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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사회, 청년들이 숨 쉴 틈 없는 현실입니다. 청년들의 삶 속에서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청년들을 만납니다. 건조한 분석과 통계만으로는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다양한 삶과 고충을 전부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를 보는 청년들도 인터뷰하고 싶어요! 연락주세요! - 기자 말 
   
'나'를 표현하는 사진
 "나"를 표현하는 사진
ⓒ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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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부산 사직동에 사는 30살 정욱교이고요. 야구를 좋아합니다. 음... 예전엔 정형화된 자기소개, '지역 로컬 콘텐츠를 기록하며 사람을 연결하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네요. 가감 없는 자기소개는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스스로가 갇히는 것 같아서요.

주로 하는 활동은 '051fm'이라는 부산 로컬 팟캐스트 단체예요.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지역 시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연결하고, 작은 문화공동체를 만드는 활동을 해요. 밥벌이는 미디어 교육이나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야구 팟캐스트 '아이고롯데야'를 해요.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236회까지 하다가 최근엔 약간 지쳐서 쉬고 있습니다. 의무감으로 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고민이 많은가봐요.

"좋아서 시작한 건 맞는데 하다보면 고민이 생기기도 하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계속 해야 하는 압박을 받는 거 같기도 하고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기도 하고요."

- 지역기반의 미디어 활동을 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봤어요.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생 때부터 라디오PD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 때 관련 전공을 하고 방송국 활동도 했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어요. 군대 전역 후에 부산지역 팟캐스트 동아리 '부산의 달콤한 라디오'활동을 하면서 지역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나름의 의미나 보람도 있었어요.

4년 정도 흐르니 매너리즘의 기간이 온 것 같아요. 앞으로의 삶이 이대로 먹고는 살아지겠다는 계산은 서는데, 어느 선 정도 이상은 할 수 없다는 것? 이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재미도 없고요."

- 미디어 활동을 하는 청년으로서 요새 관심사, 고민거리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내년 저의 거취와 관련된 고민이 많아요. 한마디로 '이렇게 계속 하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이요.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해왔는데 같은 방식과 내용으로 해나가는 게 맞는지 방향에 대한 고민이에요. 지금은 '아니다'라는 결론까지는 세웠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죠. 보람도 있고 해놓은 것도 있긴 하지만 성과가 크지는 않은 것 같아서 '현타'가 왔어요. 끝나지 않는 런닝머신을 도는 느낌. 목적지가 없는 느낌이요.

삶 자체가 재미가 없어요! 돈을 많이 벌든, 연애를 하든, 일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든! 주변 친구들은 '니만큼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정작 저는 요즘 재미가 없어요. 내가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아요(큰 웃음). 보통 일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못 하는 활동을 하니까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더 이상 변화가 없고 똑같은 거라는 걸 알아버린 이상 저는 재미가 없네요."
  
- 코로나19로 인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요?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수혜라면 수혜를 받은 분야죠.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다만 세상에 대한 혐오가 심해지고 있어요. 작년은 특히 사람이 모이는 거 자체가 죄악 시 되는 분위기였다 보니... 그런 분위기가 싫은 것 이상으로 회의감이 들었어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데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게 죄악시되는 사회라니. 올해는 그냥 '언제까지 이렇게 살 생각인지? 정부는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갑갑해요. 이쯤되니 음모론적 생각까지 들어요(웃음). 사람이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이 계속 생기니 무기력해지네요. 2년이 넘어가니 너무 지쳐가요."
  
- 평소에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장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나요?

"지방, 지역 격차가 심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서울에서 태어난 애들을 이길 수는 없다는 생각. 내가 서울에 취직을 해서 이사를 가게 되면 집을 구하는데, 지금까지 모은 돈을 전부 거기에 써도 모자라요. 그 차이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근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부분들이 어쩔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고, 체념의 단계에 진입해버렸어요. 그치만 지역에 따른 격차는 불합리한 거 같아요."

- 청년으로서 한국사회를 한 마디로 정의해본다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세상이 재미가 없다'예요. 사람이 재미가 있으려면 내일이 기대가 돼야 해요. 내일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요. 지금은 그게 없는 거 같아요. 크게 봤을 때 나아질 거라는 생각보다 안 좋아질 거 같은 거죠."

- 무섭기도 하고 슬프네요.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거 같은가요?

"나의 노력과 상관없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진 세상이잖아요.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기도 하고.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게 거의 없음을 점점 확신하게 돼요.

옹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잘사는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부모님이 잘 살더라구요(웃음). 배 아파할 문제는 아닌데 내가 노력해서 이겨낼 수 없음을 느끼니까 사는 게 재미가 없죠. '이렇게 하면 뭐하노~ 어차피 변하는 건 없는데.' 이런 거! 부산에서 내가 하는 일도 열심히 해서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도 부산의 미디어 생태계가 수도권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아니까..."

- 그러면 내가 바라는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재미있는 사회요! 말장난 같은데(웃음). 내일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대가 되는 사회에요." 

- 정치에 청년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고 있다고 느끼나요? 아니라면 이유가 뭘까요?

"안 되고 있죠. 정치지형이 양당제에 가깝잖아요. 솔직히 당이 의미가 없는 팬덤정치가 아닌가(웃음). 인물 따라서 가는. 그 와중에서 청년정치가 소비되는 방식은 결국 '얼굴마담' 그 이상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청년 정치인이 양성되는 과정도 거의 대부분이 자기 사람 꽂아 넣기 정도에 그치고 있어요."
  
- 미디어 활동뿐만 아니라 청년정책네트워크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것으로 알아요. 효능감이 느껴지는 활동이었나요?

"일단은 예산집행을 직접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책제안을 해도 건의 정도예요. 어떻게 보면 민원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웃음). 민원은 많이 들어오면 신경이라도 쓰는데. 정책 참여기구는 사실 무시해버려도 상관이 없죠. '의견 잘 받았다~ 근데 검토해봤는데 안 되겠다' 하면 그만이죠. 퍼포먼스용 기구가 아닌가 싶어요.

실질적인 의미가 있으려면, 청년정책네트워크 운영 예산 중 50%는 우리가 제안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배정한다던지, 다과비라던지 꼭 없어도 되는 돈을 모아서 우리가 발의한 거 하나라도 시행할 수 있게 해보면 효능감이 느껴질 법도 해요.

축구에 비유하면, 우리가 공을 직접 차지 못하고 관중석 팬이 돼서 선수들에게 '이렇게 공을 차주세요~' 부탁을 하는 정도죠. 우리가 말한 대로 차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상대가 태클을 깊게 걸어서 못 찼어. 지금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에 집중해야 될 때야'라고 하면 할 말이 있나요."
  
- 직접 정치인이 돼도 좋겠어요(웃음). 정치를 한다면, 정치인이 된다면 하고 싶은 게 있나요? 반대로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을까요?

"저는 온천3동 달북마을 5번 마을버스 배차간격 줄이기요! 다른 무엇보다 우리동네 사람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 같아요. 오르막 250m를 오르다 보면 한겨울에도 땀이 나요. 그래서 저는 기모 옷을 안 삽니다(웃음).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건 행사 같은 데 가서 사진 찍히는 용도로 화환처럼 서 있는거요! 내 실루엣만을 사용하고서 청년과 함께 했다 그래쌌고(웃음)."
  
- 상당한 분노가 느껴지는데요. 기존 정치가 청년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MZ세대' 이야기 많죠. 진짜 게으른 생각이에요. 기성세대분들이 부르기 편해서 지은 이름이 아닌가. 요즘은 3년 마다도 제각각 다 다른데 20년 단위를 한 세대로 묶는다고? 싶어요. MZ세대라는 말은 없어져야 하지 않나. 사실은 이해할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우리가 40대부터 70대를 묶어서 '아재'라고 부르는 거랑 같다고 봐요. 선거만 나오면 청년을 지칭하는 용어가 나오는데 맥락이 같은 것 같네요."

대화를 하는 내내 유명무실한 청년참여프로그램의 허상을 직면하는 기분이었다. 참여라는 말의 이중성. 청년이 내 삶의 주인, 정치의 주인, 사회의 주인이 되려면 주도권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존의 정치가 그런 권한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쯤 우리도 안다.

차라리 '청년정책을 만들어서 시에 갖다 주는 것보다 우리가 만든 요구안을집단 민원으로 넣고 끝내는 게 더 낫겠다'는 청년의 말에서 제도가 보장하는 기만적인 '직접 민주주의'의 민낯을 봤다. 

이 글을 보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들어줄 생각도 없으면서 '한 번 말해봐. 들어줄게'라고 할 게 아니라 우리의 어려움을 마음 깊이 공감하는 것부터 하시라. 공감이 안 되면 우리가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비켜서시라.

태그:#청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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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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