도심도 한눈에 보인다. 대전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형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도 있다.

대전이 기후가 좋아 살기 좋다 하는 이유를 실감 나게 알 수 있는 것은 바람길 역할을 하는 세 개의 하천이 한밭벌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히 신세계를 보는 경험이다.
 

갑천 경관을 감상하는 시민. 대전엑스포 부지에 신축된 이 빌딩은 인공 건축물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서 대전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 이연숙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을 때 가리는 것들이 많아 먼 곳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면 '경관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경관이란 외부 풍경이 조망되는 물리적 현상이자 그 풍경에 미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심리적 현상이다. 한마디로 '보인다'와 '지각한다'가 필요충분조건이 되어야 경관을 설명할 수 있다.
  

전라북도 김제 벽골제 주변의 추수한 논 전경. 자연 경관에 인간의 영향이 가해져 이루어진 문화경관 가운데 농경 문화 유산은 손꼽히는 문화 경관이다. ⓒ 최수경

 
경관은 크게 자연 경관과 문화 경관으로 나뉜다. 자연 경관은 사람의 손을 더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지리적 경관을 말하고, 문화 경관은 자연 경관에 인간이 영향을 가해 만들어진 경관을 말한다. 도시 경관은 문화 경관에 가깝다.
    

광주광역시 영산강변의 서창들녘. 경관을 크게 산림 경관, 수변 경관, 가로 경관, 역사문화 경관, 시가지 경관으로 나눌 때 가을 억새숲을 이루는 장관은 우수한 수변 경관이다. ⓒ 최수경

   
도시 경관에는 도시의 경치뿐만 아니라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도시의 이미지나 시민 생활의 분위기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도시의 대표 경관은 그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관의 차원을 넘어 도시가 갖는 독창적 이미지와 정체성을 형성한다.

도시 경관은 지역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그렇다. 도시의 외관을 결정하는 스카이라인은 주로 인공적인 건축물에 의해 좌우된다. 최근 대전시 갑천변에 들어찬 빽빽한 빌딩 숲 풍광은 도시의 발달과 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혹자는 이런 빌딩 숲을 첨단의 개념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대전의 도시경관 중 아파트숲 경관. 건축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도시 풍광은 발전과 첨단의 개념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 오용대

   
인공 건축물 밀도가 높을수록 도시 내에서 조망 경관은 더욱 중시된다. 하천 인근 부지가 건축 부지로 각광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새 건축물들은 기존 건축물들을 가리며 조망권을 독점하려 한다. 한마디로 무질서한 건축물들로 인해 도시 경관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좋은 경관 정책은 지역 주민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지만, 잘못하면 지역의 질적 성장에 장애가 된다. 도시에서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행복한 삶을 디자인하고, 더 풍요롭게 살 것인지에 대한 약속인 도시 정체성을 도시 경관을 통해 구현해야 할 때다.
 

대전의 도안신도시 조성 전의 갑천 자연하천 구간. 도솔산과 사행으로 흐르는 갑천, 너른 도안뜰이 산내들을 이루던 자연 경관은 10여년 전부터 아파트숲 경관으로 바뀌었다. ⓒ 최수경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인구와 도로, 건물의 밀도가 높아지며 소음과 대기오염이 심해져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이럴 때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자주 자연과 교류해야 하며 이를 위해 자연 경관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사람들은 자연 속에 있을 때 또는 그러한 시각적 활동을 할 때, 정신적 피로가 치유된다는 경험적 연구가 많다. 실제 자연과 교류한 경험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친환경적인 태도를 형성하게 하며,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가습지지정이 필요한 고니가 쉬는 갑천 자연하천구간. 갑천자연하천구간에 면한 도안동 신도심의 아파트 숲이 빽빽해지면서 계룡산 스카이라인이 변하고 있다. ⓒ 최수경

 
대전의 갑천 자연 하천 구간은 자연 생태와 경관이 우수한 곳이다. 그러나 행정관청과 시민들은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다. 도시가 팽창하자 하천과 맞붙은 도안 신도심을 조성했다. 이에 따라 교통량이 늘어나자 하천의 핵심 습지 지역에 다리와 터널을 건설했다. 개발과 파괴로 훼손이 극심해진 후에야 비로소 이곳이 치유의 보고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제방과 도로 건설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이곳을 지키고자 한 시민들은 갑천 자연하천 구간을 보호할 법적 수단으로 국가 습지 지정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갑천을 끼고 있는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 등으로 습지 지정은 난관에 부딪혀 왔다. 갑천은 국가 습지 지정에 걸맞은 충분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도심 속 마지막 보고로 갑천 자연하천의 경관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충남 서천8경 중 하나였던 장암모각(長巖暮角). 서천군 마서면 월포리 쪽에서 보면 장항읍 장암리 바위(전망산, 후망산)가 두 뿔의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그곳에 노을이 비쳐든 모습이 장관이라 하였다. 현재 장항송림의 스카이로드에서 뻗어나온 전망대 구조물이 경관에 걸쳐있다. ⓒ 박청제

 
경관을 대할 때 인간의 관점이 중시되면 인간 중심의 가치가 결국 경관의 가치를 규정할 수밖에 없다. 경관 고유의 객관적 실체 파악보다는 인간 활동의 경제적 가치가 경관 가치의 기준이 된다. 아울러 시대에 따라 인간의 가치 기준에 따라 경관의 가치는 요동친다. 자연 경관은 변화 속도가 느리다. 정치의 희생양이 되면 회복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대전정부청사가 있는 둔산 신도시 전경. 새로 생긴 고층빌딩에서 바라 본 한밭수목원과 갑천 모습 ⓒ 오용대

 
도시 내 자연 경관이 아파트 숲 경관을 압도할 때 시민들은 도시의 명함을 자랑스럽게 내밀 수 있다. 시민 누구나 도시의 세일즈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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