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이름 앞에 '조작'이 붙으면 해당 프로그램은 결국 폐지로 여론이 기울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진정성'이라면, 논란이 시작된 시점부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아래 '골때녀')은 4주 연속 수요 예능 전체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조작 논란을 뒤로한 채 시청률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다. 특히나 지난 2일 방영한 최근 회차는 9.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편성 이후 역대 2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마지막 승부차기 중 'FC 개밴져스'의 골키퍼 조혜련이 연이어 골문을 지켜내며 결국 승리를 거머쥐는 장면에서는 최고 분당 시청률 13.5%를 달성했다.
 
 <골 때리는 그녀들> 지난 2일 방영분 중 한 장면

<골 때리는 그녀들> 지난 2일 방영분 중 한 장면 ⓒ SBS

 
단순히 '까기 위해' 보는 걸까? 진정한 스타는 팬과 안티팬을 모두 사로잡아야 한다는 여느 낭설처럼, 여전히 <골때녀>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시청자가 시청률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작 논란이 시청자와 제작진 간의 신뢰 관계에 큰 타격을 입힌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여러 선례들을 바탕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OTT 서비스 및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으로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차 분화되고 있는 시대에서 9%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뭐 하나만 더 걸려봐라'라는 심정으로 채널을 사수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이루기엔 역부족인 수치다. 아무리 시청률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해도, 여전히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시청률이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시청률만큼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청자와 제작진 사이의 무너진 신뢰감을 회복하고 '간판 예능'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답은 돌고 돌아 '진정성'이다. 진정성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았던 프로그램이 다시 진정성으로 승부하다니. 자칫 자충수로 읽힐 수 있는 이 전략이 먹힌 이유는 시청자가 <골때녀>를 스포츠 예능의 탈을 쓴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파일럿 프로그램 시절엔 아직 경기 규칙도 숙지하지 못한 출연진들이 맨땅에 헤딩하는 모습을 부각하며 스포츠 '예능'다운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1을 거쳐 현재의 정규리그에 들어서며 점차 최선을 다해 승부에 임하는 각 팀의 성장 서사와 그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응원과 존중을 잃지 않는 화합의 모습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젠 '출연진'이라는 명칭보다도 '선수'라고 불리는 게 익숙할 정도다.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카메라의 앵글이 점점 그들의 내면으로 진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골 때리는 그녀들> 지난 2일 방영분 중 한 장면

<골 때리는 그녀들> 지난 2일 방영분 중 한 장면 ⓒ SBS

 
이 전략은 지난 회차의 'FC 개벤져스'와 'FC 구척장신'의 경기에서 정점을 이룬다. 정규리그 1, 2위를 다투고 있는 두 팀은 모두 지난 시즌부터 지금까지 팀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러 인터뷰나 SNS를 통해 본업보다 축구에 더욱 열정을 쏟고 있다고 알려진 팀이다. 두 팀은 큰 이변이 없다면 슈퍼리그 진출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지만, '전승'을 목표로 리그 1위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했다.
 
해당 방영분에서는 'FC 구척장신'의 이현이가 선제골을 넣으며 승기를 가져가는 듯했지만, 경기 초반 이현이의 PK 실패와 이현이의 슛이 골로 인정되지 않는 '노골 선언', 수비의 핵심인 차수민의 부상 등 여러 악재에 시달렸다. 이를 틈 타 'FC 개벤져스'의 오나미와 김혜선이 나란히 득점하며 역전에 성공했으나, 경기장을 방문한 전 주장 한혜진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슬로건을 다시 상기시키며 'FC 구척장신'의 멘탈케어를 도맡았고, 이에 이현이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눈물의 동점골을 이뤄내며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는 골키퍼이자 주장인 조혜련의 활약으로 결국 'FC 개벤져스'가 승리를 쟁취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현재 리그 최상위를 두고 경쟁하는 두 팀이 방영 초반에는 소위 '구멍' 선수들을 보유한, 'FC 불나방'과 같은 강팀들에 늘 만만하다는 평을 듣는 팀이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존폐의 갈림길에 섰던 파일럿 시절부터 2021 SBS 연예대상 8관왕을 기록하며 수요 예능 최강자에 오르기까지 지금의 <골 때리는 그녀들>을 만든 것은 제작진의 화려한 편집도, 박진감 넘치는 경기 운영 방식도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이 발전하는 출연진들의 성장 서사다.

넘어지고 구르기를 반복하며 팀의 구멍으로 불렸던 이현이와 부상에 시달리던 오나미가 나란히 득점 공동 선두를 달리고, 최약체로 불렸던 두 팀은 여전히 넘어지고 구르며 정규리그에서 최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최약체, 최하위 팀이라는 불명예를 거두고 당당히 리그 최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출연진들이 축구를 대하는 마음이 진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시청자들이 선수들의 땀과 노력에 자신을 투영하도록 유도하며 '과몰입'을 유발한다. 설령 제작진들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서였다는 명목으로 경기의 흐름을 조작하여 송출했다고 하더라도, 축구를 대하는 진심 어린 마음만큼은 거짓이 아닐 거라는 믿음에 시청자들은 다시 한번 이 프로그램에 마음을 열게 된다. 결국 진정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출연진들의 태도가 프로그램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다.
 
"축구! 우리도 할 수 있어!"
진정성 200%! 축구에 진심인 그녀들과
대한민국 레전드 태극전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건강한 소모임 탄생!
 
 <골 때리는 그녀들>의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기획 의도처럼 이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진정성'이다. '재밌을 것 같은데? 한번 해볼까?'로 시작한 출연진들이 이제는 '더 간절한 사람이 이긴다. 그리고 우린 누구보다 간절하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필드를 달리고 공을 찬다. 그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여자 축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혹은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결국 관중석도 아닌 방구석에서 마치 경기장에 온 것처럼 함성을 지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응원하는 팀이, 좋아하는 선수가 생기며 온전히 경기에 빠져든다. 진정성으로부터 기인된 몰입감은 쉽게 깨지는 만큼 또 쉽게 회복된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함의를 가진다. 남성 출연진들의 전유물과 같았던 스포츠 예능의 틀을 깨고, 그동안 괄시받았던 여성 축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비슷한 계열의 타 방송사 예능과 차별화된 모습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런 영향으로 실제로 여성 축구 동호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운동하는 여성'을 편협하게 바라보던 시각에 대한 문제점도 수면 위로 올라와 논의 중인 추세다. 이런 부분에서 <골때녀>는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화면 밖으로까지 확장하며 여성 스포츠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이 프로그램의 조작 논란 자체를 무마할 순 없다. 그러나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이유가 될 순 있다. 논란에 대한 사죄 및 앞으로의 대처 방안을 공표하고 다신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시청자에게 다짐한 만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욱 성장할 <골 때리는 그녀들>을 기대해본다.
 
예능 스포츠 리뷰 골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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