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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스템과 기준들은 실제 일하는 사람들의 몸에 얼마나 적합할까.
 지금의 시스템과 기준들은 실제 일하는 사람들의 몸에 얼마나 적합할까.
ⓒ 윤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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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조치라면... 일단 점검도구 무게 줄여주는 거, 그리고 현실적인 수수료를 지급하는 거. 양손에 무거운 짐가방을 한가득 들고 다니다보면 조금만 삐끗해도 사고가 나기 쉽죠. 실제로 업무 중 낙상사고가 종종 일어나는데 주로 이동 중에 일어나요. 

수수료는요, 정말 일에 비해 너무 낮게 책정돼 있어요. 우리가 특수고용직이니까 기본급도 없고 연장근무수당도 없어요. 그러니까 한 달에 150계정을 해도 150만 원 받는 식이에요. 현실이랑도 안 맞는 게, 공기청정기 점검은 40~50분 걸리는데 수수료 지급기준은 15분이라고 그에 준해서 8500원 줘요. 그런데 또 냉장고는 25분인데 1만 2천 원 주거든요. 사실 제품이랑 점검 환경이 다 다른데 일괄 15분 기준으로 단가를 정하는 것도 이상하죠. 

그리고 우리는 개인사업자로 돼 있으니까 병가도 연차도 없어요. 우리 건강을 보장하는 제도란 게 고작 연 1회 건강검진, 그것도 가장 기본 항목만 있는 거예요. 산재보험이 작년 7월부터 적용됐다고는 하지만 가장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은 산재 신청조차 못 하고 있어요. 방문노동자들은 인과성 입증 자체가 어렵잖아요. 오늘도 그거 관련해 전문가를 만나고 왔는데 쉽지는 않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조사도 더 세밀하게 해야 할 거고. 기존 사례가 없대요. 우리가 이동노동자고, 특수고용직이라는 부분도 있고 해서. 

고용보험도 적용된다고 하지만 그것도 일정 수입이 있어야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3) 우리는 기본급이 없으니까 아파서 쉬면 수입도 없어요. 산재승인을 받아도 그 기간 내에 완치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런 부분도 (산재에서) 보장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매니저를 보호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어요. 모든 기준이 '고객 만족'에만 맞춰져 있는데 만족이란 게 기준이 없잖아요. 너무 과한 요구는 회사 차원에서 끊어줘야 하는데 회사도 자체 기준 없이 그냥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고객 눈높이에 맞춰' 그거예요.

사실 우리 업무는 제품 점검하고 주변 정리하고 나가면 끝이거든요. 그런데 고객이 흘린 김칫국물이나 쓰레기까지 왜 안 치우고 갔냐는 클레임이 비일비재해요. 점검 마치고 어디까지 태워 달라, 오는 길에 뭐 좀 사다 달라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래도 고객만족도 평가가 있으니까 매니저들은 뭐라고 못하죠. 평가기준도 안 맞는 게, 불만족 부분이 제품 쪽인지 서비스 쪽인지 구분도 안 돼 있고 소명도 안 받아줘요.

한 번은 고객이 제품을 설치한 선반이 너무 높은 데 있었고 흔들거리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낮춰서 안전하게 설치하시는 게 좋겠다 했더니 회사로 클레임을 거셨어요. 나중에 화가 풀리셨는지 취소하겠다고 했는데 회사에서 한 번 평가 완료된 건 수정이 안 된다고 했대요.  

성희롱 문제도 많아요, 일하는데 뒤에서 스킨십을 한다던가 개인적으로 이상한 문자 보내거나 사심 섞인 선물을 준다던가. 그런 걸 강하게 거부할 수 있으려면 회사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되는 거죠. 

"왜 남자의 힘을 기준으로 우리 일을 평가할까"

만만하게 여겨진다는 것도, 저는 그런 것도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아요. 유지관리 서비스라는 게 전문적인 업무거든요. 가전제품을 다루는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있죠. 그런데 "아줌마, 남편이 뭐 하길래 이런 일까지 해?" 이런 말도 듣고, 어떤 사무소장은 "너희가 이러니까 '딱새' 일이나 하지"라고 해서 노조 차원에서 항의투쟁도 했어요.  

'동일노동에는 동일임금'이 원칙이잖아요. 그런데 같은 일도 우리가 하면 수수료 9천 원이고, 수리기사들은 2만 원 받아요. 케어매니저가 할 수 있는 일과 수리기사가 할 수 있는 일의 기준이 딱 구분돼 있지 않은데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임금차가 나는 거죠. 더 싸게 쓸 수 있는 건 우리니까 우리에게 과도하게 일을 시키고, 그럼 당연히 몸이 아플 수밖에 없죠. 

2019년 정수기 곰팡이 사태 터졌을 때도 아파서 그만둔 분들 많았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때 매니저들 몇 달을 몸살약 먹어 가며 일했어요. 정수기를 180도 돌려서 분해해서 내부 단열재 교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건데 1시간은 걸리는 일이었거든요. 처음 해보는 업무였고.

그런데도 회사는 그냥 밀어붙여서 시키고는 나중에야 건당 수수료 3천 원 준다고 통보를 했어요. 매니저들이 항의하니까 5천 원으로, 나중엔 1만 원으로 올리더라고요. 알아보니까 수리기사는요, 2만 3천 원에 출장비 별도 지급이었어요. 매니저들이 주로 경력단절 여성들이라고 너무 저평가를 당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언론에 이렇게 말하면, 댓글들이 "남자가 힘이 더 좋고 힘든 일 더 많이 하는데 당연히 차이가 있어야지, 싫으면 그만둬라" 이런 게 많아요. 회사도 그래요. "집안일 하던 여자들이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한정적이지 않냐, 여기 와서 이정도 받으면 많이 받는 거 아니냐"고. 회사도 사회적 인식도 '남자의 힘'을 기준으로 업무를 평가하는 거죠. 

그런데 원래 정수기 직수관 교체를 남자 기사들 시켰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급여도 많이 줘야 하고 섬세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니까 여성 매니저들로 교체한 거래요. 값싸고 사고 없이 일 잘 하니까 회사에선 너무 좋은 거지.

더구나 주요 고객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니까 방문서비스를 남자를 꺼려하는 것도 있고. 남성 매니저들도 있지만 여성 쪽이 더 꼼꼼하고 좋다는 고객평가도 많이 나와요. 그런데 남자보다 여자들이 일을 덜 한다고 보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자기들이 필요해서, 장점이 있으니까 일을 맡겨놓고선.

나한테 건강하게 일한다는 거는요,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다는 거. 억울하지 않은 거. 노조 만들고 보니까 전국에서 정말 억울한데 혼자 속앓이만 하고 있다는 사연들이 엄청 올라오더라고요. 일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내가 제대로 이건 아니라고 표출할 수 있어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2) 2019년 LG 퓨리케어 정수기 내부에서 곰팡이가 발생했다는 사용자들의 민원이 다수 발생했다. LG 측은 보상이나 리콜 대신 곰팡이 방지 보강재 부착과 방문관리서비스 강화를 대책으로 발표했다.   
3) 정부는 2021년 7월부터 고용보험을 특수고용직 12개 직종에까지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월 보수 80만원 미만인 특수고용직은 보험적용이 제외된다. 

덧붙이는 글 | 프로젝트 '조각모음: 여성일터 안전키트'는 여성 노동자들의 일과 몸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미지-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산업재해 의제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성의 노동을 드러내고, 흩어져 있던 목소리들의 조각모음을 통해 이야기의 확장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브런치에도 연재됩니다. https://brunch.co.kr/@vpmi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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