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02 19:43최종 업데이트 21.12.0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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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윤석열 후보는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를 언급했다. ⓒ YTN

 
윤석열 후보가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를 언급했을 때만 해도 모든 일이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다. 10월 6일, 윤석열 후보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토론회에 나와 '위장 당원(국민의힘 대선 경선 결과가 민주당에 유리한 쪽으로 흐르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가입한 당원)'이 당 내에 다수 존재한다는 주장을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게시판을 인용하며 펼쳤다.

대선 경선에 나온 후보가 새롭게 입당한 당원들을 위장 당원일 수 있다고 의심하는 것도, 그 근거를 진위 파악이 어려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찾았다는 사실도 다소 논리 정연해 보이진 않았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윤석열 후보의 '위장 당원'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비판받았다. 그러나 이 '해프닝'은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남초 커뮤니티에 커다란 태풍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를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이 모든 확신이 윤석열 후보의 한 마디 말에서 시작한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 이미 7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초커뮤니티로 알려진 에펨코리아 로고가 박힌 사진을 올려 논란이 된 적 있다. 실수였던 것인지, 의도된 연출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그가 청년 세대 남성이 자신에게 보내는 큰 기대와 지지를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하태경 의원도 디시인사이드에 직접 글을 쓰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하 의원의 '알페스 금지법'도 남초 커뮤니티 여론을 모른다면 나올 수 없었다. 

남초 사이트의 민심을 얻기 위한 시도들은 국민의힘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소 어설펐지만 민주당 김남국 의원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에펨코리아' 커뮤니티 유저 여러분을 찾아뵈려고 합니다"라는 글을 쓴 적 있다.

비록 이 시도는 역효과가 나긴 했지만 여당 정치인마저도 남초 커뮤니티에 러브콜을 보낸다는 사실은 남초 커뮤니티가 청년들의 민심을 반영하는 창구로 여겨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정치인들의 간편한 분류... 거기에 진짜 청년은 없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디시인사이드 이재명 갤러리에 '갤주(갤러리 주인)' 인증을 했다 ⓒ 디시인사이드 이재명 갤러리 캡쳐

 
2021년이 끝나가는 현재,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디시인사이드에 '갤주'로 등판한 일은 결과적으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가 페미니즘에 대한 곡해와 반대가 섞여 있는 에펨코리아 글을 선거 캠프에 가지고 왔을 때부터 정해져 있던 일이었다. 혹은 그 이전, 정치인들이 남초 사이트를 청년들의 이야기라 주장했을 때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초 커뮤니티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으로 모든 청년들을 위하겠다는 말은 필연적으로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남초 커뮤니티는 청년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집단들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늘 다른 세대에게 분석의 대상이 되었던 청년 세대는 갑자기 사회에 나타난 외계인처럼 여겨지거나 교화되어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청년이 유난스러운 사람이 될수록, 그들이 사회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자 사회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 감추어졌다. 그들이 사실 하나의 집단으로 대충 뭉뚱그릴 수 없을 정도로 파편화되어 있다는 사실도 잊혀졌다.

청년은 모두 공정에 분노하고, 청년은 모두 '병맛'과 '드립력'을 중요시하며, 청년은 모두 소비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청년의 입장을 남초 커뮤니티에서 만날 수 있다는 간편한 분류는 정말 정치인들이 청년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은 청년을 나이로만 분류하지 개인으로 분류하는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이 사회초년생일 확률과 경제적 영역에서 하위 범주를 차지하고 있을 확률은 분명히 높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은 적극적으로 커뮤니티 내부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과 반대를 생산해내고 있기도 하다. 이재명 후보가 공유한 남초 커뮤니티 글에는 "이재명 후보가 페미니즘을 멈춘다고 약속해 달라. 그러면 지지하겠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남초 커뮤니티 내부에서 성범죄와 여성 청년에 대한 혐오, 폭력이 재생산 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기도 하다. 올해 초에는 <남초 커뮤니티 음지에서 벌어지는 '제2의 소라넷' 성범죄를 고발합니다>라는 이름의 국민 청원이 올라와 23만명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병맛'과 '드립'의 주요 소재가 되는 것은 여성에 대한 희화화이기도, 장애에 대한 모욕이기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은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 또한 사회의 편견과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

청년 위한 정치를 하고 싶다면

남초 커뮤니티가 청년들을 대표하는 커뮤니티가 될수록 그들이 향유하는 '병맛'과 '드립력'에 상처받는 수많은 청년들은 잊혀진다. 누군가는 공정을 논할 수 있는 테이블에 조차 앉지 못했다는 사실도 잊혀진다.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는 청년의 범주에서 탈락하며 개개인의 역사와 능력은 지워진다. 결국 남는 것은 '나이'라는 숫자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에게도 부정적인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남성을 군대에 보냈으며, 여성과 소수자만을 사회가 배려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얹어줄 때 정치인들은 진짜 문제를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부족했던 일자리와 군대 내 가혹행위, 내 집 마련은 꿈도 꿀 수 없는 사회, 돈 많은 부모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노오오력' 해도 성공할 수 없는 불공정한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잊힐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안티페미 공약으로 손쉽게 남초 커뮤니티를 공략할 수 있고, 그들이 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은 점점 더 '좋은 정치인'을 배출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마침내 "최저임금보다 낮아도 일할 사람이 있다더라"라는 말이 대선 후보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처럼. 손 안 대고 코를 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면,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도 안티페미 선동에 쉽게 웃을 수 없을 것이다.

폭력에 침묵하는 정치, 사회적 소수자를 도외시하는 정치, 좋은 세상 대신 손쉽게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정치는 정의로운 승리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진짜로 청년을 위한 정치를 하고 싶다면 남초 커뮤니티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러브콜 대신 어떠한 목소리가 이 세상에서 지워지고 있는지 포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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