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윤석열'의 숏츠 영상에 출연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사극 의무 제작을 주장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윤석열'의 숏츠 영상에 출연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사극 의무 제작을 주장하고 있다. ⓒ 유튜브 채널 윤석열 갈무리

 
요즘 정치권은 무게를 덜어내고, 가벼운 형식에 이야기를 싣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역시 59초 분량의 세로 영상인 유튜브 '숏츠'를 활용해 생활밀착형 공약을 홍보하기에 바쁘다.

지난 1월 12일, 유튜브 '윤석열' 채널에는 'KBS, 수신료의 가치를 국민께 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59초짜리 공약 영상이 올라왔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KBS 요즘 이상하지 않아요"라고 입을 열자, 원희룡 정책본부장이 "공영방송이 PPL 못한다고 5년 동안 사극 한번 안 찍는 게 말이 돼?"라 말한다.

대하 사극을 좋아하는 나의 입장에서도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장영실>부터 <태종 이방원>에 이르는 5년 동안 대하사극이 방송되지 않으면서, 대하사극에 대한 갈증은 충분히 쌓여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현재 방영 중인<태종 이방원>을 언급하면서 공영 방송의 사극 의무 제작을 주장했다. 그러나 두 번 생각해보면 이 주장에는 문제가 많았다.

이 영상이 공개된 후,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의 힘이 도대체 공영방송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심각한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KBS 본부는 "공영방송은 국가의 소유도, 자본과 같은 사적 소유도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적 소유기구이다. 그래서 방송법 제1조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4조는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라고 지적했으며, '대하 드라마 의무 편성'과 국제 뉴스 30% 편성 등은 방송법과 전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편성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현실 고려 없는 '대하 사극 의무화' 주장

KBS 대하 사극은 1981년부터 시작되었다. 일본 NHK 채널의 대하 드라마로부터 영향을 받은 KBS 대하 사극은 공영방송 KBS를 상징하는 간판 컨텐츠로 자리잡아왔다. <용의 눈물>과 <태조 왕건>, <대조영>, <불멸의 이순신> 등 시청자들의 기억에 강하게 자리잡은 작품들이 있다. 그러나 대하 사극이 언제나 흥행한 것은 아니었다. 작품에 따라 완성도와 시청률의 기복이 있었다.

2010년대에는 <정도전>(2014)이 정치 사극으로서 훌륭한 평가를 받으며 사랑받았다. 그러나 이어진 두 작품 <징비록>(2015)과 <장영실>(2016)은 평가와 시청률 면에서 만족할만한 성적표를 받아들지 못했다.

장르의 특성상 수많은 인원과 장비 등이 투입되는데, 이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PPL(간접 광고)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류 스타의 출연을 통해 해외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것도 다른 장르에 비해 쉽지 않다. 대하사극의 부활을 목표로 삼았던 양승동 전 사장 역시 2020년 취임 당시 "현재 재정상태로는 어렵지만 내년에는 부활시키겠다"고 고백했다.

퓨전 사극의 유행, 그리고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를 통해 시청자들이 빠른 템포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긴 호흡의 대하 사극을 만드는 데에 있어 더 많은 고민이 따랐다. 예전처럼 정통 사극을 내놓으면 일정 수준의 시청률이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다.
결국 대하 사극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사양 종목이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태종 이방원>은 사극에 대한 충분한 수요가 쌓였다는 공감대가 모였기 때문에 돌아온 것이다. 대하 사극은 살아남기 위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 역시 보여주고 있다. <태종 이방원>이 '여말선초(고려 말 조선 초)'를 다룬 과거 사극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 역시 빠른 템포다. 

'공영 방송에서 대하 사극을 부활시켜달라'고 외쳤던 배우 유동근의 수상 소감은 많은 사극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권의 개입으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대하사극 제작'은 공영 방송 사장의 공약은 될 수 있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공약이 될 수는 없다. 

다른 장르에 비해 높은 제작비가 투입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대하 사극 제작이 의무화된다면 수신료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사극의 공백이 길어진 동안, 좋은 대본을 쓸 수 있는 작가와 노하우를 갖춘 연출자도 찾기 쉽지 않아졌다. 이 현실적인 조건에 대해 짚지 않고, '의무화'를 외치는 포퓰리즘적 접근은 좋은 사극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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