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9 12:25최종 업데이트 22.01.1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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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비평연재 <좋은데, 싫었습니다>(좋싫)는 주류의 담론에 대항하는 저항의 언어조차 어쩌면 '당위'라는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질문합니다. 그저 이것'만'이 옳고, 이것은 '반드시' 좋아해야 하고,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해야 한다는 절대적이고 당위적인 언어들이 정말로 대안과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편집자말]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코로나 사망률은 압도적으로 노인층이 높다. 백신도 노인들이 먼저 맞았고, 방역도 노인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당연한 일이다. 더 위험한 사람을 더 단단하게 보호해야 한다.

좋아하는 교회 장로님을 못 본 지가 벌써 2년째다. 줌으로 보는 장로님의 얼굴은 예전처럼 다정스럽고 인자해 보인다. 너무 보고 싶긴 하지만 웬만하면 한동안은 줌으로만 뵈었으면 좋겠다. K-방역의 강고한 성채가 우리 장로님을 잘 감싸고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성채 바깥의 실태는 암울하다.
 
가혹한 코로나 검역 기준

한 달 전, 요양서비스노조는 코로나 고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집단생활시설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의 31.5%가 주 3회 이상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주 2회 이상 받고 있다는 응답자는 38.8%였다. 검사 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단 7%였다. 사적 모임을 2년 동안 한 번도 안 한 요양보호사가 60%가 넘고, 2명 중 1명은 직계가족 경조사에 참석하지 않고, 퇴근 후에도 회사에 동선을 보고해야만 했다.
 
2년 동안 총 여섯 번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코 깊숙하게 들어오는 면봉은 매번 괴로웠다. 검사를 받을 때마다 검사 요원은 뒤로 물러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라고 물러나고 싶어서 물러난 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몸은 뒤로 갔고 나오고 나서는 한참을 훌쩍거렸다.

어떤 요양보호사는 코에 염증을 달고 다닌다고 했다. 그녀는 그 와중에도 계속 검사를 받아야 했다. 요양보호사에게 이토록 과잉된 코로나 검역 기준이 가해지는 핵심적인 이유는 그들이 '노인'들을 주로 대면하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삶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삶의 편의뿐만 아니라 생존의 문제까지도 그렇다.

그들은 직접 노인들에게 링거를 꽂고, 노인들을 먹이고, 들고 나르고, 씻긴다. 약한 노인들의 면역력이 최소한이나마 유지되는 이유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이들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심지어 어르신이 코로나에 감염된 상태에서도 방진복을 입고 일에 투입되며, 문제가 발생할 시 모두 그 자신이 책임져야만 한다.
 
가장 이상한 건, 한국의 요양보호사 평균 연령이 60세라는 것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60세는 정년이 시작되는 나이다. 요양보호사 자신들도 명백하게 노인들이다. 그리고 이 노인들은 다른 노인들을 돌보기 위해서 안전망의 바깥에 서게 되었다.
  

구리시 보건소에서 나온 자원봉사 의료진이 9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립노인전문요양원에서 생활 중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2차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2021.6.9 ⓒ 이희훈

 
1월 20일까지 '돌봄기본법 제정에 관한 청원'(https://url.kr/rmdjgi)이 진행되고 있다. 이 청원에는 "돌봄노동자가 업무 수행 중 감염병이 있거나 우려되는 이용자 또는 보호자 등과 접촉하여 감염 위험이 있는 경우", "돌봄노동자가 안전한 돌봄을 제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예방접종을 받은 경우"에 "안전휴가"를 보장해달라는 내용이 있다. 이는 다른 면에서 보면, 감염병의 위험에서 돌봄노동자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돌봄기본법 제정 청원에는 최저임금의 최소 130%를 지급하라는 내용도 있다. 대부분이 최저임금선에서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나 배달노동자, 택배노동자 등은 코로나 시대의 필수 노동이다. 정부도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을 내놓으며 돌봄노동자가 필수노동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필수노동자라면 그 자신이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돌봄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청원에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도 있다. '필수인력'이라고 하면서, 수많은 돌봄노동자들이 노동이 유연하기 때문에 자신이 돌보는 이들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원래 하는 일?
 
돌봄노동자의 노동이 이 정도까지 유연한 이유는 청원 내용 중 다음 항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사용자는 돌봄노동자의 돌봄 제공 경력에 따라 고용노동부령이 정하는 기준 이상으로 기본급을 차등 지급하여야 한다.

2018년 기준으로 요양보호사는 95%가 여성이다. 그리고 보통 가정에 돌봄노동이 완전히 내맡겨져 있을 때, 노인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고령의 여성에게 돌봄노동은 '원래 하는 일'로 여겨진다. 원래 빨래하고, 원래 청소하고, 원래 밥해서 먹이던 사람이 늘 하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다. 물리치료를 할 줄 알고, 사회복지에 관한 이론을 익혔다. 주사를 놓을 줄도 알고, 위험할 때 노인의 건강을 케어할 수 있다. 더욱이 수많은 노인들을 대하면서 치매노인들을 다루는 데에 익숙해진 노하우가 있다. 노인들을 들고 나르는 방법, 어떻게 노인들에게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켜야 하는지, 요양보호사가 감정을 덜 다치고 오랫동안 일을 하려면 어떤 요령이 필요한지 등 긴 시간 숙련된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일들은 '산정'되지 못해왔다.
 
야간근로가 3시간 이상 포함된 날에는 돌봄노동자의 전체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부분은 어떠한가. 노인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돌봄노동자도 푹 자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런 상황은 쉬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 바로 다음 조항은 "사용자는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력을 유지하여야 한다"이다. 코로나19가 가혹하게 몰아치면서, '필수인력'인 돌봄노동자는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여야 했는데도 갈수록 인력이 줄기만 했다. 당연하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고, 경력이 인정되지도 않는 기간제 노동에 업무량이 갈수록 늘기만 한다면 누가 버틸 수 있겠는가. 만일 제대로 된 임금과 휴식이 주어졌다면 지금 이렇게 인력난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안다. '필수노동자'라는 이름이 그렇다. 만일 이들이 없다면 훨씬 더 많은 노인이 위험에 처할 것이다. 노인들이 면역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이들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감염병에서 노인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일 터이다. 노동자들, 특히 의료노동자나 돌봄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불거졌을 때 흔히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서 묻고 싶다. 왜 안전은 평등하게 도래하지 못하는가. 65세 요양보호사의 몸과 70세 어르신의 몸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길래, 한 명에겐 코로나에서 보호될 권리가 있고, 다른 한 명에게는 기본적인 사생활조차도 아니, 코 점막조차도 보호될 권리가 없는가.
 
1월 20일이 마감인 돌봄노동자 기본법 청원은 이 글을 쓰는 지금 4만 2763명에 달했다. 국민동의 청원 성립요건인 5만 명에 아직 8000명이 좀 넘는 인원이 모자란다.
 
☞ 돌봄기본법 제정 청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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