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재일 한국인 4세 출신 종합격투기 파이터 추성훈(47, 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뜻을 밝혔다. 최근 '원챔피언십(ONE Championship)' 주최측을 향해 "나는 시간이 없다. 빨리 경기를 잡아달라"고 공개 요구했다. 자신의 나이가 적지 않음을 시사하며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경기를 가지고 싶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다.

더불어 "언제부턴가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음을 스스로 반성한다. 선수로서 승리를 위해 더욱 집중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일본에서 활약하던 시절 '반골의 유도귀신', '마왕' 등의 별명으로 불리던 당시의 명성과 투지를 되찾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다.

추성훈은 지난 2021년 4월 원챔피언십165 코-메인이벤트에서 전 라이트급 챔피언 에드워드 폴라양(38, 필리핀)을 상대로 14개월 만에 종합격투기 복귀전을 치를 예정이었으나 아쉽게 부상으로 무산됐다. 둘의 대결은 NBA 중계로 유명한 TNT를 통해 미국 전역에 방송될 예정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정상적으로 경기에 출전했다면 약 9년 2개월 만에 미국 전국채널 방송 대회를 뛰는 것이었다.
 
 '풍운아' 추성훈은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은퇴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풍운아' 추성훈은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은퇴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 ONE Championship 제공

 
야수라 불렸던 남자, 타고난 싸움꾼
 
추성훈은 늦은 나이에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5년 만에 일본 무대를 완전히 장악해버린다. 이후 2009~2015년까지 UFC에서 '섹시야마(Sexyama)'라는 별명과 함께 활약했다. 전성기가 지난 상태에서 앨런 밸처, 크리스 리벤, 마이클 비스핑, 비토 벨포트, 제이크 쉴즈 등 강적들과 연달아 대진이 붙는 바람에 7전 2승 5패에 그쳤지만 경기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상 자신보다 한 체급 이상 컸던 밸처와 난타전 끝에 스플릿 판정승을 거둔 것을 비롯 리벤에게는 후반까지 점수에서 앞서다가 통한의 서브미션 역전패를 당했다. 세계 최고의 그래플러 중 한 명이었던 쉴즈의 테이크다운도 다 막아낸 바 있다. UFC 마지막 경기였던 알베르토 미나와의 대결에서는 시종일관 팽팽한 접전 끝에 1-2 판정패를 당했다. 경기 막판 미나가 노골적으로 시간을 끌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추성훈의 손이 올라가도 무방한 경기였다.

불혹에 접어든 2014년도에는 UFC 선수육성프로그램 TUF(The Ultimate Fighter) ´시즌7´ 우승자 출신 아미르 사돌라를 시종일관 압도한 끝에 잡아내기도 했다. 성적은 아쉬웠으나 캐릭터가 확실했고 경기 내용도 재미있는 편이었던지라 주최측에서도 계속해서 기회를 줬다. 어느덧 7년이 흘렀지만 최근 'UFC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도 출신 파이터 TOP10'에 이름을 올리는 등 국제적인 명성이 건재한 이유다.

당시 기준으로 추성훈의 파이팅 스타일은 여타의 동양인 파이터들과는 사뭇 달랐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엘리트 유도가 코스를 밟아왔지만 MMA무대에서는 전혀 다른 색깔을 보여줬다. 입장 시에만 유도가 향수가 짙을 뿐 막상 경기장에 들어서면 타격가 냄새가 풀풀 났다. UFC 입성 전의 추성훈은 그의 데뷔전 과거를 모른다면 가라데 선수로 오해(?)할 정도로 타격 임팩트가 뛰어났다.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혀 들어가며 터지는 감각적인 원투컴비네이션에 카운터 타이밍에서 빛을 발하는 어퍼컷 공격, 하이킥과 뒤돌려차기 등에도 능했다. 추성훈의 유도 공격에만 집중하고 있던 상대들은 삽시간에 터지는 카운터 펀치와 발차기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상대가 빈틈을 보이면 순식간에 헌터로 변신했다.

UFC무대에서도 추성훈은 타격가에 가까운 경기 운영을 즐겼다. 긴 리치를 활용한 잽을 잘 활용했고 테이크다운 방어도 수준급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추성훈의 타격은 색깔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스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발차기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공격해오면 뻣뻣한 자세로 받아쳤는데 의외로 잘 맞췄고, 웬만한 공격은 흘리듯 피해냈다. 기술적인 타격보다는 비제이 펜처럼 감각자체가 뛰어났다. 동체 시력이 좋고 타고난 타격 센스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밸처, 리벤처럼 맷집 강하고 한방을 갖춘 상대들과 난타전도 잘 펼쳤으며 발 빠른 아웃파이터 비스핑의 타격에도 잘 대응했다. 어떤 상대를 맞아서도 곧잘 적응하는 동물 같은 파이터 본능이 돋보였다.

반대로 엘리트 유도가 다운 풍모는 다소 아쉬웠다. 테이크다운을 잘 방어하고 성공시키는 능력은 나쁘지 않지만 그라운드에서 눌러 컨트롤하는 능력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 부분에서 평균 이상의 기량만 선보였다면 성적 면에서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는 분석이다.

노장 추성훈의 나이를 잊은 행보에 후배파이터들도 존경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일본 글래디에이터FC, 한국 더블G FC 라이트급 챔피언 '더 데인저' 기원빈(32, 팀파시)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추성훈 선배님은 무려 1975년생으로 어지간한 감독님들과도 비슷한 또래다. 예능인으로도 성공한 분인지라 구태여 생업적인 이유로 링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임을 감안했을 때 순수하게 격투기를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나도 가능하다면 선배님처럼 40대에도 프로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좋은 기회를 놓쳤던 아쉬움 때문일까. 추성훈은 "예전에는 실력으로 유명해져 돈을 벌어 효도하고 싶다는 목표를 위해 먹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욕구를 참아가면서 운동만 했다. 그때는 남는 시간이 있어도 다음 훈련을 위해 몸을 충분히 쉬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꿈을 위해 정신을 차리고 파이팅하겠다"고 말했다.

'이대로 파이터 경력을 끝낼 순 없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40대 후반 노장의 마지막 불꽃이 어디까지 타오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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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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