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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박물관 앞에 있는 <용의맥>  날은 차가왔지만 저 곳은 양지바른 곳이라 햇볕이 따뜻헸다.
 이화여대 박물관 앞에 있는 <용의맥> 날은 차가왔지만 저 곳은 양지바른 곳이라 햇볕이 따뜻헸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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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정문에 들어서서 왼편으로 꺾어지면 이화여대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앞의 붉은 조각이 <용의 맥>(Dragon Wall)이다. 'Dragon Wall'을 직역하면 용 벽 혹은 용 담이 되어야 하는데, 용의 맥은 지나친 의역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의 작가는 알렉산더 리버만(Alexander Liberman).

알렉산더 리버만은 1912년 러시아 키에프에서 태어나 21살 때 런던으로 가서 런던과 파리에서 공부하고, 파리에서 잡지 편집자로 일을 시작한다. 1941년 뉴욕으로 이주한 리버만은 유명 패션 잡지 보그에서 일하게 되는데, 43년에 아트 디렉터가 된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편집자로 또 아트 디렉터로 가히 보그의 영광을 이끈 주역이었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샤갈, 달리, 잭슨 폴락 등 유명한 작가들과 협업을 많이 하였는데, 그 자신 또한 1950년대 중반부터 그림과 사진 전시를 시작했다. 50년대 말 철 조각을 공부한 후로 대형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 세계 40여개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는 1999년에 작고했다.

그의 1986년 인터뷰를 보면, '나는 많은 예술 작품이 비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비명들에 공감한다'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혁명 후 소비에트 정부에서 일했는데 자신이 정치적 곤경에 처하자, 레닌에게 허가를 받아, 그의 아들을 런던으로 보낼 수 있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 서구 세계에서 학습과 커리어를 쌓아간 리버만의 소회가 담긴 듯하다.
 
뮤지엄 산에 있는 아치 웨이. 사람이 멀리 있어서 조각품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인다.
 뮤지엄 산에 있는 아치 웨이. 사람이 멀리 있어서 조각품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인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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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맥'보다 유명한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있다. 뮤지엄 산에 있는 아치 웨이(Arch Way)다. 뮤지엄 산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중 하나일 것이다.

뮤지엄 산은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 어디 한 곳 허투루 설계한 데가 없지만, 그 중에서도 미술관 입구에서 길을 따라 들어와 건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진 아치 웨이가 가장 눈길을 끈다.

리버만이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 중 가장 멋있게 보이는 것이 이 작품이다. 그것은 이 작품이 놓인 위치 때문. 안도는 미술관 건물 들어가는 곳에 얕은 인공호수를 파고 거기에 길을 내어 아치 웨이를 배치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길, 물에 비친 빨간 조각품, 미술관 전경들이 조화를 이루어 더없이 멋진 광경을 자아낸다. 뮤지엄 산의 가장 유명한 포토 스팟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리버만이 뮤지엄 산의 주문을 받아서 그 작품을 제작한 것이 아니고, 안도가 뮤지엄 산을 만든 한솔재단의 소장품 중에서 그 작품을 선택하여 그 자리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리버만의 말대로 아치 웨이가 그의 비명이라면 그건 너무 우아한 비명이다.
 
알렉산더 리버만의 <용의 맥>
 알렉산더 리버만의 <용의 맥>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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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만은 아치 웨이처럼 파이프를 커팅해서 이어붙인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용의 맥'은 이례적인 작품이다. 그는 서양 사람이지만 이 작품에서 보이는 용은 날씬하고 길어서 동양의 용으로 보인다. 그가 주문자의 문화를  존중한 듯하다.

사실 '용의 맥'은 전에 한 번 그린 적이 있다. 2017년 5월 서울 어반스케쳐스 정기모임이 이대에서 있었는데, 그때 그렸다. 그 그림이 좀 허술해서 이번에 다시 그렸다. 펜으로 그리고 수채 물감으로 채색했다. 조각품이 빨간색이라 파란 하늘을 그렸다. 조각품 뒤의 이대 박물관도 전체를 다 그렸다. 빨강과 하늘색의 대비가 강하다.

이번에 가서 자세히 보니 용의 붉은 칠도 너무 바랬고 군데군데 녹슨 곳이 너무 많다. 1990년도 작품이니까 불과 30년 남짓 되었는데, 현대 조각이 이 정도 기간에 이렇게 손상되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용의 맥으로 구멍을 막았다. 동그란 구멍을 막기 위해 용의 배를 둥글게 했다.
 용의 맥으로 구멍을 막았다. 동그란 구멍을 막기 위해 용의 배를 둥글게 했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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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가게를 오픈하는데 환기 구멍을 좀 막아달라고 한다. 철판이나 나무로 동그랗게 만들어 막으면 된다. 하지만 아티스트가 그럴 순 없지. 먼저 함석판에 스케치를 하고 함석 가위로 잘랐다. 그리고 녹이 슬지 않게 파란색 유성 페인트로 칠했다.

아직 뭔가 모자란 것 같아서 남아 있는 노랑 페인트를 잭슨 폴락처럼 뿌렸다. 리버만+잭슨폴락+나의 합작품이 드디어 완성됐다. 뒷판에 실리콘을 발라서 구멍을 막았다. 용의 맥으로 막았으니 황소 바람에도 끄떡없다!

태그:#알렉산더리버만, #용의맥, #이화여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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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스케쳐 <오늘도 그리러 갑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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